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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정 Jan 08. 2021

19. 아이들끼리 책 모임(2) 진행 연습

- 책 모임《책 읽는 도토리》이야기

질문을 만들었다면, 진행 연습하기


 6주(6회 모임) 정도 아이들과 질문 만들기 연습을 했다. 짧은 이야기(탈무드, 이솝우화, 전래동화)를 읽고, 질문을 만들고, 질문을 골라 이야기 나눴다. 1~4회 모임에서는 질문 만들기를 주로 했고, 5~6회 모임에서는 진행 연습에 집중했다. 그동안 엄마들이 만든 발제문, 엄마들이 진행했던 모습들이 좋은 본보기가 되어 주었다. 엄마들이 해온 것을 그대로 따라 해보기만 하면 되었다. 자신이 만든 질문이 일정한 형식을 갖춘 발제문이 되고, 그 발제문으로 이야기 나누는 게 되는 과정을 여러 번 경험했다.


뭐든 즐기며,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처음 질문 만들기를 할 때는 일단 질문을 많이 만들었다. 질문 만드는 게 익숙해진 후에 좋은 질문을 골라 발제문으로 만들었다. 좋은 질문은 주제(작가의 의도)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고, 생각할 거리 또는 그것에 대해 할 말이 많은 질문이다. 이런 게 좋은 질문이다 답을 알려주기보다는 만든 질문으로 이야기 나누는 기회를 많이 가졌다. 이야기를 해보면 어떤 질문이 친구들의 생각을 잘 끌어내는지, 좀 더 가치 있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돕는지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아이들에게 정답을 일러주는 대신 “이 질문 참 좋다. 친구들의 다양한 생각을 들을 수 있겠다.”, “오, 이런 질문도 만들 수 있구나!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겠다.”, “이야기의 주제에 딱 맞는 질문이네.” 하고 구체적인 피드백을 해주려 애썼다. 책 모임은 일방적인 수업이나 따분한 정답 찾기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항상 즐겁게, 자연스럽게, 편안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신경 썼다.


 진행 연습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잠시라도 아이가 진행을 하고 나면 “친구들 이야기를 잘 들어줘서 좋았어.”, “친구의 말을 정리해준 게 좋았어.”하고 폭풍 칭찬을 퍼부었다. 아이들이 얼마나 잘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즐기느냐가 더 중요하다 생각했다.《책 읽는 도토리》아이들은 이미 책 모임의 기본 틀을 잘 알고 있다. 읽고 나누는 일을 좋아한다. ‘우리끼리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만 한껏 올려주면 되었다. 질문 만들기와 진행 연습을 오래 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았다. 책 모임 한 경험이 많지 않다면 이런 활동을 몇 개월 더해도 좋을 것이다. 글이 적은 그림책에서 글이 조금 많은 책으로, 줄거리 정리에서 주제 찾기로 단계를 나눠서 질문 만들기와 진행 연습을 할 수도 있다. 연습을 많이 할수록 책 모임의 기본 틀을 잘 익힐 수 있고, 아이들끼리 모임을 해나기가 수월해진다.


샌지와 빵집 주인으로 진행 연습하기


  네 번의 모임 동안 질문 만들기 연습을 하고, 5~6회 모임에서는 본격적인 진행 연습을 했다. 이때 함께 읽은 책은『샌지와 빵집 주인』이다. 지와 빵집 주인이 ‘빵 냄새에 돈을 받을 수 있는가?’하는 문제로 재판관 앞에 선다. 사막의 도시 풍경과 인물의 특징을 잘 살린 유쾌한 그림에 재미난 논쟁거리를 담고 있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이다. 이 책은 집에서 미리 읽었고, 아이들마다 질문 5개를 만들었다.

샌지와 빵집 주인(로빈 자네스 글.  코키 폴 그림.  비룡소)

모임에서는 아이들이 만든 질문 5개 중 좋은 질문을 3개씩 골라 하나의 발제문을 만들었다. 이때 발제문은 특별한 형식을 갖추지 않고, 아이들이 만든 질문을 보기 좋게 정리한 것이다.

아이들 각자가 만든 질문/ 질문 만든 사람이 진행하기


떨리지만 즐거운 진행 연습


  6회 모임에서 이 발제문을 가지고 진행 연습을 했다. 사실 1~5회 모임에서도 진행 연습을 조금씩 해왔다. 둘씩 짝을 지어 질문하고 답하기를 했고, 각자 만든 질문 하나씩을 돌아가며 말하는 활동을 했다. 6회 모임에서는 좀 더 구색을 갖춰서 진행을 해보는 기회를 가졌다. 아이들은 돌아가며 진행자 자리에 앉아서 질문 3가지를 가지고 모임을 진행했다.  “자, 지금부터 『샌지와 빵집 주인』으로 이야기를 나눠볼게.”, “○○는 어떻게 생각해?”, “아하, 그렇구나.”, “또 얘기해볼 친구 있어?”, “이것으로 이야기를 마칠게.”하고 모임의 시작부터 끝까지 진행하는 말을 연습했다. 아이들은 진행하려니 떨린다면서도 막상 진행자 자리에 앉으면 기대 이상으로 잘 해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책 모임 5년 차, 어깨너머로 배운 것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임을 잘 꾸려보려 애써온 엄마들 덕분이다.


 사실 책 모임의 진행자는 질문만 하는 게 아니라 발표자에게 적당한 피드백을 주고,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참석자를 챙기며, 이야기의 흐름이 매끄럽게 이어지도록 조정하는 어려운 일을 한다. 몇 번의 연습으로 능숙해질 수 없다.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자세, 열린 생각과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책 모임에 대한 애정 등 좋은 진행자가 갖춰야 하는 자질은 단기간에 길러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진행자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고, 진행자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만 알면 족하다. 나머지는 모임을 해나가며 직접 겪고, 느끼고, 배워야 한다.


  이렇게 총 6회(약 한 달 반)의 연습 기간을 끝내고, 아이들끼리의 모임을 시작했다. 아이들이 돌아가며 자기가 발제할 책을 정하고, 질문 7~8개로 발제문을 만들고, 1시간 정도 모임을 진행하기로 했다. 미리 발제 순서를 정했고, 발제할 책을 정해 목록을 완성했다. 여전히 ‘이 녀석들이 잘 해낼까?’ 걱정하는 엄마들과 달리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작당할 생각에 잔뜩 들떴다. 초등학교 5학년은 뭐든 어른 빼고, 저희들끼리 해야 좋은 나이다. 책 읽기도, 책 수다도 그렇다. 책 모임에서 이제 엄마들이 빠져줘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섭섭하지만 어쩔 수 없다.


책 읽는 도토리가 책 읽는 참나무가 되다.


  집에 돌아온 아이가 엄마 컴퓨터 앞에 앉아 잔뜩 폼을 잡는다. 어설픈 독수리 타법으로 뭔가를 띄엄띄엄 써넣는다. 가까이 가서 보니 책 모임 이름, 날짜, 발제자 이름을 첫 줄에 써넣었다. 엄마의 발제문을 흉내 내어 자기 발제문을 만들고 있다. 아이가 싱긋 웃으며 “엄마, 별점 주기부터 하면 되겠지요?” 한다. 아이가 저리 흥을 내며 책 모임 준비하는 걸 보니, 5년이란 시간이 그냥 흘러간 게 아니구나 싶어 감사했다. 알게 모르게 아이는 많은 걸 스스로 배웠고, 책과 책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로 자라주었다.


  한참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아이가 불쑥 묻는다.

 “엄마, 우리는 이제 다 커서 도토리가 아니에요. 책 읽는 참나무가 됐어요.”

  그러고 보니 정말 그랬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고만고만한 키에, 올망졸망하던 아이들이 이제 몸도 마음도 쑥 자라 열두 살, 5학년이 됐다. ‘도토리’라고 부르기가 왠지 어색하다.

 “그래, 친구들하고 얘기해보고 모임 이름도 새로 짓자.”

 아이는 내 말을 듣고, 다시 고개를 숙이고는 하얀 화면 가득 질문을 채워갔다. 그런 아이 모습이 너무 고와서 코끝이 찡해졌다. 내 아이는 그렇게 또 한 뼘 더 자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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