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모임 《책 읽는 도토리》 이야기
아이에게 듣고 싶었던 말, "우리끼리 책 모임 할래요!"
"엄마, 우리도 우리끼리 책 모임 하고 싶어요."
"우리는 언제 우리끼리 해요?"
5학년이 되고, 책 모임 5년 차가 되니 아이가 조르기 시작했다. 엄마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저희들끼리 모임을 하고 싶다 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엄마들과 함께 모임을 해온 아이들이다. 읽을 책을 고르거나 질문을 만들 때 아이의 의견을 듣기는 했지만 모임 운영을 온전히 아이가 한 적은 없었다. 모임을 할 때도 한쪽에 엄마들이 모여 앉아 아이들 이야기를 들었다. 워낙 오래 해오다 보니 아이들도 엄마들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이야기를 잘 나눴다.
그런데 아이는 성장하며 조금씩 엄마가 모르는 자기만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 엄마가 해주던 역할을 자신이 하고 싶어 했다. 이맘때 큰 아이는 친구들끼리 책 모임을 2년 가까이하고 있었는데, 둘째 아이가 보기에 좋아 보였나 보다. 언니처럼 하고 싶다고, 친구들하고만 모임 하고 싶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 생각은 어떤가 물어보니 다들 비슷한 생각이었다. 모임을 스스로 해보겠다는 아이의 말을 듣고 나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이 순간이 오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드디어 책 모임 독립기가 온 것이다.
아이들끼리도 책 모임 할 수 있어요!
아이들과 책 모임을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읽는 책의 종류나 모이는 횟수, 운영 방법(온라인/오프라인) 등에 따라 모임의 모양새가 달라진다. 어른과 아이 중 누가 운영의 주체가 되는지에 따라서도 모임의 형식이 달라진다. 어른 여럿이 도와가며 모임 이끌어 가기, 어른 혼자 아이 여럿을 데리고 모임 하기, 아이들끼리 모임 하기, 어른 주도의 모임과 아이 주도의 모임을 번갈아 가며 하기 등. 상황과 여건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모임을 할 수 있다. 내 경우에도 모임이 잘 되도록 애쓰다 보니 한 가지 방법을 고집하기 어려웠다. 해마다 아이들 상황이 달라지고, 모임 하는 사람이 바뀌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방식으로 모임을 하든지 결국에는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저희들끼리 책 모임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아이 책 모임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누군가와 책을 읽고, 생각하고 나누며 살아가길 바라서다. 책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 언제든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같이 책 읽을까요?"하고 말을 걸 수 있다면 아이는 외롭지 않을 거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책을 깊이, 새롭게 읽을 수 있다는 걸 안다면 아이는 경청하는 사람이 될 거다. 그러니 책 모임은 엄마가 하는 책 수업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아이가 주인공이 되고, 아이가 주인이 되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언젠가는 <<책 읽는 도토리>>가 아이들끼리의 모임이 되길 바라 왔는데, 막상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모임 하고 싶다 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모임에 대한 책임이 줄어드니 시원하면서도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없게 될 걸 생각하며 섭섭했다. 다른 엄마들도 아이들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너무 기특하다면서도 아이들끼리 잘할 수 있을까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했다. 아이들 이야기를 슬쩍 엿듣는 즐거움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엄마도 있었다. 책 모임에서 우리는 단지 책을 많이 읽기만 한 게 아니었다. 엄마들은 아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잘 꺼내놓을 수 있게 도왔고, 아이들이 속 마음을 말해주는 게 고마워서 정성껏 들었다. 책 모임 5년은 아이와 눈 맞추고, 아이에게 귀 기울이며, 아이에게 오롯이 집중한 시간이었다. 그런 책 모임을 아이들만의 공간으로 내어주려니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걱정되는 점도 많았는데, 가장 큰 걱정은 어른이 돕던 일들을 아이들 스스로 해낼 수 있는가였다. '아이들끼리 진지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 '장난만 치다 모임이 끝나는 건 아닐까', '모임 하다 싸우면 어쩌지' 등 걱정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고민 끝에 아이들이 모임 운영 방법을 익힐 수 있는 기간을 갖기로 했다. 6개월 정도를 일종의 과도기로 운영한 거다. 점차 어른의 영역을 줄이고, 아이의 영역을 늘려가도록 계획을 세웠다. 책 고르기, 질문 만들기, 활동 정하기, 활동 준비물 마련하기, 간식 준비하기, 다음 모임 안내글 밴드에 올리기 등을 하나씩 아이가 하도록 내어주는 거다. 여러 번 하면 아이도 제 나름대로 일의 순서와 방법을 익힐 거라고 기대했다.
조금씩 아이에게 자리 내어주기
" 얘들아, 이제 곧 너희들끼리 모임을 하게 될 거야. 그러려면 진행도 잘하고, 서로 이야기도 잘 나눌 수 있어야겠지?"
" 우와, 신 난다."
" 언제부터 내가 해요?"
자기들끼리 모임 할 수 있게 될 거라는 소식에 아이들 표정이 단번에 밝아졌다. 어른 없는 공간에서 자기들만의 시간을 가질 것을 생각하니 흥분되는 모양이었다. 아이들 목소리가 커졌고 말도 많아졌다. 모임 진행자가 어떻게 말하고 듣는지, 행동하는지를 눈여겨보라 했더니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런 아이들 모습이 귀엽고 고마웠다. 5년의 시간은 그냥 흘러간 게 아니었다. 열심히 애쓰는 엄마들을 보며 아이들도 책 모임의 중요하다는 걸, 소중하다는 걸 배웠나 보다. 아이들의 진지한 표정에서 자기들끼리의 모임도 잘해보겠다는 의지와 다짐이 읽혔다.
첫걸음, 질문 만들기
일단 한 달 정도 다 같이 질문 만들기를 연습했다. 모임이 장난이나 수다로 흐르지 않으려면 좋은 질문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질문은 책 모임의 든든한 중심이다. 아이들이 책 모임의 주인이 되려면 자신들이 나눌 이야기, 즉 질문을 잘 만들 수 있어야 한다. 한 달 동안은 책 이야기 나누기보다는 질문 만들기가 주 활동이었기 때문에 책 읽기는 잠시 멈췄다. 모임날 짧은 이야기 한 편을 읽고, 질문 만들기를 많이 했다. 그 방법을 간단히 소개해보면 이렇다.
1단계 짧은 이야기 읽고, '왜' '어떻게' '만약에' 넣어 질문 만들기
빈 공책에 프린트한 이야기를 붙인다.
함께 소리 내어 읽고, 내용을 확인한다. (인물, 사건 등)
왜, 어떻게, 만약에를 넣어 질문을 만들어 적는다.(각자 되도록 질문을 많이 만들기)
서로 공책을 돌려보며 친구들의 질문을 살펴본다.
2단계 좋은 질문 골라내기
지난 모임에서 만든 질문을 다시 보며 활동해도 되고, 새로운 이야기로 질문을 다시 만들어도 좋다.
자신이 만든 질문 중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하는 3개를 고른다. ( 좋은 질문에 빨간 스티커 붙이기)
3개 중에서 가장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하는 질문 1개를 고른다. ( 붙여둔 빨간 스티커에 별표 하기)
각자 고른 질문을 흰 종이에 크게 적어 칠판이나 벽에 붙인다.
가장 생각할 거리가 많고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되는 걸 고른다. (오늘의 최고 질문)
최고의 질문으로 이야기 나눈다.
3단계 가치 질문 만들기
짧은 이야기를 읽고, 이야기에 담긴 가치 혹은 미덕을 찾아본다. (배려, 용기, 도전, 감사 등의 가치 낱말 카드 활용)
찾아낸 가치(미덕) 낱말이 들어가게 질문을 만든다.
(예) 전래동화 '우렁 각시' 이야기를 읽고 만든 질문
우렁 각시가 총각에게 무엇인가 받기를 바라고 배려한 것이라면 그것은 배려일까?
평소 너는 누구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많이 느끼니?
각자 만든 질문으로 둘씩 짝을 지어 이야기 나눈다. (묻고 답하기를 번갈아가며 하기)
4단계 '너라면~'을 넣어 선택 질문 만들기
주요 인물이나 사건을 정리한다.
문제 상황을 찾는다.( 인물의 선택이 드러난 장면 찾기)
'너라면~' 넣어 질문 만든다. 되도록 많이 만든다. (너라면 어떻게 할 거야? 너라면 어떤 기분일까? 등)
만든 질문으로 둘씩 짝을 지어 이야기 나눈다.
5단계 만든 질문으로 돌아가며 진행하기
처음 모임에서는 이야기 읽고, 질문 만들고, 좋은 질문 고르기만 한다.
아이들이 각자 고른 최고 질문 3가지씩을 정리해서 발제문을 만든다.
두 번째 모임에서 발제문으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질문 만든 사람이 진행한다.
(아이들이 돌아가며 한 번씩 진행을 하게 된다.)
소감을 나누면서 어떤 질문이 좋았는지, 진행이 어떠했는지 이야기 나눈다.
이건 어떤 책에 나와 있거나 그럴싸한 전문가에 의해 검증된 방법은 아니다. 당시에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좋은 질문을 잘 만들게 도울까 고민한 결과일 뿐이다. 나는 아이들이 좋은 질문이 어떤 것인지 자연스럽게 알고, 질문 만들기를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도우려 애썼다. 아이들과 함께 질문을 만들고, 그중 좋은 질문을 고르고, 만든 질문으로 진행하는 연습을 많이 했다. 아이들은 이 과정을 무척 흥미로워했다. 하나의 이야기에 결이 다른 질문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고 놀라워했고, 자신이 만든 질문으로 진행을 할 때는 긴장하면서도 뿌듯해했다. 이맘때 아이가 쓴 책 모임 소감이다. '도토리 책 모임을 하면서 가장 기쁘고 완벽했던 날'이라고 적었다. 글을 다시 보니 스스로 해내는 기쁨을 만끽하며 환하게 웃던 아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참으로 가슴 벅찬 나날이었다.
발제문에 내 질문이 있으니 자랑스럽기도 하고 기뻤다.
토론을 할 때는 누구 한 명이 생각을 펑! 하고 터뜨려줘야 한다.
도토리 모임을 하면서 가장 기쁘고 완벽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