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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정 Sep 28. 2020

07. 몸으로 읽기<화요일의 두꺼비>

책 모임 ≪책 읽는 도토리≫ 이야기

 책 모임에서 연극하기

 

   “ 마지막에 워턴이 조지 구해주는 장면 어때?”

   “ 좋아. 나도 그 장면이 가장 좋았어.”

   “ 지우가 워턴하고, 영길이가 조지하면 어때? 영길이가 팔을 벌려서 날고, 지우가 영길이 등에 타는 것처럼 하는 거야.”

   “응, 좋아. 나는 기뻐하면서 손뼉 치는 쥐 할래. 팔을 이렇게 들고, 이쪽에 앉아서.”


   다섯 명의 아이가 머리를 맞대고 열띤 토론을 벌인다. <화요일의 두꺼비>의 한 장면을 정지동작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다. 정지동작이란 사진 속 인물 되기로 생각하면 된다. 필요한 사물, 사람을 나눠 표현해서 전체적으로 하나의 장면이 완성되도록 표현한다. 각자 자기 위치에 서 있다가 진행자가 "하나, 둘, 셋, 넷, 다섯” 하면 동작, 표정을 취하고 정지한다. 대사나 움직임이 없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부담 없이 해볼 수 있는 활동이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 다섯이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났다. 올망졸망 귀여운 아이들이 어찌나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지! 아이들은 어떤 장면을 표현할지 고르면서 책이 준 감동을 되새기고, 표현할 역할을 고르면서 인물의 특징이나 마음을 살폈다. 각자의 위치와 동작을 정하기 위해 쉴 새 없이 말하고 들었다. 친구의 마음을 살펴 제 역할을 양보하거나 새로운 역할을 제안하기도 했다. “나는 이게 하고 싶은데...”하고 자기 생각을 거리낌 없이 드러냈다. 그야말로 공감과 소통으로 충만한 대화였다.   


따스하고 행복한 기억, 화요일의 두꺼비

   

  ≪책 읽는 도토리≫아이들은 책 모임에서 연극하는 걸 무척 좋아했다. 앉아서 책 이야기 나누다가 “몸으로 표현해볼까?”하면 “와~”하며 벌떡 일어섰다. 몸으로 표현해본 책 중에 <화요일의 두꺼비>가 기억에 남는다. 햇살 가득한 거실,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이야기 나누는 아이들, 인물의 특징을 몸짓과 표정으로 표현하고 조각상처럼 멈춘 아이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엄마들. 아이들과 엄마들 모두가 <화요일의 두꺼비>에 푹 빠져 이야기를 즐겼다. 따스하고 행복한 기억이다.  


  <화요일의 두꺼비> 는  아이들과 함께 읽기 참 좋은 책이다. 책에 점수 주기를 했는데 아이들은  5점, 만점, 100점, 200점이라며 자신이 아는 최대한의 점수를 주었다. 글씨가 많은 편이지만 저학년 아이들이 읽기에 어렵지 않다. 글자 크기도 큼직하고 여백도 충분히 줬다. 김종도(<엄마 마중>의 그림을 그린 작가) 작가 특유의 따뜻함이 그림에서 드러난다. 아이들의 주된 관심사인 '우정'에 대한 이야기라 아이들이 좋아하고, 등장인물이 많지 않아 이해도 쉽다. 무엇보다 주인공인 두꺼비 워턴과 올빼미 조지의 개성이 뚜렷하고, 말이나 행동이 유쾌하고 재미있다.



화요일의 두꺼비(러셀에릭슨/사계절)
인물의 특징 표현하기

    먼저 두꺼비 워턴과 올빼미 조지의 성격이 드러나는 모습을 골라서 동작으로 나타내 보는 활동을 했다. 이 활동을 하려면 인물이 각각 어떤 성격인지 정리해야 하고, 그것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동작을 정해야 한다. 이 책에는 인물의 특징을 잘 담아낸 삽화가 있어서 아이들은 삽화를 중심으로 골랐다. 아이들은 청소하는 워턴, 올빼미 집에서 탈출하려고 사다리를 만드는 워턴, 차 마시는 워턴을 표현했다. 워턴이 정리를 잘하고, 영리하며, 무모한 면이 있다는 것을 잘 찾아냈다. 아이들은 조지의 성격이 드러나는 동작은 만들기를 어려워했는데, 이야기를 주로 끌고 가는 인물이 워턴이라서 그런 것 같다. 그래도 화를 잘 내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며, 퉁명스러운 조지의 모습을 각자 자기가 찾아낸 동작으로 잘 표현했다.


 장면 골라 표현하기
 

     다음으로 책에서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골라봤는데 아이들마다 달랐다. 워턴과 조지가 만나는 장면, 사슴 쥐와 워턴이 조지를 구하러 가는 장면, 워턴과 조지가 오해를 풀고 함께 고모네로 날아가는 장면 등. 어떤 장면을 골랐는지, 왜 그 장면을 골랐는지 돌아가며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잘 들어보면 어떤 아이가 어떤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책을 읽을 때 어떤 부분에 집중하는지 알 수 있다. 특히 내 아이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아, 이 아이가 이런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구나.’, ‘이 녀석이 언제 이렇게 자랐지.’하고 깨달으면서 코끝이 찡해지는 순간도 자주 경험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가장 좋은 장면을 고르고 정지 동작으로 나타내어 보기로 했다. “장면을 정하고, 정지 동작으로 표현해볼까?”하니 아이들은 신이 나서 작은 방으로 들어간다. 금세 작은 방은 연습실, 거실은 무대로 바뀐다. 닫힌 문 너머로 속닥속닥, 우당탕탕 소리가 삐져나온다. 아이들은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 나누고 연습했다. 잠시 후 방에서 나온 아이들이 장면을 표현했는데, 엄마들 모두 박수를 치며 까르르 환호했다. 아이들은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을 표현했다. 두꺼비 워턴과 올빼미 조지가 오해를 풀고 진정한 친구가 되는 멋진 장면이다. 한 아이가 허리를 굽히고 양팔을 활짝 벌려 날아가는 조지를 표현했고, 워턴을 맡은 아이는 조지의 등에 기대어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나머지 아이들은 맞은편에 앉아 손을 흔들며 환호한다.


    아이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나는  “자, 엄마가 어깨에 손을 대면 지금 생각이나 느낌을 말해 줘.”  하며 아이들 어깨에 차례로 손을 댔다. 마치 조각상을 살아나게 하는 마법을 부리듯 우아한 동작으로 움직였다. 아이들은 “얘들아, 고마워.”, “조지, 얼른 툴리아 고모네로 출발하자.”, “워턴, 잘 다녀와. 다음에 같이 놀자.” 며 실감 나게 말했다. 의상이나 소품은 하나도 없지만, 아이들의 상상력만으로 멋진 연극이 완성됐다. 거실은 흰 눈으로 덮인 언덕이 되고, 우리 아이는  때로는 조지가 때로는 워턴이 되어 말하고 움직였다. 자신이 이야기 속 실제 인물이 된 듯 신나고 즐거워했다.


책 모임이 주는 자유로움과 편안함
 

   문학 작품을 읽고 감상을 나눌 때는 연극 활동을 하는 것이 아주 좋다. '만약~라면'이라는 가상의 상황 속에서 아이들은 자신이 이해하고 느낀 것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 아이들과 연극을 하는데 특별히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지는 않다. 저학년 아이들은 ‘만약에’라는 마법의 말만 던져주면 금세 가상의 세계로 뛰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아이들과 연극하는 게 쉽지 않다. 많은 아이들이 저마다의 생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꺼내놓도록 분위기를 만들고, 함께 협업하는 훈련을 하고, 몸으로 표현하는 것을 익히는데 까지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편안하게 꺼내놓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하는 게 가장 어렵다. 아이들은 틀리거나 실수해서 좋지 않은 평가를 받거나 놀림을 받을까 봐 마음껏 표현하지 못한다.   


   반면에 책 모임에서는 연극하기가 수월하다. 누구나, 무엇이든 말하고 표현해도 안전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책 모임에서는 아이들이 제 생각과 느낌을 최대한 많이 쏟아내게 하려다 보니 자연히 ‘정답 찾기’에서 멀어졌다. “맞았어.”, “틀렸어.”가 아니라 “그랬구나.”, “그럴 수도 있지.”하는 수용의 언어를 많이 사용했다. 나와 다른 생각과 느낌을 만나는 재미를 알게 되니 듣는 자세도 좋아졌다. 아이들은 말하는 친구의 표정을 살피며, 고개를 끄덕이며 잘 들었다. 이렇게 잘 들어주니 더 잘 말할 수 있게 됐다. 교실에서는 수줍어서 또는 틀릴까 봐 발표하지 않는 아이도 책 모임에서는 제 목소리를 냈다. 때로 친구들이 생각하지 못한 의견을 내어 박수도 받았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가 이렇게 자기 생각을 말해볼 기회가 생기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했다.


   덕분에 책 모임에서는 아이들과 여러 가지 활동을 제약 없이 해볼 수 있었다. 당시 둘째 아이는 몸을 움직여 표현하는 걸 좋아했다. 틈만 나면 어른들의 몸짓이나 이야기 속 인물의 말과 행동을 흉내 내며 놀았다. 그래서 책 모임에서도 책 읽고 몸으로 하는 활동을 자주 했다. 내가 연극 전문가는 아닌지라 진행도 서툴렀고, 아이들이 그럴싸한 연극을 완성하게 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능숙하게 거실 한쪽에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책 속 인물이 되어 말하고 행동했다. 언제나 우리의 연극은 대성공이었다.


  책 모임이 주는 힘은 생각보다 크다. 혼자라면 할 수 없는 것도 함께하면 할 수 있다. 좀 더 재미나게 엉뚱하게 책을 읽어보는 게 가능하다. 특히 친구들과 몸으로 표현하며 읽은 책은 우리 아이에게 ‘최고의 책’이자 ‘특별한 책’이 됐다. 모임 마치고 아이와 손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엄마, 오늘 책 모임 진짜 재미있었어요.”하던 아이의 표정이 떠오른다. 그 표정에는 ‘책 좋아하는 아이’만이 아는 기쁨과 충만함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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