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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태화 Jul 11. 2021

사랑이란

사랑학개론

  ‘사랑’, 참 따스하고 포근한 말이다. ‘엄마’ 다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말이기도 하다. 사랑이란 단어만큼 흔히 쓰이면서도 그 본질을 쉽게 알 수 없는 단어도 드문 것 같다. 사랑이란 정말 무엇일까. 넓고 깊게 쓰이기도 하고, 무딘듯하다가 예리하게 쓰이기도 하며, 때로는 차원을 달리하여 쓰이기도 한다. 철학적 의미로 아가페, 에로스, 에피투미아 등으로 나누고는 있지만, 사랑의 정의와 표현도 상황에 따라, 보는 각도에 따라, 사람에 따라 각각 달리하는, 마치 카멜레온과 같이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단어가 아닌가 싶다.   

  시, 소설, 영화, 음악 등 여러 장르에 걸쳐 사랑을 주제로 한 것이 많이 있지만 가만 보면 사랑의 기쁨보다는 슬픔을 다룬 것이 더 많다. 이별의 슬픔과 아픔을 미로 승화시키며 애잔함을 즐기는 그런 정서가 우리에게 있는 것일까.


  '보고파 하는 그 마음을 그리움이라 하면, 잊고자 하는 그 마음을 사랑이라 말하리.' 라는 노랫말이 있다. 사랑하다 이별을 했지만 도저히 잊혀 지지 않는, 의식적으로 잊으려 할수록 더 가슴 미어지는 애틋한 마음을 이렇게 표현 했으리라. '사랑이란 두 글자는 씁쓸하고 달콤하고' 라고 한 노랫말도 있다. 상대의 마음과 내 마음이 통할 땐 달콤하지만, 그렇지 못할 땐 씁쓸함이 가미되는 묘한 것이 사랑이기에 이렇게 노래했으리라. '이루어지면 삶이요, 이루어지지 못하면 사랑이다.' 라는 말이 있다. 사랑이 이루어지면 삶이라는 생활 속으로 녹아들지만, 이루어지지 못하면 미지의 세계 속에 동경으로 영원히 남기에 생긴 말이리라.  


  여러 사연의 사랑이 있다.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 받았지만 자유가 없는 특수 상황이라 달리 손 쓸 방법이 없어 아린 가슴만 움켜진 사랑도 있다. 군 의무복무 기간인 일병 말이나 상병 초가 되면 여자 친구가 이별을 통보한다는 말에서 생겨난 이른바 일말상초(一末上初). 사랑도 떠나고 졸지에 관심병사가 되어버린 가슴 아픈 사랑이다.


  지역과 년대가 달라 영원한 견우와 직녀가 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사랑도 있다. 드라마의 가상세계에서는 시공간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가 있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도저히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이다. 사랑하고 싶지만 사랑해선 안 되는 사랑도 있다. 이런 안타까운 사랑으로 인해 ‘천상재회’라는 노래가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하기에 보내 주어야 하는데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한 사랑.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사랑하기에 떠난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서야 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사랑도 있다. 앞서간 사람을 따라 세상을 버리는, 사랑과 집착을 혼동한 어리석은 사랑도 있다. 떠나가는 사랑을 축복하며 보내주지 못할지언정 오히려 위해를 가하는 잘못된 사랑도 있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이기적인 사랑이다.  


  사랑은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고 다른 곳으로 움직이는 묘한 속성이 있다. 그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을 것 같았고 다시는 사랑을 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조금의 세월이 지나면 어디선가 사랑의 에너지가 솟아 나오고, 사랑이 자리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닫힌 마음을 비집고 다른 사랑이 찾아와 마음 저쪽 한 곳에 머물게 된다. 사랑할 땐 내 사랑 여기에 영원히 있을 줄 알았는데, 세월이 흐른 뒤에 뒤돌아보면 사랑은 떠돌아다니고 있음을 알게 된다. 사랑은 무엇이 길래 이렇게 살아서 움직이는 걸까. 


  사랑하는 이를 묻던 날, 사랑한다고 매일 찾아오겠노라고 무덤을 쓰다듬으며 슬피 울던 그 여인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사랑의 깊이에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는데, 봄꽃이 세 번밖에 피지 않은 어느 날, 그 여인이 곧 개가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진 재산도 많다고 하던데…….  


  사랑은 ‘주고 또 주는 것’이라고 주장한 청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준만큼 되돌아오지 않아 서운했던 것은 내심 받기를 기대한 탓이리라. 그 때는 ‘사랑’을 ‘매우 좋아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좋아한다는 것은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적인 마음이 내포되어 있지만,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 중심적이며 자기희생의 마음이 내포되어 있다. 청춘 때의 사랑, 희생의 마음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기적인 마음이 없었다고도 할 수 없는 그런 사랑을 했던 것 같다. 에로스 사랑은 다 그런 것일까. 사랑은 역시 ‘주고받는 것’ 일까.  


  사랑은 한자어 사량(思量)에서 나왔다고 한다. ‘생각하고 헤아린다.’는 뜻이다. 사랑인즉 상대에 대한 배려이고, 배려의 밑바탕에는 자기희생의 정신이 자리한다. 지금 사랑에 대해 묻는다면 사랑은 ‘주고 또 주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청춘 때와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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