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은 시
응어리
김은
상자 안에 넣어둔 접질러진 종이 하나가 운다
흥건한 상자가 가슴의 문을 열자
눅눅한 창문에 나라는 사람이 새겨진다
김 서린 손가락으로 한 글자 서툴게 남기니
이번엔 나라는 글자 하나가 줄줄 흘러 운다
내 책 속 곰팡이를 향수병에 모두 담아
낡은 품에 뿌리는 족족 난
동화 속 아이처럼 하염없이 착하게 누그러진다
타다 남은 촛불 하나 생경하게 당겨진 시큰한 밤,
방이란 상자에 담겨 가슴을 톡 접질린 내가
축축한 얼굴로 그 미운 종이를 펴면서
천년 별빛을 타고 흐르고 또 흐른다
멸종하지 않는 바다거품처럼
멍울지는 이 더운 시간 속에.
2006 제27회 근로자문화예술제 대상 수상작
2015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사화집 한국시인출세작 수록
chinaun@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