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행복이 사라지다
'윙~위잉~'
어제부터 이틀째, 운동장을 밀고 다니는 기계들의 소음으로 무척 시끄럽다.
초록색으로 뒤덮였던 운동장의 잔디들이 군입대를 앞둔 아들의 머리카락이 잘려나가듯 가차 없이 잘려나가고 있다. 그동안 머리가 복잡하거나 피곤할 때면 잔디를 보며 피로를 풀곤 했었는데... 멍하니 잔디를 바라보면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평안해지곤 했었다. 눈의 피로가 풀리는 초록색이라 그랬었을 수도 있었지만 그 안에서 자라나고 있는 이름 모를 갖가지 풀들과 벌레들 때문에 더 그러했는지도 모른다. 겨우내 눈이 덮인 언 땅 속에서도 생명을 지켜낸 풀들이 봄이 되어 삐죽 여린 잎을 내밀 때면 나는 그 대견함에 감동이 일곤 했다. 봄이 깊어져가며 운동장은 더욱 짙은 녹색으로 변했고, 비라도 내리고 나면 밤새 풀잎에 내려앉은 이슬들도 햇살을 먹은 영롱함으로 반짝였다.
늘 같은 시간에 운동장 트랙을 걸어가며, 오늘은 또 얼마나 자랐을까 하는 마음으로 습관처럼 잔디를 바라보곤 했다. 어느 해인가는 군데군데 꽤 많은 버섯들도 자라기 시작했었는데, 버섯에 대해 잘 아시는 분께서 검색해 보니 식용버섯인 것 같다고 하시며 모두 따가기도 하셨다. 하긴 버섯이 있다는 것은 관리가 잘되는 운동장이라 그 토양에 유기물이 풍부하다는 것이니 버섯이 자란다는 것은 타당한 결과려니 했다. 아이들이 운동을 할 때는 트랙을 달리는 것이 대부분이고, 운동장을 사용하는 경우에도 한쪽 끝에서 높이뛰기나 넓이뛰기, 투포환 던지기 등을 하기 때문에 운동장 가운데 잔디는 매우 잘 보존되고 있는 보호구역이라고 보면 된다.
운동장을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면 한 마디쯤 돼 보이는 토끼풀들이 여기저기에 풍성히 자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멀리서 볼 때 초록잔디 위에 하얀 안개자락이 얇게 내려앉은 것 같기도 했던 것은 토끼풀의 무리였다. 토끼풀은 아주 작은 팝콘처럼 귀여운 꽃봉오리를 머리에 달고 있는데, 그 꽃의 꿀이 맛나서 그랬을까? 많은 벌들이 꽃 주변에 몰려있는 것을 자주 보곤 했다. 토끼가 먹어 토끼풀인 줄 알았던 것이 사실은 잎이 토끼 귀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것 이름이란 것을 안 것은 최근일이다. 토끼풀은 3개의 잎으로 되어있으며, 간혹 돌연변이로 4개의 잎을 가진 것을 행운의 네 잎클로버라고 한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 일 것이다.
도봉산 자락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던 나는 어릴 적 토끼풀로 반지를 만들어 친구의 손가락에 끼어주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 조금씩 실력이 늘어 줄거리 여러 개를 길게 엮어서는 팔찌라고 차고 다니기도 했고, 네 잎클로버를 찾겠다고 허리를 굽혀 토끼풀군락을 헤집고 다니던 기억도 있다. 다들 고만고만한 집안 형편에 사는 모습도 비슷했던 그때의 아이들은 그래서인지 기억하는 추억도 별 다를 게 없는데, 어쩌다 한 번씩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내며 서로 '맞아 맞아"를 외쳐대는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그때의 일상들이 아주 오랫동안, 아니 한평생 행복했던 추억으로 남게 될 줄을 그땐 누구도 알지 못했다.
이틀에 걸쳐 울어대던 기계의 소리가 멈추었다.
바리깡으로 밀어낸 아들의 뒤통수처럼 매몰차게 밀린 운동장을 바라보자니 서글픈 마음이 든다. 애견센터에 맡겨져 홀라당 털이 밀리고 온 강아지가 풀 죽어 있는 모습, 사자처럼 머리통의 털만 남기고 몸뚱이는 깔끔하게 미용을 당한 고양이의 화난 모습이 눈앞에 겹쳐진다.
잔디도 이즈음 되면 한번 싹 밀어줘야 잡초도 없애고 해충도 죽는다고 그래야 관리가 잘되는 거라고 하지만, 그런 줄 알면서도 나는 그냥 너나 할 거 없이 함께 모여서 공생하는 풍성한 잔디가 훨씬 정겹고 좋았는데...
민둥산처럼 쓸쓸해 보이는 운동장을 바라보자니, 며칠 전 비 온 아침 운동장을 누비던 까치들이 떠오른다.
똘똘한 까치들도 썰렁한 운동장을 보며 나처럼 허전한 마음이 들까? 물어보고 싶다.
그동안 나에게 평안함을 주었던 잔디와 풀과 벌레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보낸다.
"얘들아~너희들은 모르지만 너희들 때문에 내가 행복했단다."
"그동안 고마웠어"
마음으로 보내는 감사이니 어디서든 받아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