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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정 Oct 17. 2020

15. 벽돌 책 읽기_나니아 연대기

- 책 모임 《책 읽는 도토리》이야기

 아이의 책 읽기 수준을 높여가려면

   아이가 스스로 글이 많고, 구조가 복잡한 책으로 넘어가 주면 좋겠지만 그건 쉽지 않다. 오랫동안 독서 지도를 해보니 저학년에서 중학년, 중학년에서 고학년으로 넘어갈 때 아이들이 책 읽기에 흥미를 잃는다. 글이 많아지고, 이야기의 서사가 길어지니 책 읽기를 포기한다. 긴 이야기를 천천히 음미하며 읽을 때 얻을 수 있는 재미와 성취감을 느낄 기회를 갖지 못한다. 학습만화나 웹 소설을 읽으며 책을 많이 읽고 있다고 착각한다. 독서력도 이해력도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그 자리에 머문다. 글이 많은 책을 읽어내지 못하니 책과는 점점 멀어진다. 급기야 “나랑 책과는 안 맞아요.”, “책을 꼭 읽어야 되는 건 아니잖아요?” 하고 자신을 합리화하기에 이른다. 악순환이다. 이런 상태로 고학년이 된 아이를 다시 책으로 향하도록 하는 건 아주 힘들다. 분명 어릴 때는 책을 좋아했던 아이였을 텐데 안타깝다.


   아이가 책 읽기 수준을 높여갈 때 어른이나 동료의 도움이 필요하다. 물론 스스로 높은 단계로 훌쩍 뛰어넘는 아이도 있다. 하지만 내가 만난 아이들 중 많은 수가 자기 학년보다 낮은 단계의 책 읽기에 머물러 있었다. 중학년의 경우 그림책에서 글 책으로 넘어가지 못했고, 고학년의 경우 분량이 많고 서사가 긴 책을 읽어낼 힘을 기르지 못해 중학년 수준의 책을 읽었다. 독서 단계를 높여야 할 때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독서 단계를 살짝 높여줄 책을 추천해주고, 그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알려준다면 아이는 무난하게 다음 단계로 올라설 수 있을 거다. 책 모임에서는 이게 가능하다. 아이가 책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으면서 긴 호흡으로 책 읽는 것에 익숙해지도록 도울 수 있다. 책 모임은 아주 자연스럽게, 그러나 강력하게 아이를 다음 단계로 올려 준다.


《책 읽는 도토리》의 도전, 벽돌 책 <나니아 연대기>


   초등 1학년 여름에 시작한 책 모임이 3년째(초등 4학년), 134회 모임에 이르렀다. 그 사이 아이들은 그림책에서 저학년 동화로 건너갔고, 제법 긴 책도 무리 없이 읽을 수 있게 됐다. 이제 읽는 책을 한 단계 높여야 할 때가 된 것 같았다. 그래서 《책 읽는 도토리》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한 권의 책을, 긴 기간 동안 꾸준히 읽어보기로 한 거다. 때마침 여름 방학이어서 새로운 도전을 해볼 시간과 여유가 있었다. 호흡이 제법 길고, 인물이 다양하게 등장하면서 재미있는 이야기. 두꺼워서 다 읽었을 때 큰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책을 골라 읽기로 했다. 적당한 책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이렇게 저렇게 찾아보니 <나니아 연대기>(C, S 루이스. 시공주니어), <워터십 다운>(리처드 애덤스. 사계절),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케네스 그레이엄. 시공주니어) 괜찮아 보였다.  


    우리가 고른 책은 <나니아 연대기>이다. <나니아 연대기>는 신학자인 C.S 루이스가 쓴 판타지 소설이다. 세계 3대 판타지 소설에 꼽힐 정도로 유명한 아동문학의 고전이다. 1077쪽에 이르는 두꺼운 책이다. 시공주니어에서 두 가지 종류로 나온다. 하나는 네버랜드 클래식 시리즈 <나니아 나라 이야기>로 총 7권이 있다. 주니어용으로 그림이 많고, 활자가 큰 편이다. 다른 하나는 <나니아 나라 이야기> 1~7장을 한 권에 묶은 <나니아 연대기>이다. 활자가 작고, 그림도 적다. 이 책은 크고 무거운 ‘벽돌 책’의 위엄을 자랑한다. 아이에게는 큰 도전인 셈이다. 일단 책의 모양새가 근사하다. 검은 바탕 그림에 멋진 사자 아슬란이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데 아주 멋지다. 책의 두께가 무시무시하지만, 막상 읽으면 읽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판타지라서 특별히 배경지식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각 장이 하나의 완결되는 이야기 형식이라 여러 날 나눠 읽기도 좋다.      

<나니아 연대기>(C.S 루이스. 시공주니어)

  사실 큰 아이가 먼저 4학년 때 책 모임 《스페이스》에서 <나니아 연대기>를 완독 했다.(큰 아이 책 모임 이야기는 따로 쓸 예정이다.) 과연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아이들은 판타지에 열광했다. 완독 후에는 더욱 다양한 분야의 책, 더 두꺼운 책도 ‘기꺼이’ 읽게 됐다. 독서 수준이 한순간에 번쩍하고 뛰어올랐다. 과연 《책 읽는 도토리》 아이들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둘째 아이는 큰 아이보다 한글도 늦게 뗐고, 독서 흥미도 낮은 편이었다. 책 모임 덕분에 책 좋아하는 아이가 되었지만, 아직 긴 이야기는 읽기 힘들어 한다. 글자 많고 두꺼운 책 한 권을 읽기보다 저학년용 동화책 여러 권을 읽는 아이다. 둘째 아이가 <나니아 연대기>를 끝까지 읽어낼 수 있을까. 나는 이번에도 책 모임의 힘을 믿어보기로 했다.


  이 때는 한 엄마가 한 달 모임을 책임지던 때라 <나니아 연대기>는 두 엄마가 진행하기로 했다. 책이 1~7장으로 이뤄져 있으니 매주 1장씩 읽으면 7주면 완독 할 수 있다. 완독 후 8주 차에는 책 내용을 총 정리하는 활동을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일단 책을 모두 구입했다. 낱권으로 된 책도 있는데, 다들 벽돌 책 <나니아 연대기>를 선택했다. 책 크기만큼 가격도 비쌌다. 평소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던 아이들도 이번에는 기꺼이 책을 샀다. 책은 되도록 사서 읽는 게 좋다. 긴 기간 읽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책을 구입하면 아이가 ‘이건 내 책’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더 애착을 갖고 열심히 읽는다. <나니아 연대기>는 더욱 사서 읽어야 한다. 검은 표지에 황금빛 사자가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이 근사한 책을 빌려 읽을 수는 없다. 보기만 해도 “와!”하고 탄성이 나오는 책, 아이가 한 손으로 들 수도 없는 거대한 책이다. 2018년 8월~10월, 《책 읽는 도토리》는 <나니아 연대기>와 한 계절을 보냈다.


벽돌 책 읽기의 어려움은 잠시....판타지 세상에 폭 빠지다.


   “엄마, 나 같은 데를 몇 번째 다시 읽어요.”

독서대 앞에 앉아 있던 아이가 울상을 짓는다. 판형이 크고, 글자가 작은 책은 처음이라 한 줄 읽고 다음 줄로 넘어가질 못했다. 읽은 곳을 놓쳐서 다시 처음 읽은 곳으로 돌아오고, 또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할 수 없이 아이는 15cm 자를 문장 아래 대어가며 읽었다. 분량도 만만치 않다. 넋을 놓고 있다가는 책 모임날까지 절대 읽을 수 없다. 나는 아이와 함께 매일 읽을 분량을 나누어 포스트잇으로 표시했다. 1장을 일, 월 , 화, 수, 목 5일에 걸쳐 읽는 계획을 세웠다. <나니아 연대기> 처음 부분을, 아이는 정말 ‘꾸역꾸역’ 읽었다. 솔직히 엄마인 나도 이렇게 두꺼운 책을 꾸준히, 끝까지 읽은 경험이 없던 때이다. 책 모임 친구들도 “이 책을 언제 다 읽나...”, “아, 힘들다.” 했다는 걸 나중에 전해 들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금세 나니아 세계로 훅하고 빨려 들어갔다. 루시, 피터, 애드먼드, 아슬란,……. 모험과 도전이 가득한 상상의 나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어요.”, “ 내가 루시라면 툼누스가 불쌍해서 방으로 들여보낼 거예요.”, “루시는 정말 용감해요.”, “나도 아슬란을 진짜 만나보고 싶어요.” 책모임에서 아이들은 그 어느 때 보다 신이 나서 얘기를 많이 했다. <나니아 연대기>로 한 첫 번째 모임은 대성공이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아이들은 쉽고 재미있게 책을 읽었다고 했다. 인물의 모습과 책 속 장소를 제 나름대로 상상하며 즐거워했다.  인물의 행동에 공감하거나 공감하지 못한 이유를 말하며 신나 했다.


  첫 책 모임을 한 뒤로 아이는 술술 책을 읽어나갔다. 중간에 7권짜리 주니어용 <나니아 나라 이야기> 시리즈로 읽기도 했는데, 그림이 많아서 상상하는 재미가 줄어든다며 실망스러워했다. 자기가 상상하던 그 모습이 아니라는 거다. 그림이 없는 게 좋다며 다시 벽돌 책 <나니아 연대기>를 펼쳐 들었다. 아이는 친척들이 방문할 때마다 “저요. 나니아 연대기로 책모임 해요.” 하며 펼쳐둔 책을 자랑했다. 헉 소리 나게 두꺼운 책을 읽는다니 친척들이 깜짝 놀랐다. 그 모습을 보며 아이는 더 신이 나서 책을 읽었다. “엄마, 나 오늘 분량 다 읽었어요.”하며 시키지 않아도 책 읽기 계획을 지켰다. 이제 더 이상 자를 대고 읽을 필요가 없었다. 아이는  “엄마, 발제문 올라왔어요?” 하며 다음 책 모임 날을 기다렸다. 놀라운 발전이었다.


  엄마들에게도 <나니아 연대기>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다양한 인물과 사건으로 이루어진 이야기를 아이들과 어떻게 나눠야 할까 고민이 많았다. 작가와 작품에 대해 찾아보고, 책을 꼼꼼하게 읽었다. 각 장의 내용에 따라 짝 토론, 질문 만들기, 연극, 생각그물 그리기 등 다양한 활동을 적용했다. 매번 발제나 진행이 잘 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이에게서 “다음에는 우리 엄마가 발제인데, 우리 엄마는 발제를 좀 못하셔서 큰일이다.”는 애정 어린 조언을 듣기도 했다. 그래도 엄마니까, 꾹 참고 계속했다. 더 잘해보려고 애썼다. 책 모임을 오래 하니 아이들이 어떤 질문이 좋은지, 어떻게 진행해야 책 모임이 잘 되는지 안다. 이렇게 아이들은 어깨너머로 발제하는 법과 진행하는 법을 배웠다. 이게 나중에 아이들끼리 모임 할 수 있는 바탕이 됐다.

나니아 연대기 읽기, 폼 나는 책 읽기
나, 나니아 연대기 읽은 사람이예요.

  

   <나니아  연대기>를 한 주에 한 부씩 꾸준히 읽었다. 제1부 부터 제7부까지를 두 달에 걸쳐 읽었다. 드디어 2018년 10월 12일, 아이들은 <나니아 연대기>를 완독 했다. 이 날은 우리 아이가 처음 두껍고 긴 책을 끝까지 읽은, 특별한 날이다. 도토리 엄마들은 떡 케이크와 간식을 준비했다. 일종의 책거리였다. 긴 시간 책을 읽었고, 매주 모여 책 이야기를 나눈 우리 모두가 축하받는 자리였다.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나니아 완독을 축하합니다.” 하며 노래 부르고, 서로에게 박수를 짝짝 쳐 줬다. 한 엄마가 준비한 반짝반짝 빛나는 수료증도 아이들에게 수여했다. 우리 아이는 어깨에 힘 딱 주고, 수료증을 받았다.  


   위 어린이는 기나긴 이야기 <나니아 연대기>를 무한한 상상력과 빛나는 인내심을 발휘하여 완독 하였기에 이 수료증을 주어 칭찬합니다.


 수료증에 넣은 문구다. 엄마들은 책 읽기를 즐겁고, 특별한 사건으로 만드는 재주를 가졌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해낸다. 아이는 수료증을 집에 가져와 며칠 내내 쓰다듬었다. 전 보다 자주 책장 앞을 서성였다. “엄마, 나 이제 어떤 책이든 읽을 수 있어요! 돈키호테, 비밀의 화원, 80일간의 세계일주…. 뭐든지 다요!” 아이의 얼굴이 반짝반짝 빛났다. 6학년이 된 지금도 수료증을 가끔 꺼내보며 뿌듯해 한다. 자기가 그때 얼마나 대단했냐며 잘난 척도 좀 한다. 나는 그런 아이 모습이 참 좋다. 벽돌 책 읽기를 끝낸 자신을 꽤 근사하게 여기는 마음, 그 마음이 아이가 스스로 책을 읽게 해주었다. 아이는 이제 어떤 책이라도 끝내 읽을 수 있고, 그렇게 읽고나면 새로운 생각이나 즐거움 감정을 얻게 된다는 걸 알았다.


  <나니아 연대기>를 완독 한 후 아이는 두꺼운 책도 글자 많은 책도 더 이상 겁내지 않았다.  어떤 분야의 책이든, 어떤 두께의 책이든 가리지 않고 읽었다. 책 읽기를 더 좋아하며 잘하게 됐다. 독서 수준이 훌쩍 높아졌다. 아이가 고른 책을 보고 내가 “읽을 수 있겠니?”하고 걱정하면 아이는 당당하게 말하곤 했다.

“엄마, 나~~~ 나니아 연대기 다 읽은 사람이에요.”

"에이, 나니아 연대기도 읽었는데 이걸 못 읽겠어요!"

아이는 그렇게 독서 계단을 하나 더 올라섰다. 책 모임 덕분에 아주 쉽고 자연스럽게. 책 모임은 아이에게 독서 징검다리가 되어 준다. 친구들과 재미나게 폴짝폴짝 뛰다 보면 독서 수준이 쑥쑥 올라간다. 책 읽기 흥미를 잃지 않으면서 더 깊은 책 세상으로 나아가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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