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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용 김은 Aug 12. 2016

시, 유목민

시인 김은 시

유목민


김은


반쪽 생의 힘으로 대지를 이동하는

주름에 고름지고 남루한 인상의 이들이 있다

거친 말뚝을 심고 샘물을 깃고 천을 짜고

옷을 짓고 밥을 지어 먹는

거룩한 사람

해이해진 정신을 가다듬고

해 기울어진 움막에서

숨이 톡톡 끊어진 천조각을 동그랗게 기운다

가슴 안쪽에 난 깊고 늙은 구멍은

밥뚜껑의 더운 김으로 막고

수려한 이동의 냄새가 물씬

젖은 풀냄새처럼 선명히 저려온다

어린 싹을 뜯는 따박따박 굽소리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는 상쾌한 활소리

아이의 때가 낀 손목자락도 아득하고

천구멍 너머 헐떡거리며 넘어가는

불같은 당신도 잠에 든다


난 활자로 촘촘히 기워진

푸른 양념의 책을 덮고

서리 낀 창문 너머 노을이 기운 곳

싱그러운 그들을 만나러

거룩한 잠이 오기만 기다린다.


2006 제2회 청년토지문학상 대상 수상작


chinau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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