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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정 Jan 11. 2021

20. 아이들끼리 책 모임(3) 우리 아이의 첫 진행

- 책 모임《책 읽는 도토리》이야기

책 고르기


“ 엄마, 이 책이 어떨까요? ” 

“ 아니야, 이건 너무 어렵겠네.”

“ 이건 애들이 할 말이 없을 것 같고.”

 아이가 엄마에게 물었다가 저 혼자 답하다 하며 책장 앞을 서성인다. 책 모임에서 친구들과 함께 읽을 책을 고르느라 진땀을 빼는 중이다. 아이는 생애 첫 책 모임 진행을 앞두고 있다. 자신이 직접 발제와 진행을 해야 하니 아무 책이나 고를 수 없단다. 이 책 저 책 골라 탑을 쌓는 아이 모습이 제법 진지하다. 서너 개의 책탑을 쌓은 후에야 책 고르기가 끝났다. 


아이가 고른 책은 김유 작가의 <안읽어 씨 가족과 책 요리점>이다. 안읽어 씨 가족은 집에 책은 많지만, 책은 잘 읽지 않는다. 이런 안읽어 씨 가족이 책 요리점에 가서 책의 매력을 잘 담아낸 책 요리를 맛보며 책의 매력을 알게 되는 이야기다. 안 읽어 씨 가족이 책 요리를 먹고, 책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과정이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아이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자기가 책을 어떻게 읽고 있는지 돌아봤고, 맛보고 싶은 책 요리를 상상하며 즐거워했다. <안읽어 씨 가족과 책 요리점>은 책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아이가 좋아하는 이야기다. 분량도 적어 줄거리 파악이 쉽고, 친구들과 나눌 이야기도 비교적 수월하게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 진행할 책으로 안성맞춤이다. 

안 읽어씨 가족과 책 요리점(김유/문학동네)


중요한 부분에 인덱스 붙이기


 아이는 그 자리에 앉아 책을 읽어나갔다. 이미 여러 번 읽은 책이지만 또 읽는다. 줄거리와 주제를 알아야 질문을 만들 수 있다. 질문을 만들려면 책을 여러 번 읽지 않을 수 없다. 자연스럽게 책을 다시 읽으면서 처음 읽을 때 놓쳤던 부분을 발견하고, 문장의 의미를 명확하게 깨닫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아이는 책을 읽다가 마음에 와 닿는 장면이나 문장에 표시한다. 인덱스를 척척 붙여나간다. 엄마가 발제할 때 어떻게 하는지를 눈여겨보았다 따라 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의미 있는 장면, 의문이 가는 부분, 토론거리가 생길만한 부분에 인덱스를 붙여두면 발제할 때 유용하다. 뭔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듯 진지한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신기하고 뿌듯했다. 


질문 만들기


 책이 두껍지 않아 인덱스 붙이기는 금방 끝났다. “휴~”하고 깊은숨을 내쉰 아이는 “엄마, 질문 만들어야 하는데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한다. 나는 아이의 일에 엄마가 끼어들어 이것저것 가르치면 안 될 것 같아서 멀리서 지켜보고만 있었다. 아이가 도움을 요청하니 얼른 달려갔다. 아이와 늘 해왔던 대로 가볍게 책 이야기를 나눴다. 

“이 책이 왜 마음에 들었어?”

“안읽어 씨 가족의 모습이 재미있어요. 안읽어씨는 책은 갖고 다니는데 안 읽어요. 산만해 여사는 산만해서 책을 못 읽어요. 안봄은 책을 갖고 놀기는 하는데 이름처럼 책을 전혀 안 보고요. 아, 개 왈왈씨도 있어요. 책을 밥그릇으로 써요. 하하. ”

“아하, 그러네. 이 책은 인물 특징이 잘 드러나 있구나. 너는 어때? 책 읽는 거 좋아하니?”

“그럼요. 그런데 읽는 것도 좋지만, 책으로 집 만들기 하거나 책탑 쌓는 것도 좋아해요.”

“이 책이 마음에 든 또 다른 이유가 있을까?”

“책 요리점이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메뉴판에 책 요리가 나오는데, 맛보고 싶어요. 절로 웃음이 나는 맛이 제일 궁금해요.”


아이는 어느새 질문 만들기는 잊어버리고, 책 이야기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실컷 책 이야기 나눈 후에 “지금 엄마랑 나눈 이야기를 친구들이랑 하면 될 것 같은데?”하니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아하!” 한다. 인물의 특징을 살펴보고, 재미있었던 장면을 골라보고, ‘나라면~’하고 생각해보는 것. 문학 작품으로 책 이야기 나눌 때 가장 기본적으로 나눌 수 있는 이야기다. 질문 만들기가 잘 되지 않을 때 이 세 가지를 활용하면 도움이 된다. 이렇게 해서 아이는 자신만의 첫 발제문을 완성했다. 컴퓨터로 질문을 정리했는데, 표 만들기나 그림 넣기 등 편집은 아이의 요청에 따라 내가 도와줬다.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 아이에게 묻고, 아이가 원하는 만큼만 도왔다. 엄마인 나의 생각이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했다. 


우리 아이, 생애 첫 번째 책 모임 진행 


드디어 아이가 첫 진행을 하는 날이다. 뭐든 처음 할 때는 실수할까 봐 걱정되고, 잘할 수 있을까 두렵기 마련이다. 아이도 처음 책 모임 진행을 하던 날 많이 떨었다. 엄마 목걸이를 행운의 부적인양 목에 걸고서야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나중에 아이에게 물어보니 친구들이 말을 잘 안 해주면 어쩌나, “응.”,“아니.”로만 답하면 어쩌나 하는 게 가장 걱정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아이는 제법 의젓한 모습으로 책 모임을 진행했다. 출력해온 발제문을 친구들 자리에 놓아주고, 책상 가운데에 앉아 모임을 이끌었다. 당시 책 모임은 도서관 강의실을 빌려하고 있었는데, 엄마들은 강의실 한쪽 끝에 앉아 아이들이 모임 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물론 안 보는 척, 안 듣는 척하면서) 그러다 내 아이가 진행하는 걸 많이 어려워하면 슬쩍 곁에 가서 도와줬다. 


“자, 그럼 별점주기부터 해볼게.” 하고 아이가 진행을 시작했다. 아이의 걱정과는 다르게 친구들이 이야기를 활발하게 나눠줬다. 3점에서 5점까지 책 점수도 다양하게 나왔고, 저마다 점수를 준 까닭도 풍성하게 얘기 나눴다. 인물의 특성이 잘 드러났다, 책 요리가 재미있다, 책 싫어하는 친구들이 읽으면 책이 좋아지겠다, 이야기가 짧아 아쉬웠다고 했다. 아무래도 아이가 진행을 하다 보니 질문이 단조롭고, 참석자의 말에 이어지는 추가 질문을 하지 못해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곁에서 보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니?”, “조금 더 설명해줄래?” 같은 말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한달음에 달려가 이렇게 저렇게 말하라고 알려주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엄마가 자꾸 가르치려 들면 ‘너는 잘못하고 있어.’라는 메시지를 주게 될 것 같아서다. 아이가 할 말을 찾지 못해 난처해할 때만 얼른 가서 귓속말을 해주었다. “잘하고 있어. 계속 그렇게 하면 돼. 지금은 이렇게 말해보면 좋을 것 같아.”하고. 


이날 발제문 중에 가장 인기가 많았던 활동은 <나만의 메뉴판 만들기>였다. 아이들은 책 가게 주인이 되어 자기가 원하는 메뉴를 만들었다. 편안한 레스트토랑, 신기한 책 요리 가게, 신선한 문제집 요리점, 신비하고 즐거운 요리점, 모두 다 책 요리점 등 재미있는 가게 이름을 짓고, 책의 재미를 알려줄 맛난 책 요리를 상상했다. 윤봉구 짜장책은 <복제인간 윤봉구> 책을 재미있게 읽은 아이가 만든 책 요리다. 윤봉구 책을 맛보면 책이 저절로 좋아질 거란다. 차별 없는 아무나 책은 맛보면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게 되는 책 요리이다. 엄마가 읽어주는 따뜻한 뜨끈 책도 있다. 아이들마다 그동안 읽어온 책,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담아 맛난 책 요리를 완성했다.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어요


책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이의 발걸음은 무척 가벼웠다. 

“엄마, 나도 이제 엄마처럼 잘할 수 있어요. 아 이제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하는 아이의 두 볼은 발그레하게 물들어 있었고, 나를 보는 두 눈은 세상 두려울 게 없다는 듯 밝게 빛났다. “친구들이 칭찬을 많이 해줘서 너무 좋아요.” 하며 아이는 밝게 웃었다. 오늘은 내 아이가 주인공이었다. 내가 고른 책으로, 내가 이끄는 대로 친구들이 책 이야기를 나눴고, 친구들이 무척 즐거워했다는 게 아이에게 큰 성취감을 맛보게 해 주었다. 


한참 뒤에 우연히 이 날 아이가 사용한 발제문을 보았는데, 곳곳에 아이가 적어놓은 메모가 눈에 띄었다. '별점 먼저 묻고, 이유는 나중에 묻기', '여기에는 요리점 이름 적으라고 하기', ' 레스토랑 이름 발표', '나의 메뉴 중 괜찮은 것 2개 고르기' 등 진행하며 챙길 것들을 적어 둔 것이다. 빈 곳에 모임 하며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간단히 정리해둔 것도 있었다. 아이가 책 모임 진행을 잘하려고 애쓴 흔적들을 보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책 읽고 생각을 나누는 일에 이토록 정성을 들이다니 놀랍고 대견했다. 아이는 부담되고 무거운 역할을 맡아 최선을 다했고, 다정한 친구들 덕분에 첫 임무를 무사히 완수했다.   


아이는 발제문 곳곳에 진행할 때 챙길 것을 적어두었다.


<<책 읽는 도토리>>에서는 아이들끼리의 모임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당분간 엄마가 발제나 활동 준비를 돕기로 했다. 곧 엄마들이 지켜보는 일도 하지 말자고, 되도록이면 아이들끼리 시행착오를 겪으며 해나가게 하자고 약속했다. 아이들이 만든 질문으로, 아이들이 진행하는 책 모임은 아무래도 어른이 하는 것보다 서툴고 엉성했다. 책의 주제나 중요한 장면을 다루지 못하고 지나가거나 나누는 이야기의 반 이상을 농담이나 웃음으로 채운 날이 많았다. 간혹 어른이 만든 질문으로 진행하니 진행자도 질문의 뜻을 몰라 애매한 소리만 늘어놓다 모임이 끝난 적도 있고, 진행자가 너무 공부를 많이 해 와서 친구들을 가르치려다 서로 싸움이 날 뻔한 적도 있다. 그래도 엄마들은 되도록 끼어들지 않고 지켜보면서 기다렸다. 엄마들도 처음 책 모임을 할 때 그랬으니까 아이들도 당연히 그럴 거였다. 아이들을 믿고 기다려야 했다. 


아이가 하는 일에 불쑥 끼어들고 싶을 때마다 나는 첫 번째 책 모임을 마치고 난 아이의 얼굴을 떠올린다. '나는 내가 자랑스러워요.' 하는 그 당당한 눈빛이 나의 입을 막는다. 아이는 제 힘으로 해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어요." 하고 외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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