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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정 Oct 13. 2020

14. 마음이 말랑말랑_동시  함께  읽기

- 책 모임 《책 읽는 토토리》이야기

책 모임에서 동시집 읽기


   2017년 6월(초등 3학년)과 2018년 6월(초등 4학년)에 《책 읽는 토토리》의 테마는 시집 읽기였다. 동시집 두 권을 정해 한 달 내내 읽었다. 다른 책들에 비해 동시집은 아이들이 잘 읽지 않는다. 엄마들도 동시집을 챙겨 읽히지 않으니 아이들은 교과서에 실린 동시만 겨우 안다. 도서관의 동시집은 해가 지나도 새 것 같다. 아이들이 자주 찾아 읽지 않기 때문이다. 책 모임에서는 혼자 읽지 않는 분야의 책을 일부러 정해 읽기도 한다. ‘함께’가 주는 힘을 이용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이번에는 예쁜 말과 순수한 마음이 담긴 시를 함께 읽기로 했다. 종이에 프린트된 시가 아니라 온전한 시집에 담긴 시를 만나는 걸로 정했다.


   동시집으로 처음 책 모임 한 초등 3학년 때는 2주에 한 권씩, 총 두 권의 동시선집을 읽을 책으로 정했다. <어느 데인지 참 좋은 델 가나 봐>(권정생 외. 문학동네)와 <쉬는 시간 언제 오냐>(초등학교 93명 아이들. 휴먼어린이)이다. <어느 데인지 참 좋은 델 가나 봐>는 문학동네에서 동시집 50권 출간을 기념해 펴낸 동시선집이다. 시인들이 자신의 동시집에서 직접 뽑은 동시 50편이 들어 있다. <쉬는 시간 언제 오냐>는 전국 초등 국어교과모임 선생님들이 모은 아이들 시가 실려 있다. 여러 시인이 쓴 동시와 또래 아이들이 쓴 동시를 읽으며, 아이들이 다양한 빛깔의 동시를 맛보길 바랐다.


  아이들이 초등 4학년이 된 해에는 권오삼의 <라면 맛있게 먹는 법>과 주미경의 <나 쌀벌레야>를 읽었다. 한 작가의 작품을 깊이 읽었다. 엄마들이 한 달씩 책임지고 모임을 꾸려가고 있던 중이라 나도 잘 해내고 싶었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한 달 동안 시집을 어떻게 읽을 건지 미리 정했다. 하지만 매번 엄청난 계획을 세워야 하는 건 아니다. 책 모임을 3년 가까이 하니 특별한 준비를 많이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책 읽는 도토리》 아이들의 경우 초등 1학년~3학년 정도까지는 만들기, 그리기, 노래하기, 연극하기 등 다양한 활동을 많이 했다. 초등 4학년이 되면서는 점차 책 대화에 집중했다. 미리 계획한 것은 아니고 자연히 그렇게 되었다. 책 모임 횟수가 늘고,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특별한 활동 없이도 모임을 즐길 수 있었다.


시는 소리 내어 읽기만 해도 좋다


  특히나 시는 함께 ‘소리 내어 읽기’만 해도 참 좋다. 함께 모인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시에 몰입하게 해 주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해 준다. 책 모임 하다 살짝 지칠 때 동시집을 읽으며 잠시 쉬어가도 좋겠다. 아예 아이들과 동시집 읽는 모임도 할 수 있다. 일주일에 한 번, 따뜻한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시를 함께 읽는 시간을 가지는 거다. 마음에 들어온 시를 예쁜 공책에 옮겨 적어 본다.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활동하면 더 좋겠다. 옮겨 적은 시를 소리 내어 읽고, 떠오른 생각이나 느낌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눈다. 화려하고 시끄러운 자극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일부러 이런 정적인 경험을 갖게 해 줄 필요가 있다. 동시 읽기는 아이들이 속도를 늦추고, 차분하게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준다. 꼭 책 모임이 아니더라도 부모와 아이가 주말 아침마다 동시집 읽기를 해보면 어떨까.


  《책 읽는 도토리》 아이들도 한 달 동안 시 읽기를 마음껏 즐겼다. 집에서 동시집을 읽으려고 마음 먹어도 며칠 하다 흐지부지될 텐데 책 모임에서는 그럴 일이 없다. 한 번 시작하면 끝까지 해낸다. 함께 하는 친구들이 있고, 함께 읽자는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함께'의 힘이 어찌나 강력한지 지시와 강요 없이도 아이들은 기꺼이 읽는다. 매주 정한 날에 모여 동시집을 함께 읽고 간단한 활동을 했다. 다시 말하지만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고 그저 소리 내어 함께 읽기만 해도 된다. 모임에서 시를 읽고 나누는 건 생각보다 쉽다. 이미 아이들 마음이 활짝 열려 있고, 시를 흠뻑 느낄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일도 익숙하니 감상도 잘 말한다. 《책 읽는 도토리》에서는 기회가 될 때마다 동시를 함께 읽었는데, 여기서는 4학년 때 <라면 맛있게 먹는 법>(권오삼. 문학동네)을 읽은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


라면 맛있게 먹는 법 (권오삼 /문학동네 /2015)


<라면 맛있게 먹는 법> 함께 읽기


  먼저 오늘의 기분을 프리즘 카드에서 골라봤다. 프리즘 카드는 여러 해석이 가능한 이미지를 카드 형태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마음에 드는 이미지를 고르고, 그 이미지를 고른 까닭을 설명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보다 쉽게 표현할 수 있다. 짝꿍이 필통에 물을 쏟아 속상한 아이는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사진을, 시험을 100점 맞아 신났던 아이는 윈드 서핑하는 사진을 골랐다. 학교에서 소방 훈련을 한 날이어서 아이들은 더위와 열에 대한 사진도 골랐다. 책 모임을 처음 꾸려 말하고 듣는 연습이 필요하다면 프리즘 카드를 활용해 생각 나누기를 하면 도움이 된다. 나를 소개하는 이미지 고르기, 나의 기분에 어울리는 이미지 고르기, 책 모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고르기 등. 편하게 서로 알아가는 활동을 할 수 있다.


  이번에는 '시'하면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을 나타내는 이미지를 골랐다. 큰 풀잎 위에 개구리가 앉아 있는 사진을 고른 아이는 "시의 세계는 아주 넓은데, 나는 아직 다 모르니까. 나는 이 작은 개구리 같아요." 했고, 책이 빽빽하게 꽂힌 책장 사진을 고른 아이는 "시는 이 책처럼,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만들어진 거예요." 했다. 깜깜한 밤을 촛불이 밝혀주는 사진을 고른 아이는 " 내게 시는 평화로움을 줘요. 시의 주제가 따뜻한 마음이고, 시는 넓은 세상을 보여주니까요." 했다. 우리 아이는 음식이 한가득 담긴 접시 사진을 골랐는데, "시는 여러 가지 음식이 담긴 한 상차림이에요. 이것저것 다양하니까 좋아요." 했다. 자신의 생각을 담아낼 적당한 문장을 고르느라 아이들은 심각한 표정이었다. 뜬구름 같은 느낌에 딱 알맞은 낱말을 고르고, 몇 개의 낱말을 조화롭게 연결해서 말하기 위해 저마다 애를 쓰고 있었다. 아이들 생각 주머니가 쑥쑥 자라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


읽고, 고르고, 쓰고, 낭송하고


   동시집으로 하는 책 모임의 기본 활동은 당연히 시 읽기다. "지금부터 각자 천천히 시를 읽어보자. 읽다가 마음에 드는 시가 나오면 인덱스를 붙이는 거야." 하니 아이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시를 읽어나간다. 금방 시를 골라내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천천히 시를 음미하며 고르는 아이도 있다. 옆의 친구가 자기와 같은 시를 고른 걸 확인한 아이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고른 시 중에, 또 한 편만 골라서 '나만의 시선집'에 옮겨 적었다. '나만의 시선집'은 살짝 두꺼운 종이를 접어 책처럼 만든 뒤에 각장마다 글 쓸 수 있게 흰 종이를 붙인 것이다. 일종의  미니북이다. 앞표지가 되는 부분에는 길쭉한 라벨지를 붙여 제목을 쓸 수 있게 했다. 이걸 만드는 데 둘째 아이가 신나서 도왔다. 친구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미니북을 챙기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모임 때마다 마음에 드는 시를 고르고, 각자 미니북에 옮겨 적었다.


  각자 고른 시를 앞에 나와 낭송하고, 시를 고른 이유도 말했다. 《책 읽는 도토리》 아이들은 '쟁이'라는 시를 가장 좋아했다. "한 문장마다 내 친구가 하는 행동이 떠올라요.", "우리 반 친구가 떠올라요." 하며 들떠 말했다. '이사', '가로등'처럼 조금 슬픈 감정을 담은 시를 고른 아이도 있었다. 아이가 고른 시를 보면 성격, 관심사, 취향 등을 알 수 있다. 같은 시를 골라도 고른 이유가 또 다르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아이의 숨겨진 마음이 툭하고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동시를 함께 읽으면 아이 마음결을 살피고, 조심스레 다독일 수 있다.


자기가 고른 시 낭송하기

   동시집 읽기를 하면서 시 암송도 했는데, 이것도 좋았다. 자기가 고른 시를 외워서 낭송하니 더 시의 느낌을 잘 표현했다. 아이들은 암송을 마치고 "틀리지 않아서 다행이다.", "잘 낭송해서 뿌듯하다.", "시가 더 잘 느껴진다."라고 소감을 나눴다. 동시는 길지 않아 외우기 쉽다. 책 모임에서는 틀려도 덜 부끄러우니 아이들이 조금은 편안하게 낭송한다. 엄마들은 마음 넓은 관객이 되어 뜨겁게 손뼉 쳐 준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아이들 어깨에 힘이 쭉 들어간다. 자신감을 얻은 아이 얼굴이 반짝 빛난다. 시 읽기와 시 낭송을 자주 하면 좋다. 각자 시 낭송이나 암송을 마치면, 도토리가 뽑은 최고 동시를 한 편 골랐다. 아이들이 함께 뽑은 동시는 함께 낭송하고, 시를 만화로 나타내기, 시를 짧은 연극으로 표현하기, 시 속 인물에게 질문하기 등을 했다.


   이렇게 써 놓으니 뭔가 대단해 보이지만 정말 별거 아니다. 아이들과 읽은 동시집을 골랐고, 동시집을 함께 읽었다. 마음에 드는 시를 골라 서로 이야기 나눴다. 이게 전부다. 다른 활동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책놀이 관련 책을 찾아보면 시로 할 수 있는 놀이 활동이 정말 많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자료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일단은 아이들과 동시를 읽어보기만 해도 된다. 정해진 날, 정해진 장소에서 함께 소리 내어 읽자. 그렇게만 해도 친구의 목소리로 전해지는 고운 말과 따뜻한 마음을 아이들이 느낀다. 시를 소리 내어 읽다가 자기 마음에 콕 박히는 말을 만난다. 시에 담긴 아름다운 마음을 제 안에 담는다.


  동시 같이 읽을래?  

  

   책 모임을 하며 일 년 중, 한 달은 아이들과 동시집을 읽으려 노력했다. 아이들은 모임에서 읽는 책이면 다 좋아했지만, 특히 동시집을 많이 좋아했다. 읽는데 부담이 적어 좋기도 했을 거고, 시를 옮겨 쓰고 낭송하는 경험이 색다르게 느껴졌을 거다. 아이들은 "시는 내 옆에 붙어 다니는 친구 같다.", "엄청 재미있다.", "나도 시인이 되고 싶다.", "시 읽기 진짜 재미있다!"는 소감을 들려줬다. 5학년이 되면서 아이들끼리 책 모임 하니 동시집을 읽지 못했다. 책 선정을 아이들끼리 하니 동시집을 미처 챙겨 넣지 못한 탓이다. 이 글을 쓰면서 문득 아이들과 동시 읽기를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근하며 두 딸에게 "일요일 아침마다 동시 같이 읽을까?" 하니 바로 "좋아요!" 한다. 역시 책 모임으로 키운 딸들 답다. 어떤 동시집을 읽을까. 즐거운 고민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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