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재앙이 닥친다는 파이버의 예언을 믿고, 열한 마리의 토끼가 샌들포드 마을을 떠난다. 새로 마을을 만들 수 있는 안전한 거주지를 찾기 위해 엔본강을 건너고, 히스덤불 숲을 지난다. 카우슬립 마을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헤이즐 일행은 드디어 워터십 다운에 도착한다. 워터십 다운은 새로운 토끼 마을을 만들기에 적당한 곳이다. 하지만 토끼들에게는 큰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헤이즐 무리에 암컷 토끼가 없다는 거다. 헤이즐과 토끼들은 암컷 토끼를 데려오기 위한 새로운 모험을 시작한다.
아이들은 <워터십 다운>을 읽는 두 달 동안 자신들이 헤이즐 무리의 토끼인 것처럼 생각하고 말했다. 모임 날 뿐만 아니라 일상의 대화에서도 토끼어를 사용했고, “엄마, 나는 댄 더 라이언이에요. 영웅 이야기를 들려 드릴게요.”하며 인물의 말과 행동을 따라 했다. 토끼들이 워터십 다운에 도착했지만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아, 그러고 보니 암컷 토끼가 한 마리도 없었네!”하며 놀라고, “이제 어쩌냐... 큰일이네.”하며 안타까워했다. 헤이즐 무리는 워터십 다운까지 가는 길에, 워터십 다운에 도착해서 여러 문제 상황에 직면한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이 무엇일까 고민한다.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어디로 갈 것인가, 누가 가야 하는가. 모두 토끼의 생존과 연결되는 문제들이라 가볍게 선택할 수 없다.
우리 역시 살면서 크고 작은 선택을 끊임없이 한다. 오늘 아침으로 무엇을 먹을까, 외출할 때 어떤 옷을 입을까 같은 작은 선택부터 진로를 어떻게 정할까, 나의 장례는 어떤 식으로 치르는 게 좋을까 같은 크고 무거운 선택까지. 생각해보면 단 한순간도 선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금의 나는 과거에 했던 크고 작은 선택의 결과이다. 오늘 내가 하는 선택이 미래의 나를 만든다. 안타깝지만 어떤 선택도 정답이 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 순간에 최선의 선택을 하고,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우리 아이들 또한 살아가며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을 많이 만날 거다. 나는 아이들이 자신을 믿고, 소신껏 선택하고, 그 선택의 결과를 책임지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워터십 다운>은 아이들에게 그런 내 마음을 전하기에 좋은 책이다. 토끼들의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가져와 풍성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그렇게 선택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좋은 선택일 거란 예상이 빗나갔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들은 ‘내가 〇〇라면’이라는 마법에 걸리면 금방 이야기 속 토끼가 되어 생각하고 말한다. 마치 자신의 손에 토끼들의 운명이 달려 있기라도 한 듯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선택의 결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짐작해보면서 “아, 이거 고르기 어려워요.” 한다. 이야기 속 토끼들은 최선의 선택하고, 그 선택의 결과가 나쁘더라도 서로 힘을 모아 이겨낸다. 아이들도 그런 토끼를 응원하며 ‘함께’의 힘과 가치를 배운다.
워터십 다운 읽고 책 대화 나누기
<워터십 다운> 토끼들의 선택
【질문1】제2부에서 나눈 이야기
헤이즐과 친구들은 다친 검은 머리 갈매기 ‘키하르’를 구해주고, 새와 친구가 됩니다. ‘키하르’는 암컷 토끼가 많이 있는 마을을 알려줍니다. 실버, 벅손, 스트로베리, 홀리는 그 마을로 암컷 토끼를 데리러 떠나지요. 그 사이 헤이즐은 너트행어 농장에서 사육되고 있는 ‘상자 토끼’ 네 마리(암컷 2, 수컷 2)를 발견합니다. 파이버는 끔찍한 일이 일어날 거라며 말리지요. 결국 헤이즐은 죽을 위험을 겪고 상자 토끼 세 마리를 무리로 데려옵니다. 여러분은 헤이즐이 상자 토끼를 구출하러 간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① 잘한 결정이다.
② 잘못된 결정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정확히 반으로 나뉘었다. ‘잘한 결정이다’를 선택한 아이들은 “희생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 가만히 있으면 항상 안전하지만 얻는 건 없다.”며 도전과 결단에 의미를 두거나 “암컷 토끼가 없으면 헤이즐 무리는 멸종한다. 실버 일행이 실패할 수도 있다. 몇 마리라도 데려와 무리를 지켜야 한다.”라며 헤이즐의 리더십을 좋게 평가했다. 반면에 ‘잘못된 결정이다’를 택한 아이들은 “파이퍼의 말처럼 길러진 토끼는 야생에 적응하지 못한다. 토끼수가 너무 많아져도 문제다. 실버 일행을 기다려야 한다.”, “ 파이버의 예언이 확실하다는 게 증명됐다. 파이버의 말을 들어야 한다.”며 현실적인 문제들을 살폈다.
【질문 2】제2부에서 나눈 이야기
상자 토끼를 구하러 간 헤이즐 일행은 두 마리(박스우드, 클로버)를 우선 구출합니다. 겁에 질린 두 마리(로럴, 헤이스택)는 데려오지 못합니다. 헤이즐은 나머지 두 마리를 구출하러 가자고 댄더라이언에게 제안합니다. 여러분이 댄더라이언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① 간다.
② 안 간다.
댄더라이언이 되물었다.
“어디를?”
“나머지 둘을 데리러. 너는 누구보다 빠르니까 별로 위험하지 않겠지? 자, 빅윅, 어서 가야지. 내일 보자.”
헤이즐은 빅윅이 대답할 겨를도 없이 느릅나무 밑으로 사라졌다. 댄더라이언은 따라가지 않고 망설이는 눈빛으로 빅윅을 바라보았다. <워터십다운>(2019.사계절) 366쪽
이 질문에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간다’를 선택했다. “위험한 헤이즐을 그냥 둘 수 없다.”, “헤이즐이 좀 무모한데, 지도자이니 이해는 된다. 헤이즐이 혼자 갔다가 일을 당해도 아무도 알 수 없다. 따라가야 한다.”, “헤이즐은 이미 상자 토끼들을 자신의 무리로 받아들였다. 헤이즐이 혼자 가면 죽을 수 있다. 같이 가야 한다.”라고 이유를 말했다. 너트행어 농장은 위험한 곳이고, 실버 일행이 암토끼를 데리러 떠난 상황이었다. 사실 이 장면에서 헤이즐의 행동은 다소 무모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헤이즐럿을 혼자 보낼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딱 한 아이가 “나는 가지 않겠다.”라며 의견을 밝혔다. “나의 생명도 중요하다. 위험을 무릅쓰고 까지는 가지 않겠다. 헤이즐은 빅윅과 댄더라이언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가버렸다. 무모하다.”라고 했다. 책 모임에서는 이런 소수 의견이 정말 귀하다. 모두가 “예”할 때, 혼자 “아니오”해주는 아이 덕분에 문제를 보는 관점이 확 바뀌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헤이즐 입장에서 생각하던 아이들도 댄더라이언의 입장을 살필 수 있다. 댄더라이언이 헤이즐을 따라가지 않을 수도 있다. 위험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자신의 생명을 건다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다. 그런 선택을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도 없다. 댄더라이언이 헤이즐 따라가지 않더라도 이후에 헤이즐을 위한 어떤 행동을 분명할 거다. 앞의 이야기에서 댄더라이언은 줄곧 헤이즐을 지지하고, 무리의 어려운 일을 함께 해결해 왔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그걸 안다.
【질문3】제4부에서 나눈 이야기
운드워트 장군은 아우슬라 토끼들과 젊은 토끼들을 데리고 워터십 다운으로 들이닥칩니다. 헤이즐 일행을 죽이고, 토끼들을 에프라파로 다시 데려가려고 합니다. 블랙카바르는 에프라파 토끼들이 오기 전에 도망가야 한다고 말하지만 헤이즐은 마을을 떠나지 않겠다고 합니다. 내가 워터십 다운의 토끼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① 마을을 떠난다.
② 마을을 떠나지 않는다.
힘세고 거친 운드워트 장군을 피해 달아날 것인가, 맞서 싸울 것인가를 묻는 질문이다. 폭력과 불의에 맞설 용기가 있는가를 묻는 것이기도 하다. 가진 것 없고 약한 민중이 권력에 맞서려면 큰 위험과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혼자서는 안 된다는 거다. 서로 연대하여 힘을 모아야 한다. 아이들은 워터십 다운의 토끼가 되어 두 달 동안 긴 여행을 했다. 헤이즐, 댄더라이언, 빅윅, 블랙베리 등의 인물이 서로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래서인지 이 질문에는 모두 “마을을 떠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한 아이는 “에프라파 토끼들은 계속 쫓아올 거예요. 끝장을 봐야 해요.”라며 비장하게 말했다. 다른 아이들도 “도망치다보면 언젠가는 끝내야 하는 때가 온다. 헤이즐 일행이 힘을 합치면 이길 수 있다.”, “우리에게 빅윅이 있다. 함께 힘을 모으면 된다.”, “어차피 한 번은 끝내야 할 일이다. 여럿이 힘을 모아 맞서 서 싸워야 한다.”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아이들은 뛰어난 한 명이 힘으로 많은 사람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상황이 부당하다는 걸 안다. 문제 생겼을 때 회피하거나 도망칠 수만은 없다는 것도 안다. <워터십 다운>을 읽은 아이들은 운드워트 장군이 아니라 헤이즐 무리에 공감한다. 작지만 강한 연대의 힘을 느끼고, 불의에 맞서는 자세를 배운다.
<워터십 다운>1~2부에서 헤이즐이 돋보였다면 3~4부에서는 빅윅의 활약이 도드라진다. 아이들은 이 책이 특정 인물 하나를 영웅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걸 잘 알아챘다. 모두가 주인공인 이야기, 토끼들이 모험을 통해 성장하는 이야기라는 걸 알아냈다. 책 읽는 동안 아이들은 이야기 속 토끼가 되어 초원을 달리고, 강을 건넜다. 작지만 담대하게 역경을 헤쳐 나갔다. 우리 모두가 이야기의 주인공이었고, 작은 영웅이었다.
조금은 더 특별한 책 <워터십 다운>
책 모임에서 함께 읽은 책은 다 좋았지만, 그중 <워터십 다운>은 나와 아이들에게 조금은 더 특별한 책이다. 책 모임 경험이 적은 친구가 “와, 이 책 진짜 최고예요!” 하며 책에 빨려 들어가 즐거워하던 모습, 우리 아이가 “엄마, 나는 댄더라이언이에요.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하거든요. 내가 얘기하면 친구들이 좋아해요.”하며 뿌듯해하던 모습, 토끼 일행이 위험한 순간에 직면할 때마다 자신의 일인 양 어쩔 줄 몰라하던 아이들 모습. 책 표지만 봐도 그런 모습들이 함께 떠오른다.
나는 아이가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때 “힘들겠지만 해볼 게요! 잘 안 되면 다시 하면 되니까요.” 하면 그게 그렇게 고맙다. 삶이란 원래 고된 것이다. 뜻하지 않은 질문을 만나고, 정답 없는 선택지 앞에서 고민해야 한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때 다르게 선택했어야 하는데.'하는 후회가 남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앞으로 아이가 자라며 겪을 일들을 미리 생각하면 나는 마음이 무거워진다. 하지만 “그렇지만 해볼 거예요.”하는 아이의 당당한 모습에서 <워터십 다운>의 토끼들이 보인다. 헤이즐, 댄더라이언, 빅윅, 블랙베리,…. <워터십 다운>의 토끼들이 우리 아이와 함께 가줄 것이다. 엄마 없는 곳에서도 우리 아이는 자신만의 삶을 선택하고 만들어갈 수 있다.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