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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정 Sep 22. 2020

05. ≪책 읽는 도토리≫를 시작하다

우리 아이 생애 첫 번째 책 모임


 책 모임을 시작하다


  2015년에 둘째 아이 책 모임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1학년,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여자 아이 넷이 모였다. 책 모임 날은 매주 수요일로 정했다. 아이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친구 집에 모인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아했다. 뭔가 특별한 일을 벌인다는 생각에 흥분했고, 책 모임에서 무엇을 하게 될까 기대했다. 엄마들은 읽어줄 그림책을 골랐고, 맛있는 간식을 준비했다. 최대한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으로 만들자 약속했다. 이렇게 시작한 책 모임이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책 모임 이름 정하기


  책 모임을 꾸리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모임 이름 정하기이다. 책 모임은 단순히 친구랑 만나 즐겁게 노는 모임이 아니다. 아이들이 모임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알고, 모임을 특별하게 여기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모임에 이름이 있어야 한다. 각자 책 모임 이름 몇 가지씩을 생각해서 모였다. 인터넷에서 순 우리말을 검색해서 찾아온 아이도 있었고, ‘책’이란 말이 들어간 여러 개의 이름을 정해온 아이도 있었다. 각자 찾아온 이름을 소개하고, 어떤 것이 마음에 드는지 골랐다.


  아이들은 책 모임 이름으로 ≪책 읽는 도토리≫를 선택했다. 아이들 키가 서로 비슷하기도 했고, 도토리가 참나무가 되듯이 책 읽으며 무럭무럭 자라자는 뜻을 담았다. 지금 생각해도 참 정겹고 좋은 이름이다. 모임 이름을 정하니 모임이 더욱 특별해졌다. 아이들은 뭔가 대단한 일을 벌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흥분하며 신나 했다. 이후에도 아이 책 모임을 여러 개 만들었는데, 그때마다 가장 먼저 책 모임 이름을 정했다. 모임 이름 정하기는 구성원들이 ‘어떤 모임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중요한 활동이다. 모임 이름이 정하기를 통해  책 모임이 ‘그냥 노는 모임’이 아니라 ‘책을 읽어야 하는 모임’이며, 우리가 무척 귀한 일을 하게 될 거라는 메시지를 공유한다.


  책 모임 횟수 세기


  어떤 행동을 습관이 되게 만들려면 적어도 100일은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 책 모임도 마찬가지다. 모임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적어도 100번은 꼬박꼬박 모여야 한다. 그래서 책 모임 횟수를 세었고, 100회가 되는 날 작은 잔치를 하자고 약속했다. 사실 이제 1회 모임인데 언제 100회가 될까 까마득했다. 8살 아이들에게 책 모임 100번 하는 시간은 가늠할 수도 없는 긴 시간이었을 거다. 어쨌든 정해진 날, 정해진 시간에 책 모임을 했고, 꼬박꼬박 모임 횟수를 세었다. 모임 안내나 발제문에도 ‘책 읽는 도토리 ○회’라고 밝혀 적었다.


  사실 모임을 빠지지 않고 한다는 게 쉽지 않다. 집안 행사가 있거나 아이가 아프거나 해서 모임 참여가 어려운 날이 생긴다. 책 모임을 하다 보면 이렇게 모이는 인원이 너무 적어서 ‘모임을 쉴까?’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하지만 적은 인원이 모이더라도 모임은 쉬지 않아야 한다. 휴가 기간이거나 모이는 날이 공휴일인 경우를 빼고는 약속한 날 반드시 모인다. 이렇게 해야 엄마도 아이도 책 모임을 소중히 생각하고, 되도록 모임을 빠지지 않으려 애쓰게 된다. ‘두 명만 모이면 모임은 한다.’고 약속하니 오히려 모임에 대한 부담이 줄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 생겨 모임을 쉬어도 다른 친구들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편했다.


  책 모임 50회, 100회 축하하기


  책 모임 횟수가 늘어갈수록 책 모임은 아이의 자랑이 되었다. 아이는 “엄마, 다음 책 모임 책이 뭐예요?”, “이번에 책 읽는 도토리 10 회지요?”하며 책 모임을 챙겼다. “ 우와, 벌써 30회예요.” 하며 뿌듯해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하고 누가 물으면 “책 모임 해요.” 하고 먼저 말했고, “책 모임이 뭐야?”물으면 “친구들이랑 책 읽고 이야기 나누는 건데요...”하며 한껏 뽐내며 대답했다. 책 모임을 좋아하니 스스로 책을 읽었고, 모임 날 친구들과 나눌 이야기를 미리 생각해보느라 책을 깊이 읽었다.


  엄마들은 모이기만 하면 ‘책 모임을 더 즐겁게 만들 방법이 없을까?’ 궁리했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어리니 ‘책 모임에 오면 즐거운 일이 생긴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는 게 중요하다. 책 읽고, 서로 생각을 나누는 일 자체에 즐거움을 느끼게 될 때까지는 작은 성취를 맛보게 해 주고, 책 읽으면 즐거운 일이 생기는 경험을 하게 해줘야 한다. 엄마들과 의논한 끝에 50회, 100회처럼 특별한 날에 축하 잔치를 벌이기로 했다. 어린아이들에게 100회는 너무 멀고 막연하니까 50회 잔치부터 했다. 50회 모임 날에는 맛있는 간식을 나눠 먹고, 책 선물을 준비해 서로 나눠 가졌다.  


100회 모임을 축하해요

   

 그렇게 꾸준히 모임을 했고, ≪책 읽는 도토리≫ 100회 모임날이 다가왔다. 100이란 숫자가 주는 성취감은 기대 이상이었다. 아이들은 읽고 나누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은 자신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엄마들은 서로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돌아가며 읽을 책을 정하고, 나눌 질문을 고르고, 활동 준비물을 챙겼다. 아이들 모두의 마음을 살피며 책을 읽어주고,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었다. 더 잘 읽어주고, 더 잘 들으려고 애썼다. 혼자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함께 해주는 엄마들, 함께 해주는 아이들 덕분에 나와 아이가 책 모임 하며 행복한 경험을 많이 했다. 이제 더 이상 책 모임은 어쩌다 한 번 하는 이벤트가 아니었다. 밥 먹고 잠을 자듯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케이크와 음식을 마련해서 100일 잔치를 했다. 노래를 부르고, 촛불을 함께 껐다. 갖고 있는 책 중 한 권을 골라 친구에게 선물했다. 모임 100회를 기념하며 책가방 만들기도 했다. 무지 천 가방에 ‘책 읽는 도토리’를 써넣고, 그림을 그려 넣었다. 책 모임 이름을 쓰고, 책 읽는 친구들 모습을 그렸다. 도토리가 자라 멋진 참나무가 된 모습을 그려 넣고는 “참나무가 될 때까지 책 모임 계속해요.” 했다. 책 모임에 오거나 도서관 갈 때 책 담아 다닐 거라며 좋아했다. 이날 밤, 책 모임 밴드에 엄마들의 글이 올라왔다. “도토리 모임을 통해 세상에서 가장 기분 좋은 가방 두 개가 생겼어요.”, “ 내일 바로 학교 도서관에서 책 빌려 담아 오겠대요. 정말 좋아요.”, “도토리 모임은 생각을 공유하고 실천하면서 많은 일을 해내고 있는 것 같아요. 뿌듯합니다.”


   책 모임을 넷이서 시작했는데, 이제 다섯이 되어 있었다. 어린 동생까지 와서 함께 활동할 때가 많으니 실제 모임 인원은 그 이상이다.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책 모임을 할 때 여러 가지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곤 한다. 준비한 활동을 다 하지 못할 때도 있고, 어린 동생이 떼를 써 소란스러워질 때도 있다. 하지만 서로 불편해하지 않고 기다리며 이해해준다. 이렇게 언니, 형이 책 모임 하는 것을 보고 자란 동생들은 자연스레 자기만의 책 모임을 갖고 싶어 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며 엄마를 졸라 자기 책 모임을 만들었다. 함께 읽고 나누는 일이 꽤나 근사해 보였나 보다. 책 모임을 어떻게 하냐며 난감해하던 엄마들이 새로운 책 모임을 만들어 운영하게 됐으니 대단한 변화다.   


  이 무렵 찍은 사진 속 내 아이는 너무나 행복해 보인다. 책 모임 가며 아이와 손잡고, 종알종알 읽은 책 얘기 나누던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따뜻하게 데워진다. “엄마, 나는 책 잘 읽어요.”, “나는 책이 좋아요.” 하던 아이의 들뜬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책 모임에서 읽은 책, 나눈 이야기뿐만 아니라 책 모임을 오가며 아이와 나눈 이야기들이 모두 소중하다. 책 모임은 아이에게 책을 읽히고, 뭔가를 가르치는 수업이 아니다. 읽고 나누며 성장하는, 즐거운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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