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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용 김은 Aug 12. 2016

시, 응어리

시인 김은 시

응어리


김은


상자 안에 넣어둔 접질러진 종이 하나가 운다 

흥건한 상자가 가슴의 문을 열자 

눅눅한 창문에 나라는 사람이 새겨진다 

김 서린 손가락으로 한 글자 서툴게 남기니 

이번엔 나라는 글자 하나가 줄줄 흘러 운다 

내 책 속 곰팡이를 향수병에 모두 담아 

낡은 품에 뿌리는 족족 난 

동화 속 아이처럼 하염없이 착하게 누그러진다 

타다 남은 촛불 하나 생경하게 당겨진 시큰한 밤, 

방이란 상자에 담겨 가슴을 톡 접질린 내가 

축축한 얼굴로 그 미운 종이를 펴면서 

천년 별빛을 타고 흐르고 또 흐른다 

멸종하지 않는 바다거품처럼 

멍울지는 이 더운 시간 속에.


2006 제27회 근로자문화예술제 대상 수상작

2015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사화집 한국시인출세작 수록


chinau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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