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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정 Oct 03. 2020

10. 읽을 책 정하기_따로 또는 같이

- 책 모임 ≪책 읽는 도토리≫ 이야기


 책 모임에서 읽을 책 정하기
     

  책 모임에서 읽는 책은 어떻게 정하나요? 아이 책 모임에 관심 갖는 사람들이 내게 자주 묻는 질문이다. 그때마다 나는 “정해진 틀은 전혀 없어요. 마음 가는 대로, 편한 대로 하세요.”하고 답한다. 하지만 상대방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도무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당연하다. ≪책 읽는 도토리≫도 처음부터 책 선정은 이렇게 해야지 하고 정하고 시작한 건 아니다. 일단 책 모임을 만들고, 세부적인 것들은 모임을 해나가며 정했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봤다. 하다가 이게 아니다 싶으면 빨리 방법을 바꿨다. 모임을 오래 할 것이라 마음먹으면 실패에 대한 부담이 줄어든다.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면서 우리 모임에 잘 맞는 방법을 선택하면 된다.


   사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모임을 시작할 때는 막막했다. 책 목록을 한 사람이 정하는지, 여럿이 함께 정하는지,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마땅히 물어볼 데가 없었고, 참고할 자료도 찾기 어려웠다. 막상 모임을 오래 하니 그렇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싶지만, 처음에는 그랬다. 처음 모임을 시작하는 사람을 위해 ≪책 읽는 도토리≫에서 어떻게, 어떤 책을 정해 읽었는지 정리해볼까 한다. 우리가 읽은 책이 최선의, 최고의 책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아이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어 하는 엄마 마음을 듬뿍 담아 책을 정했다. 그 과정을  써 본다. 모임을  시작하는 누군가에게는 작게나마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따로 정하고, 함께 읽기(초등 1~2학년)


  아이가 초등 1학년일 때 ≪책 읽는 도토리≫를 시작했다. 엄마 넷이 돌아가며 책 선정과 발제, 진행을 했다. (발제란 함께 나눌 이야기를 질문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읽을 책은 네 집에서 돌아가며 골랐다. ‘내 아이가 좋아하는 책’, ‘내 아이와 읽고 싶은 책’으로 정했다. 각자 한 달에 한 번 책을 고르고, 자기가 고른 책으로 발제하니 부담도 적었다. 매월 말에 각자 고른 책을 모아 다음 달에 읽을 책 목록을 완성했다. 책 목록이 정해지면 각자 책을 구해 읽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거나 서점에서 구입해 읽었는데, 모임을 여러 해 하면서는 구입하는 책이 늘었다. 아이가 자기 책을 갖고 싶어 하기도 했고, 책 목록에 새로 나온 책들이 많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아이마다 책 읽는 취향이 다르니 다양한 장르와 주제의 책이 목록에 담겼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여러 분야의 책을 골고루 만났다.


  초등 1학년 때는 주로 그림책을 읽었다. 엄마도 아이도 책 모임은 처음이다. 그림책은 특별한 준비 없이도 아이들과 읽고 나누기 좋다. 모임 날 엄마가 읽어주고, 그림을 살피며 아이들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된다. 아이들의 생활과 감정을 잘 담아낸 책, 일상의 소동을 재미있게 다룬 책, 사는 곳 주변의 동식물을 새롭게 보여주는 책 등. 그림책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그림책으로 책 모임을 시작하면 참 좋다. 아이들이 2학년이 되면서 글이 조금 있는 책을 읽었다. <개구리네 한 솥밥>, <나쁜 어린이표>, <책 먹는 여우>, <내 이름은 나답게> 등. 그림책보다는 두께가 좀 있는 책들이다. 모임 전날까지 각자 집에서 엄마들이 읽어주었다. 읽어주느라 엄마들은 목이 아팠지만, 덕분에 아이들은 글이 조금 많은 책도 즐겨 읽게 됐다. 저학년 아이들이 그림책에서 글이 많은 책으로 스스로 넘어가기는 쉽지 않다. 책 모임에서는 아이들의 독서 단계를 조금씩 높여갈 수 있도록 책을 정하면 좋다.


  <프레드릭>, <지각대장 존>, <멋진 여우씨> 등 잘 알려진 책도 읽었지만, <일기왕 김동우>, <조금 늦어도 괜찮아>, <100원이 작다고?>처럼 덜 알려진 책도 읽었다. 특정 목록에 얽매이지 않고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책’, ‘우리 아이와 읽고 싶은 책’을 골랐기 때문이다. 모임 하는 계절이나 시기에 맞춰 책을 정할 때도 있었다. 우리 집 책장에서 아이의 사랑을 듬뿍 받은 책, 여러 사람이 읽고 좋다고 평을 남긴 책, 엄마가 읽어보니 좋아서 아이들에게 읽히고 싶은 책 등. 책 선정 이유도 다양하다. 각자 좋은 책을 한 가지씩 골라 한 곳에 모으니 풍성한 책 식탁이 완성됐다. 엄마 사랑이 가득 담긴, 영양 만점 한 상이었다. 이 책들을 맛있게 읽으며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랐다.


함께 정해서 함께 읽기(초등 3-4학년)


  아이가 3학년이 되던 해에는 1년 동안 읽을 책 목록을 함께 정해 보기도 했다. 하나의 주제를 깊이 읽어보자는 생각에 월별 테마를 정했다. 3월은 학교와 친구, 4월은 과학, 5월은 가족과 선생님, 6월은 위인, 7월은 여름과 여행, 8월은 오싹한 이야기, 9월은 전통, 10월은 가을, 11월은 인권, 12월은 겨울과 크리스마스로 아이들과 함께 나눌 이야기 주제를  정했다. 발제와 진행도 엄마들이 차례를 정해 한 달씩 맡았다. 그동안은 한 사람이 한 달에 한 번씩 발제와 진행을 하면 됐다. 한 달 내내(4회) 발제와 진행을 맡는 건 엄마들에게 큰 부담이다. 하지만 엄마들은 정해진 주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다뤄보고 싶다 했다. 새로운 도전 앞에서 망설이지 않았다. 책 모임을 하며 아이뿐만 아니라 엄마도 훌쩍 자랐다. 내 아이를 위한 일이기에 기꺼이 읽고 쓰는 수고를 감당하려 애썼다.


  월별로 정해진 테마에 따라 읽을 4권의 책은 함께 골랐다. 매월 마지막 모임 날에 다음 달 테마에 알맞은 책을 각자 2~3권씩 가지고 모였다. 함께 책을 살펴보고, 그중에서 읽을 책 4권을 골랐다. 어떤 책을 가장 먼저 읽을지, 책을 어떤 순서로 읽을지도 정했다. 한 달이 어쩜 그렇게 빨리 지나가는지 넋 놓고 있다 보면 책 고르는 날이 금방 돌아왔다.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고, 가족의 생활을 세심히 신경 써야 하니 엄마들은 늘 정신이 없다. 정해진 주제에 맞는 책을 미리 읽고 고르는 게 결코 수월하지 않다. 짬을 내서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오고, 집안일 하는 사이사이에 책을 읽었다. 아이에게 읽어주며 의견을 구하기도 했다. 엄마들이 애써준 덕분에 달마다 멋진 책 목록을 완성할 수 있었다. 다만, 한 해에 읽을 책 테마를 월별로 고정해두니 시기별로 읽고 싶은 책이나 새로 나온 책을 바로 읽을 수 없어 불편했다.  


   다음 해에는 엄마들이 돌아가며 한 달씩 발제와 진행을 맡되 그 달의 책은 발제자가 편하게 정하기로 했다. 아이들이 자라니 읽을 책이 더 다양해졌다. 책에 따라 읽는 방법도 다양하게 변화를 줬다. 두꺼운 책은 여러 번 나눠 읽었고, 시리즈로 된 역사책을 두 달에 걸쳐 읽기도 했다. 어느 달에는 모임에 나와 동시만 실컷 읽기도 했다. 어떤 정해진 형식 없이 자유자재로 읽고 나눴다. (3~4학년때 책 모임한 이야기는 하나씩 글로 자세히 쓸 생각이다. ) 어떤 책을 어떤 방법으로 읽어도 괜찮았다. 엄마도 아이도 책 모임을 마음껏 즐겼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책 모임 책이라면 즐겁게 읽었고, 책 모임에서 하는 활동은 무엇이든 열심히 했다. 어려운 책이라도 ‘책 모임 친구들과 함께 라면’ 기꺼이 읽었다.


  그래도 엄마들은 끊임없이 어떤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지 이야기 나눴다. “그거 참 좋네요.”하고 공감할 때도 많았지만, 서로의 의견에 조심스레 반대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책은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아이들이 더 자라면 읽지요.”, “ 책 모임은 수업이 아니니까 좀 더 아이들이 자유롭게 활동하게 해요.”하고 제안했다. 아이가 책을 잘 읽으니 부모는 좀 더 지식이 많은 책, 좀 더 어려운 책을 읽히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좋다는 고전 목록이 눈에 밟힌다. 이때를 잘 넘겨야 한다. 꼭 지금 아이와 읽어야 하는 책인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아이가 자기 이야기로 읽을 수 있을지, 이야기를 읽으며 즐겁게 새로운 세상을 경험할 수 있을지 따져봐야 한다. 혼자서는 어렵다. 함께 하는 엄마들의 조심스럽지만 따끔한 조언이 필요하다.


나와 아이가 만들어가는 책 목록

   이렇게 ≪책 읽는 도토리≫에서는 책 목록을 따로 또는 같이 정했다. 만약 어린이 책을 많이 읽고, 잘 아는 사람이 있다면 한 사람이 목록을 정해도 된다. 믿을만한 기관의 추천 목록을 구해 그대로 따라 읽어도 좋다. 처음에는 일단 해보는 데 의미를 두자. 읽을 책을  따로 정하든, 같이 정하든 다 좋다. 엄마들이 아이 책을 읽는다는 것만으로도 멋지다. ≪책 읽는 도토리≫는 5학년 때부터는 아이들끼리의 모임이 됐다. 엄마들이 직접 책을 고른 것은 4학년 때까지였다. 4년 가까이 아이 책을 읽은 엄마들은 많이 변해 있었다. “이렇게 아이 책이 재미있는지 몰랐어요.”, “좋은 책이 정말 많네요.”, “아이 책을 읽으니 아이들 마음을 알게 되네요.” 엄마들이 수줍어하며 말한다. 이제는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 아주 조금 알겠다고, 책을 왜 읽지 않느냐고 혼내는 대신 “이 책 재미있더라.”하며 아이에게 슬쩍 말 걸 수 있게 됐다 한다.


  세상에 좋은 책은 너무 많다. 잘 고른다고 골라도 더 좋은 책이 또 남아있다. 완벽한 책을 골라 아이가 완벽하게 읽도록 하려는 건 부모의 욕심이다. 드넓은 책 숲을 이리저리 헤매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이다. 아이 등을 떠밀어 억지로 혼자 가게 하지 말고, 아이 손잡고 함께 걸어 보자. 오늘 내 손에 있는 한 권의 책을 읽으며, 우리 아이 눈빛과 마음을 살피는 그 순간을 마음껏 즐기자. 그렇게 나와 내 아이가 읽은 책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책이다.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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