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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정 Jan 04. 2021

17. 함께라면 뭐든 읽는다_한국사 시리즈 독파

- 책 모임 《책 읽는 도토리》 이야기

책 모임의 힘_무엇이든, 즐겁게 읽는다


둘째 아이 책 모임 <<책 읽는 도토리>>는  엄마들의 도움으로 약 5년 동안 안정적으로 운영했다. (6년 째 부터는 아이들끼리의 모임을 시작했다.) 엄마들은 읽을 책 정하기, 발제와 진행하기를 책임감 있게 해냈다. 매주 금요일 오후는 책 모임 가는 날로 정해두고, 학원이나 가족  일정을 조정했다. 아이들은 책을 성실하게 읽고, 책 모임날 자기 생각과 느낌을 열심히 표현했다. 꽤나 의젓하게 친구 이야기를 경청했다. 이렇게 책 모임이 아이의 일상에 탄탄하게 자리 잡으니 읽을 책을 정하는데 제약이 줄어들었다. 책 모임 책이라면 아이는 무엇이든 기꺼이 읽었고, 지루하고 어려워도 마침내 읽어냈다. 혼자서라면 선뜻 펼치지 않을 책도 책 모임 친구들과 함께라면  첫 장을 가볍게 넘겼고, 마지막 장까지 쉬지 않고 읽었다.


책 모임은 아이가 책을 읽게 하는 강력한 동기였고, 가장 큰 보상이었다. 책 모임 횟수가 늘고, 모임에서 읽어낸 책 목록이 늘어나는 것 자체가 아이에게 큰 성취감과 보람을 느끼게 해 줬다. '이거 읽으면 ~해줄게.' 같은 물질적 보상은 필요하지 않았다. '책 모임 책'이라는 것 자체가 아이에게 '읽어야 할 이유'였고, 친구들과 읽은 책으로 마음껏 이야기 나눈 시간들이 아이에게 귀한 독서 경험이 됐다. 아이는 책을 읽고, 책 모임을 하는 것 자체를 즐겼다. 책 모임에서 친구들과 함께라면 아이는 무엇이든, 즐겁게 읽다.

 



책 모임에 기대어 역사책 읽기  


아이들이 5학년이 되면서 역사책을 읽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학교 교육과정에 한국사가 나오는데, 과연 교과서만으로 아이들이 방대한 한국사를 잘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한국사를 특정 사건이 일어난 날짜나 위인 몇 사람 정도를 외우는 공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었다. 아이들이 좀 더 넓은 시야로 한국사 전체를 읽고, 과거를 살다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아가는 재미를 느끼길 바랐다. 아이가 스스로 역사에 관심을 갖고, 역사책을 찾아 읽어주면 좋으련만. 우리 아이는 그런 아이가 아니었다. 동화나 과학책(동물, 환경, 인체 따위)은 가리지 않고 읽는 편이나 역사책은 읽어본 적도 없고, 읽자고  권해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멀리 도망갔다.


사실 '지금, 여기'의 삶에 충실한 아이들에게 몇 백만 년 전 과거 사람들의 이야기를 궁금해하길 기대하는 게 무리다. 이렇게 아이에게 어떤 책을 슬쩍 읽히고 싶을 때는 '함께 읽기'를 하면 된다. 책 모임에서 친구들과 함께 읽기로 약속하면 된다. 책 모임의 마법이다. 책 모임은 어떤 책이라도 일단 읽어야 하는 강력한 동기가 되어 준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무조건 읽어야 해!"하고 책을 던져주는 것은 아니다. 왜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는지 잘 설득한다. (사실 설득이랄 것도 없다. 책 모임에서 읽기로 했다고 하면 아이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인다.) 


엄마들과 어떤 한국사 책을 읽을까 의논했다. 한 권으로 한국사를 요약한 책도 있지만 이왕 읽는 거 여러 권으로 자세히 정리된 책을 읽기로 했다. 사실 나는 이미 큰 아이가 책 모임에서 역사책 시리즈를 읽어내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큰 고민 없이 시리즈 읽기 쪽으로 선택할 수 있었다. 이맘때 6학년 었던  큰 아이는 친구들끼리  책 모임을 하고 있었고, 그 모임에서 5학년 때 <용선생의 시끌벅적 한국사>를, 6학년 때 <교양으로 읽는 용선생 세계사>를 읽었다. 어른 도움 없이 저희들끼리 돌아가며 발제와 진행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들이 참 대단하다 싶다. 긴 호흡으로 시리즈를 포기하지 않고 읽어내다니 놀랍다. 그냥 읽는 것도 어려운데 질문을 만들고 서로 이야기 나누기까지 했다. 몇 년간 책 모임해온 아이들이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이 아이들 이야기는 따로 글로 정리할 생각이다.


 <용선생의 시끌벅적 한국사>는 모두 10권이다. 역사책을 연이어 읽으면 지루하고 힘들 것 같아 매월 1권을 2주에 나눠 읽었다.  마지막 10권까지 읽는데  10개월이 걸렸다. 한국사를 읽고 이어서 세계사까지 읽었는데, 용선생 시리즈가 익숙하다 하여 세계사도 같은 시리즈로 읽었다. 시리즈물은 서술방식이나 편집 형식이 일정하므로 처음 몇 권만 익숙해지면 읽어나가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이것이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하다. 비슷하고 익숙하니 일정 권수가 넘어가면 지루해지기 때문이다. 당시 <교양으로 읽는 용선생 세계사>는 계속 출간 중인 상태였는데, 현재는 15권까지 나왔다. 아이들은 8권까지 읽었다.



<한국사 편지> 함께 읽기


둘째 아이 모임에서는 함께 읽을 책을 박은봉의 <한국사 편지>로 정했다. 여러 책을 살펴본 엄마들이 문체나 내용, 권수 등을 고려해서  골랐다. 10권짜리 한국사 책을 읽은 큰 아이가 힘들고 지루했다는 평을 해준 것도 참고했다. 큰 아이는 한국사를 자세히  알아볼 수 있어 좋았지만 10권을 끝까지 읽느라 꽤나 힘들었다고 했다. 둘째 아이 모임에서는 한국사 책을  이번 한 번만 읽고 끝낼 것이 아니니 너무 질리지 않게 5권짜리 책으로 훑고, 차차 또 다양한 역사책을 읽어가기로 했다. 1권을 2~3개의 부분으로 나눠 여러 주에 걸쳐 읽고, 2~3명이 나눠 발제와 진행을 하기로 했다. 3월부터 읽기 시작해서 8월 무렵 한국사 읽기가 끝나도록 계획을 세웠다.


한국사 책만 읽으면 지치고 힘들 수 있다. 그래서 한국사 책 1권을 읽고 나면, 각자 고른 동화책을 한 번 읽기로 했다. 한국사 책을 어떤 방법으로 읽을지, 언제 누가 발제와 진행을 할지 등을 정해 공유했다. 이렇게 세운 계획대로 한국사 읽기를 진행했고, 8월 무렵 <한국사 편지> 제5권을 읽고, 한국사 시리즈 읽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책 모임 책은 꼭 읽는다, 책 모임 발제와 진행은 돌아가며 한다, 책 모임날 꼭 만난다 등의 약속이 잘 지켜진다면 모임에서는 어떤 책이든 끝까지 읽을 수 있다. 탄탄하게 다져진 책 모임은 아이들이 낯선 책, 어려운 책으로 수월하게 올라서게 도와준다.


<한국사 편지>로 발제와 진행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정답은 없다. 책 모임 경험이 많은 아이들이라면 각자가 인상 깊었던 부분, 의문 가는 부분을 골라 나누기만 해도 좋다. 진행자가 읽은 부분에서 역사 퀴즈를 내고, 나머지 아이들이 맞추는 활동도 좋다. 책 읽는 도토리에서는 이때쯤 엄마들 도움을 줄여가며 아이들끼리 발제하고 진행하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책 모임 독립을 위한 일종의 과도기였다. 나는 이게 오히려 좋았다. 만약 엄마들이 발제와 진행을 맡았다면 한국사 수업이 되었을 거다. 책 내용을 암기해야 할 지식으로 여기고,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아이들과 확인하려 들었을 것이다. 엄마의 도움 없이 아이들이 질문을 고르고, 퀴즈를 만들었다. 어른들 보기에 가볍고 엉성해 보일 수 있지만 덕분에 아이들은 책을 즐겁게 읽었다.


책을 고를 때는 엄마의 생각이 많이 들어갔지만, 책을 읽어나갈 때는 아이들이 주인이 되어 놀이하듯 즐겼다. 물론 엄마의 욕심을 끝까지 내려놓을 수가 없어 수업처럼 되어버린 날도 있었다. 이의 발제를 도와주려다가 발제문에 엄마의 생각이 너무 많이 들어간 경우다. 책 모임 진행은 아이가 했기 때문에 수준 높은 발제를 아이가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책 모임에서는 아이들에게 뭔가를 가르치려 하면 안 된다. 한국사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즐겁게 읽고 왁자지껄 떠드는 중에 아이가 느끼고 배우고 성장한다. 그걸 믿어야 한다.

  

아이가 만든 질문들 


<한국사 편지>를 읽으며 아이가 만든 질문 몇 가지를 소개한다. 주로 읽은 내용을 확인하거나 특정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이다.


- 단군 신화에서 나라를 세운 이야기를 신비롭게 표현한 이유는 무엇일까?

- '국가'를 중심 낱말로 해서 다섯 손가락에 관련된 내용을 정리해서 써 보자. (다섯 손가락 그림)

- 내가 임꺽정이었다면, 부하 서림이 배신했을 때 어떤 생각과 느낌이었을까?

- 나만의 신록을 만들어 보자.

 (예) 체체왕 신록 - 오늘 아침 7시 체체왕 기상. 정각에 사냥하다 발이 꺾여 넘어졌다. 도토리 학자 중 혜씨, 예씨와 인스턴트 식품을 먹고, 다 있어요로 구경감. 베스트 라브느스에서 시원한 디저트를 먹었음. 5시 30분 도토리 학자들과 책 모임 연구. 8시 25분 피구에서 멋진 포즈를 취하려다 발이 꼬꾸라져 반깁스 후 통깁스를 한다고 함.

- 내가 조선의 농민이라면 탐관오리가 괴롭혔을 때 어떻게 했을까?

- 조선 농민의 삶은 어떠했던 것 같니?


읽는 분들은 '에이, 이 정도밖에 안 돼?' 할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스스로 질문을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2년 정도 아이들끼리 책 모임을 한 뒤에는 질문 만들기를 훨씬 잘하게 됐다.( 아이들끼리 모임 하는 이야기는 따로 쓸 예정이다. ) 그런데 이런 엉성한 질문만으로도 아이들은 1시간 동안 이야기를 실컷 나눈다. 질문에 답을 하다가 자기가 아는 다른 인물이나 역사적 사실을 꺼내놓고, 자기가 겪은 일, 읽은 책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런데 여기서 말이야."하고 자기가 궁금했던 부분을 짚어 보여주기도 하고, "oo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하고 친구들의 생각을 묻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나라면~"하고 지금, 여기서의 우리 이야기로 엮어낸다.


책 모임에서의 한국사 읽기는 역사 수업과 다르다. 분석하고 , 정리하고, 학습하지 않는다. 가볍게, 재미있게 읽고 왁자지껄 떠든다. 그러면서  한국사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해 주고, 한국사를 계속 알아갈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어 준다. 일종의 불쏘시개 역할이랄까. 이렇게 한국사를 읽고 나면 다에 더욱 깊이 있는 역사책을 골라 함께 읽을 수 있다. 읽을 수 있는 책의 수준이나 범위가 확장된다. 아이는 억지로, 떠밀려서가 아니라 기꺼이, 스스로 새로운 책 세계로 나아간다.  


함께 읽으면 뭐든 읽는다


책 모임이 아니었다면  우리 아이가 한국사 시리즈를 읽을 수 있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책 좋아하는 아이라도 평소 읽지 않던 분야의 책을 만나면 멈칫하기 마련이다.  어른이 '이거 꼭 읽어야 한다.'하고 덧붙인다면 저 멀리 도망간다. 책 모임은 아이가 새로운 책 세계로 나아갈 때 갖는 두려움 혹은 거부감을  많이 줄여준다. 아이는 지루한 책도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읽으면 덜 지루하다는 걸 알았고, 두꺼운 책도 친구들과 함께 여러 날 나눠 읽으면 끝까지 읽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친구들과 함께 읽기로 한 책은 무엇이든 끝까지 읽는 것이 습관이 됐다. 그러니 이제 책 모임에서는 무엇이든 읽을 수 있다.


한국사, 세계사, 정치, 사회 등. 아이는 세상을 더 넓게 , 깊게 이해하기 위해 읽어야 하는 책들을 책 모임의 힘에 기대어 읽는다. 다만, 아이가 어리다면 재미있는 책, 쉬운 책으로  친구들과 즐겁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더 많이 마련해주길 권한다. 책 모임 경험이 충분히 쌓이고, 아이가 세상 일에 궁금해할 나이가 될 때까지 기다려줘야 한다. 달콤한 책 모임 경험을 차곡차곡 쌓은 후에야 씁쓸한 책 읽기도 가능하다. 너무 일찍 쓰고 고된 책을 내밀면 아이가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다. 책 읽기도 책 모임도 엉망이 된다. 아이가 책 모임에 푹 빠지게 돕는 일이 먼저다. 책 모임이 일상이 된 후에는 아이는 친구들과 함께 뭐든 읽는다. 그렇게 책 모임에서 아이 마음의 키가 한 뼘 더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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