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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정 Oct 28. 2020

16. 책 모임의 핵심_질문

- 책 모임 《책 읽는 도토리》 이야기

질문이 중요하다

  

  책 모임의 핵심은 질문이다. 질문이 없다면 아이들은 금세 책을 벗어나 제멋대로 이야기를 펼친다. 마구 뻗어나간 이야기는 책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뭔가 많이 떠들었지만 남는 것이 없는 대화가 책 모임을 채운다. 모임 전에 대충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정해놓으면 책을 중심으로 대화하기 좋고, 혹시 이야기가 책을 벗어나더라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기 수월하다. 질문은 이야깃거리이자 함께 나눌 이야기 주제이다. ‘책 읽는 모임’이라는 책 모임의 성격을 분명히 해주고, 책 내용과 관련된 대화를 해나가도록 중심을 잡아준다. 아이들 모두가 책 모임을 많이 해봐서 책 대화를 잘한다면 질문을 따로 만들지 않는 것도 가능하다.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어떤 부분이 마음에 와 닿았는지 간단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작품의 주제와 관련해서 좀 더 깊이 이야기 나누려면 질문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반응이 달라진다. 마음에 드는 질문을 만나면 아이들 머릿속에 새로운 생각들이 퐁퐁 솟아오른다. 서로 자기 생각을 말하려 애쓰니 모임이 활기차 진다. 뿐만 아니라 질문에 따라 책을 읽는 방향이나 해석하는 방법이 달라지기도 한다. 좋은 질문은 아이들이 혼자 읽을 때는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던 인물이나 장면을 깊이, 새롭게 보게 한다. 다양한 관점에서 책의 주제를 정리해보게 돕는다. 읽은 것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며 자신을 성찰하게 한다. 책 모임을 마치고 소감을 나눌 때 아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책을 이렇게 읽을 수 있는지 몰랐다.”, “혼자 읽을 때 생각하지 못한 것을 알게 됐다.”이다. 질문에 따라 읽은 내용을 다시 살피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보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책을 다시, 제대로 읽는 경험을 한다.


  이렇게 쓰고 보니 질문 이야기를 너무 거창하게 시작한 것 같다. 질문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엄청 대단하거나 심오한 것은 아니다. 특히 아이 책 모임에서는 질문을 조금 편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책 모임을 한 번만 하고 말 거라면 정해진 책을 깊고 넓게 다루는 질문을  심사숙고해서 만들어야 할 거다. 책에서 얻은 통찰을 우리 삶에 적용하는 질문까지 담고 싶어 욕심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책 모임은 한 번만 하고 끝나는 이벤트가 아니다. 일정 기간 동안 계속하는 모임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질문 만드는데 힘이 좀 덜 들어간다. 질문이 좀 이상하거나 거칠어도 괜찮다. 책 모임을 오래 하면 자연스레 아이들과 대화 나누기 좋은 질문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기도 한다. 완벽한 질문을 만들겠다는 욕심도 줄어든다. 책 모임 질문은 그저 '아이에게 말 걸기'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질문은 아이에게 '너의 이야기가 궁금해. 이야기해주겠니?"하고 가볍고 따스하게 묻는 일이다. 책을 잘 읽었는지, 무엇을 알고 있는지 확인하는 게 목적이 아니다. 목적을 달리하면 질문이 달라진다.


   책 읽고 나눌 질문을 정하는 일을 발제라고 하고, 하나의 양식에 질문을 정리한 것을 ‘발제문’이라고 한다. 발제문은 질문 목록이라고  할 수 있다. 《책 읽는 도토리》는 처음 4년 정도 엄마들이 발제와 진행을 돌아가며 했고, 이후에는 아이들이 발제와 진행을 돌아가며 했다. 책 모임 경험이 쌓이면서 아이들 스스로 질문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진행자는 발제문을 모임 하루 전까지는 밴드에 올린다. 다른 친구들이 미리 읽고 생각을 정리해보도록 돕기 위해서다. 아이는 발제문을 보며 “오, 이 질문 좋은데.”하기도 하고, 책을 다시 펼쳐보며 “이건 내가 놓친 부분이네.”하기도 한다. 발제문을 읽다가 모르는 내용이 나오면 책을 다시 읽는다. 아이가 어리고, 책 모임 경험이 많지 않을 때는 미리 엄마가 발제문을 보며 함께 간단히 이야기 나눠주는 게 도움이 됐다. 엄마랑 이야기 나누며 아이는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기본 질문 만들기

  나는 책 모임 진행할 때 보통 7~10개의 질문을 만드는데, 기본 질문 3가지와 발췌 질문 3~4가지, 책 모임 소감 나누기로 구성한다. 기본 질문은 모든 책에 공통으로 활용하는 질문 세 가지이다. ‘어떻게 읽었니?’,‘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어디니?’,‘너라면 어떻게 하겠니?’이다. 문학 작품일 때 이 세 가지 질문으로 기본적인 감상 나누기가 가능하다. ‘어떻게 읽었니?’는 모임을 시작할 때 책 전체를 어떻게 읽었는지를 가볍게 묻는 것이다. 이때 별점 주기를 해도 좋다. 소감 말하기가 서툰 아이는 별점 주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정하게 하면 말하기 편해한다.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어디니?’는 장면 대신 인물, 문장으로 바꿔 묻기도 한다. 비문학 작품이라면 ‘인상 깊은 장면’ 대신 ‘인상 깊은 내용’으로 바꿔 물으면 된다. 읽으면서 마음이 머무른 문장, 문구, 인물과 이유를 돌아가며 말한다. 항상 이 질문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책을 읽으면서 미리 마음에 드는 곳에 표시하는 습관을 갖게 됐다. 책 모임을 시작할 때는 항상 ‘어떻게 읽었니?’,‘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어디니?’로 이야기 나눈다. 책 내용을 간단히 훑어보며 대화 나눌 준비를 하는 거다.


  ‘너라면 어떻게 하겠니?’는 인물의 어떤 행동이나 선택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정해 보는 것이다. ‘찬성하니, 반대하니?’하고 묻거나 ‘공감하니, 공감하기 어렵니?’로 묻는다. 아이들마다 의견이 다르니 서로 재미있어한다. 조금 지루해질 때쯤 이런 질문을 하나 하면 아이들 얼굴에 생기가 돌아오고, 눈빛이 초롱초롱해진다. 이때 어느 쪽이 이겨야 하는 대화가 아니라 양쪽 이야기를 들어보며 다양한 방향에서 생각해보기 위한 대화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책 대화의 전제는 책 읽기에 ‘정답은 없다’이다. 모두의 생각과 감정은 존중받아야 한다. 이야기를 충분히 나누다 보면 다양한 의견 중에 조금 더 가치 있고, 조금 더 근사한 생각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책 모임 소감 나누기를 할 때 아이들은  “OO의 생각이 아주 좋았어요. 저는 주인공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봤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알았어요.”, “친구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내가 잘못 생각한 점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한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생각과 비교해보고, 더 나은 생각을 찾아가려 애썼다는 걸 알 수 있다.


발췌 질문 만들기

  기본 질문 3개에 발췌 질문 2개 정도와 책 모임 소감 나누기를 덧붙이면 6명 기준, 한 시간 책 모임이 가능하다. 발췌 질문은 발제자가 고른 책 내용을 옮겨 적고, 그에 대한 토론자의 생각을 묻는 것이다. 진행자의 의도가 가장 많이 들어가는 질문이라 할 수 있다. 발제를 하기 위해 보통 책을 2~3번 읽는다. 바쁠 때는 한 번만 겨우 읽기도 하지만 최소 두 번은 읽어야 책 모임을 어떻게 할지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처음에는 책을 그냥 읽고, 두 번째 읽을 때 아이들과 머무르고 싶은 장면, 문장에 표시한다. 밑줄 긋고, 인덱스를 붙인다. 급할 때는 책을 접는다.(발제할 책은 꼭 사서 읽는다.) 이렇게 표시한 부분 중에서 2~3개를 골라서 질문으로 만든다. 아이들이 놓치기 쉬운 인물의 마음 변화가 드러난 부분, 책의 주제를 잘 드러낸 부분, 아이들이 관련된 자기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 등을 선택한다.


  책 모임을 처음 할 때는 질문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막막하다. 조금이나마 이해를 돕기 위해 내가 책 모임에서 활용한 질문 몇 가지를 소개한다. 이것이 잘 된 질문이거나 본이 될 만한 질문이라서가 절대 아니다. 나도 여전히 우왕좌왕 길을 찾아가는 중이다. 읽는 분들이 ‘이렇게도 해볼 수 있구나’하고 용기를 얻기를 바란다. 먼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루이스 캐럴/비룡소)를 읽고 만든 질문이다. 이 책은 영국의 작가 겸 수학자인 루이스 캐럴(본명: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이 쓴 이야기이며, 유머와 환상이 가득한 이야기로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다. 둘째 아이가 5학년일 때 책 모임에서 읽었다.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려고 질문 10개를 만들었다. 앞서 소개한 기본 질문과 발췌 질문 외에 단답형 질문도 넣었다. 여기서는 기본 질문과 발췌 질문만 추려 소개한다.

[기본 질문]

 1. 별점을 주고, 읽은 소감을 나눠 봅시다.                     

     별점  ☆☆☆☆☆    이유

    

2.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어디인지 이유와 함께 말해봅시다.                    

     

3. 앨리스는 강둑에서 책 읽는 언니 곁에 있었습니다. 그때 분홍 눈의 하얀 토끼가 앨리스 옆을 휙 지나쳐 갑니다. 내가 만약 앨리스라면, 토끼를 따라갈까요? 따라가지 않을까요?

  ① 따라간다.     ② 따라가지 않는다.

     

[발췌 질문]

4.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앨리스는 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이다. 언니는 앨리스 얼굴 위로 떨어진 나뭇잎들을 살며시 털어 내고 있었다.

 언니가 말했다.

 “얘, 앨리스, 그만 일어나. 무슨 잠을 이렇게 많이 자니?”

 “아, 정말 이상한 꿈도 다 있네!”  (200쪽)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이어서 <프랑켄슈타인>(메리 셀리/비룡소)도 읽었다. 이야깃거리가 무척 많은 책이어서 질문을 꽤 많이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질문이 너무 많아 책 모임 때 다 다루지 못했다. 고학년 아이들과 얘기 나누기 좋은 책이다.

[기본 질문]

1.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별점을 주고 이유를 말해봅시다.                     

별점  ☆☆☆☆☆   이유


 2. 인상 깊은 장면을 골라 봅시다.(쪽수/이유)


3. 괴물은 빅터에게 자신의 짝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합니다. 실제로 빅터는 괴물의 짝을 만들다가 그만두지요. 내가 빅터라면 어떤 결정을 하겠습니까?

  - 만들어준다.

  - 만들어주지 않는다.


[발췌 질문]

4. 괴물은 오두막의 장님 노인에게 자신의 심정을 이야기합니다. ‘그 상냥한 존재들에게 나를 알리고 사랑받고 싶은 열망’(p.230)에 오두막 사람들의 ‘친절과 연민’(p.231)을 얻고 싶어 합니다. 괴물의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저는 불행하고 버림받은 존재입니다. 주위를 둘러봐도 친척 하나, 친구 하나 없지요. 제가 지금 찾아가는 그 상냥한 분들은 저를 본 적도 없고, 저에 대해 알지도 못합니다. 지금 제 마음은 두려움으로 가득합니다. 실패하면 세상으로부터 영영 버림받게 될 테니까요.’(p.233)


 ‘그들은 친절한 분들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존재이지요. 하지만 불행하게도 저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선량한 품성을 지니고 있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아무런 해도 끼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얼마간 도움을 주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들의 눈에는 치명적인 편견의 장막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봐야 하는데, 친절한 친구를 봐야 하는데, 대신 꼴 보기 싫은 괴물만 본답니다.’ (p.234)


5. 빅터는 드디어 생명 창조에 성공합니다. 하지만 일을 마치고 보니 ‘아름다웠던 꿈은 사라지고 숨 막히는 공포와 혐오감만이 가슴을 가득 채웠’습니다. 빅터는 자신이 창조한 ‘끔찍한 괴물’(p.100)을 피해 도망칩니다. 이 장면을 어떻게 보았나요?                    

 아아! 산 사람이라면 아무도 그 끔찍한 얼굴을 견딜 수 없으리라. 미라가 다시 살아난다 해도 그 흉물만큼 흉측하지는 않을 것이다. 완성하기 전에 그놈을 찬찬히 살펴본 적이 있었다. 그때도 추하기는 했지만 놈은 근육과 관절을 움직일 수 있게 되면서 단테도 감히 상상조차 못 했을 존재가 돼 버렸다. (…)


 나는 거리로 달려 나가 빠르게 걸었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그 흉물이 나타날까 봐 두려웠다. 숙소로 돌아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 (…) (p.102)


 정답은 없어요. 계속하는 게 중요해요

  이때는 내가 숭례문 학당에서 독서토론 리더과정을 수료한 뒤라 질문의 형식이 바뀌었다. 숭례문 학당 독서프로그램에서 활용하는 양식이다. 질문의 근거가 되는 해당 쪽수를 밝혀 적고, 책을 읽지 않은 사람도 질문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자세히 한다. 책 대화를 깊이 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나는 질문을 넉넉히 준비하고, 모임 날 아이들의 대화 모습을 보며 질문을 골라서 이야기 나눈다. 아이들이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싶어 하는 질문이 있다면 다른 질문은 포기하고, 그 질문만 한참 다루기도 한다. 상황에 따라, 아이들의 수준에 따라 질문의 유형이나 개수를 적절히 조절한다. 물론 항상 잘 되는 건 아니다. 질문을 잘못 만들어서 모임을 만족스럽게 끝내지 못하는 날도 많다. 애써 만든 질문이 너무 길어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모임이 지루해져 진땀 흘린 날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계속하는 게 중요하다. 정답은 없다.


  책 모임은 책을 도구로 슬쩍 아이에게 말을 거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엄마는 이렇게 생각해.”라는 일방통행 말하기를 멈추고, “네 생각은 무엇이니?”하고 계속 묻는다. 아이의 눈빛과 표정을 살피며 잘 듣는다. 이때 질문은 아이에게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려준다. “우리는 너의 이야기를 정말 듣고 싶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겠어.”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질문을 길잡이 삼아 아이들은 실컷 이야기판을 벌인다. 서로의 이야기를 모아 새로운 이해와 감동을 얻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자신만의 질문을 만들어낸다. 그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또 읽고, 생각하고, 묻는다. 오늘 내가 던진 질문은 미래에 아이가 만들 질문의 씨앗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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