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감성도 다이어트가 필요합니다.
"그놈의 라디오 그만 좀 끄고 자라 자"
"알았어"
"좀 끄라니까"
"알았다니까"
1980년대 초반쯤 되었겠다.
한 뼘쯤 되는 라디오를 머리맡에 두고 밤늦도록 귀가 쫑긋한 나와, 그게 못마땅한 엄마의 대화이다.
그 시절의 나의 독보적인 취미는 FM라디오에 신청엽서를 그려 보내는 것이었다.
운이 좋으면 내가 보낸 사연이 뽑혀 DJ가 사연을 읽어주며 신청곡을 틀어주기도 했는데, 어쩌면 그것이 지금의 인스*나 블러*처럼 공간을 초월한 소통의 시작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때부터 나는 그리고 쓰는 것에 진심을 다했다. 타인에게 마음을 전할 때도 짧은 글이나 소박한 그림하나를 곁들였고 그로 인해 조금 더 기뻐하는 것을 보곤 했다.
축하의 순간에 카드를 곁들이게 되면, 먼 훗날에도 그 카드를 읽으며 그날의 순간을 떠올리기 쉬어지고 두고두고 기억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엄마 이번에 선물 뭐 사다 드릴까요"
여행을 가는 아이가 물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쓰고 있는 물건이 있으면 그걸 다 쓰기 전에는 왠만해서는 새로 구입하지를 않았다. 욕심을 내서 쌓아두면 결국은 짐처럼 느껴져서 그런다고 말했더니 그런 엄마의 맘을 알고 미리 물어보는 것이었다.
"엄마는 다른 건 필요 없고 예쁜 노트나 하나 사다 줘"
그렇게 서랍 속에 간직한 노트에 마음을 적고 예쁜 삽화 하나를 곁들여 전할때 너무 행복했다. 별거 아니지만 작은 정성으로 상대가 행복해하는 그 순간이 내게도 선물이었다.
가끔 친구들이 "요즘도 카드를 쓰는구나"라고 놀라기도 하지만 행복한 취미를 중단할 생각은 없었다.
벚꽃처럼 곱고 사랑스러운 며느리를 처음 만나는 순간에도 나는 아주 정성스럽게 카드를 썼다.
모든 게 너무도 감사하고 설레어서 도저히 안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아들이 인생의 짝을 만나 설렘에 행복하듯
나도 못잖게 행복했다.
결혼식을 치르고 난 뒤 며느리에게 그려서 준 카드이다.
나는 수시로 나의 마음을 카드로 전했다.
며느리를 사랑하는 마음도 내리사랑임이 분명했다.
가족모임을 하며 맥주 몇 잔을 마신 며느리가 내 팔짱을 끼며 매미처럼 맹맹한 소리로 말을 했다
"어머니잉~~ 저 어머니가 만들어주시는 장조림 먹고시퍼여엉~~"
맨 정신에는 절대 그런 말을 못 할 성격인 애가 취중진담처럼 한 그 소리는 습자지에 떨어진 먹물이 스며들 듯 천천히 뇌리에 박혀버렸다.
한여름 나무에 매달려 죽기 살기로 울어대던 매미의 간절한 외침처럼, 며칠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며느리의 맹맹한 목소리...
열흘쯤 지나 며느리에게 줄 장조림을 만들었고, 서울 갔다가 볼일 보고 오는 길에 주고 오마라고 톡을 보내니 깜짝 놀라 전화가 왔다.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하며 그냥 해본 소리인데 어머니...라고 했다.
"그냥 해 본 소리라 해도 먹고 싶다는데....."
"부모는 원래 다 그런 거야"
"감사해요 어머니..."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주말을 지나 수요일쯤 되었다. 지금쯤이면 가져다준 장조림은 다 먹었을 테고, 빈 반찬통은 깨끗이 씻겨져 소핑봉투로 들어갔겠지.
아들이 지방대 기숙사에 있을 때 연락을 자주 안 한다고 내가 잔소리를 하면,
"엄마아~~ 무소식이 희소식이여~~"
"야~~ 이 자식아~~ 그런 거 필요 없고, 니 목소리 듣고 싶어 그니까 전화 쫌 자주 하라고~~!!!!
"헤헤~ 알았써요~~"
그때 이미 알았던 사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사실을 한동안 잊고 살았나 보다. 정성을 들여서 맛나게 했으니 맛났을 장조림, 잘 먹었을 거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아이들 손에 건네줄 때 " 어머니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라는 감사하다는 인사까지 들었는데.....
그런데 왜 나의 마음은 여전히 냄비 속에서 끓고 있는 홍두깨살처럼 식지를 않는 걸까?
"정말 맛있게 잘 먹었어요 어머니~"
짧은 단막극의 마무리를 짓는 멘트 한마디. '고객님의 격한 피드백 한 줄'이 필요한 동네 식당 사장님처럼 나도 감동의 피드백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말 한마디를 이렇게 기다릴 일인가?
아들과 며느리는 참 닮은 구석이 많다. 어디서 저리 똑같은 짝을 만났을까 하고 신기했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며느리를 더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상황을 보고 아들은 분명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 잘 먹겠습니다"하고 들고 갔으니 잘 먹었겠지 엄마. "감사하다"라고 했잖아~ 에이~ 서운할게 뭐가 있어.
아이의 말을 듣다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틀린 말이 없네.
모든 것은 감성이 과한 내 탓일까?
며칠 전 온라인 커뮤니티에 "곰팡이 김치"라는 사연이 올라왔다.
다들 짐작할 만한 내용이었고 줄줄이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그 당사자에 대한 생각은 접어둔다.
하지만 그 내용을 읽고 고민이 생겼다.
아주 많은 젊은 며느리들의 댓글을 읽으며, 그동안 우리가 사랑이라고 생각하던 시모의 보살핌이 더 이상 기쁨이 아닐 수 있으며, 고부간의 감성의 온도가 같지 않으면 서로 힘들 수 있다는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시어머니 입장을 백번 이해하며 최근까지도 반찬을 만들어 아들손에 들려 보냈던 때를 생각해 본다.
나도 앞으로는 꼭 한 번 더 물어보고 정말 필요하다고 할 때만 만들어줘야겠다.
"에이 잘됐지 뭐"
"내가 아쉽나 지들이 아쉽지"
한평생 남달리 감성적인 나의 성향들이 전혀 그러하지 않은, 뼛속부터 이과생인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사건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 다른 감성의 온도차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