세상사는이야기
젊은이, 청소년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요즘 젊은이들의 대부분은 이성교제를 할 때 상대와 합의를 한 후 선언을 하고 시작한다. '우리 사귀자' '그래 좋아 사귀자'는 식이다. 나이 든 쪽에서 보면 이상하기보다는 색다른 문화에 웃음이 돈다. 옛날에도 이런 식으로 하는 경우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내 주위에서 이렇게 선언을 하고 교제를 시작하는 것은 보질 못했다. 처음 만난 후 서로 관심이 있으면 약속해서 만나고 만남 속에서 별 말없이 사랑이 싹트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한다. 자연스러운 사랑이기에 언제 시작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뭐 굳이 알 필요도 없지만. 그런데 헤어지는 경우, 헤어짐의 선언은 한다. 논리적으로 보면 만남의 선언이 없었으니 헤어짐은 선언도 할 필요가 사실 없다. 물론 조용히 멀어지는 경우는 예외이지만.
결혼식은 왜 할까. 졸업식 입학식은 왜 할까. 장례식은? 취임식과 퇴임식은? 결혼식을 하지 않아도 결혼했고, 졸업식 입학식 하지 않았다고 신분이 이전 그대로 인 것도 아니다. 장례식을 하지 않았다고 아무도 살아있다고 하지 않을 것이며 취임식 퇴임식이 없어도 그 사무실 주인은 바뀌어 있다.
식은 매듭이다. 사람들은 매듭을 지으려 하고, 그런 관습은 오래되었다. '식'. 선을 긋는 것이다. 지금까지와 지금부터의 경계선이다. 마음속이 아니라 이 경계선을 '식'이라는 형식을 통해 객관화, 일반화시킨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장례식이 가장 의미가 있다. 떠난 사람은 떠났다고 일반화시키지 않으면 집안에 내 마음에 계속 남아 있어 어정쩡한 동거가 될 수 있기에 경계선을 그을, 일종의 단절을 선언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선언이라는 것도 그렇다. 마음속에 담고 있는 것을 공표함으로써 객관화시키는 것이다. 금연의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자신 혼자 금연을 결심하기보다는 다른 이에게 선언함으로써 자신의 결심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힘을 싣게 되는 것이다. 금연 조언가들의 얘기에도 금연 결심을 한 후에는 주위에 알리라고 조언한다. 자신의 입으로 시인 혹은 대답하는 것도 일종의 결단의 표현이다.
서약을 할 때는 자신의 입으로 하게 한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자신 스스로 확인하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를 확고히 하고자 할 때는 입으로 대답 혹은 시인을 해야 한다. 물론 모든 사물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의 경우, 시작의 선언은 없어도 사랑이고, 사랑한다는 말은 없어도 행동을 보면 다 알 수 있다. 대부분 여성의 경우, 긍정의 소극적인 답변을 무응답으로 표현한다. 그래도 말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 제일이 아닌가 싶다.
말로 시인하고, 말로 확인하고, 선언을 통해 공표하고, 의식을 통해 일반화시킨다. 사람은 동물과 다른 만물의 영장임에 틀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