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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정 Sep 30. 2020

08. 책 모임의 주인은 아이 <으악, 도깨비다!>

- 책 모임 ≪책 읽는 도토리≫ 이야기

어떤 책을, 어떻게 읽지?


   초등 저학년 아이들은 언제, 무엇이든 즐겁게 표현할 준비가 되어 있다. 몸과 마음이 열려 있다. 아이가 자랄수록 안타깝게도 ‘책은 지루한 것’, ‘독서 토론은 말 잘하는 사람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기 쉽다. 초등 저학년 아이들은 재미있는 책과 좋은 친구, 그리고 즐거운 활동이 마련되면 금방 책 모임에 폭 빠진다. 책을 평생 함께 할 친구로 기꺼이 받아들인다. 모임을 일정 기간 계속하면 책 읽는 습관을 갖게 되고, 말하고 듣는 일에도 능숙해진다. 아이들이 어릴 때 책 모임을 시작하길 권하는 까닭이다. 다른 배움처럼 책 모임도 아이가 어릴 때 시작해서 꾸준히 오래 하면 좋다. (물론 아이가 자라서도 언제든 책 모임은 시작할 수 있다. 큰 아이는 초등 4학년 때, 학급 아이들은 6학년 때 책 모임을 처음 접했다. 이 사례는 다음에 자세히 다루려고 한다.)


   아이 책 모임을 시작하려니 방법을 몰라 막막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함께 책 읽을 친구를 구했어도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고민이라고 한다. 사실, 좋은 어린이 책 목록 구하기는 어렵지 않다. 여러 서점이나 단체에서 선별한 책 목록을 제공한다. 인터넷 검색을 몇 분만하면 책 목록 여러 개를 구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많은 책을 모두 구해 읽을 수도 없고, 아이들이 그 책을 좋아할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이럴 때는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책’으로 시작하자. 집에서 아이와 재미있게 읽었던 책, 아이가 좋아해서 자주 읽는 책이면 된다.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책은 엄마인 나도 좋아하는 책이다. 책 내용을 훤히 알고 아이가 어떤 장면에서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는지도 안다. 이런 책으로 정하면, 발제와 진행하는데 부담이 좀 덜하다.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책, 으악, 도깨비다!


   ≪책 읽는 도토리≫ 7회 모임에서 함께 읽은 책은 <으악, 도깨비다!>(손정원. 느림보)이다.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던 둘째 아이가 좋아했던 책이다. 작가는 장승마을이라는 가상공간에서 일어나는 소동을 입말로 들려준다. 장승이 사람처럼 살아 움직이는데, 장승마다 성격과 생김새가 다르다. 멋쟁이, 뻐덩니, 짱구, 퉁눈이 등 장승 이름에 인물의 특징이 드러나 있어서 그림에서 장승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친구, 우정, 전통 등에 대해 자연스럽게 생각해보게 되니 친구들과 함께 읽어도 좋다. “이 책 어때?” 하니 아이는 “아, 이거 진짜 재미있어요. 친구들도 좋아할 거예요.”하며 기뻐했다. 한껏 들떠 “나는 어떤 장승일까요?”, “OO는 음악가 장승이에요. 노래를 잘해요.”, “엄마, 우리 연극할까요?” 하며 말을 쏟아냈다. 그래, 이 책이면 되겠구나 싶었다.


   읽을 책을 정했다면 아이들과 할 이야기를 질문 몇 가지로 정리해야 한다. 이때도 우리 아이를 먼저 생각하면 좋다. 책을 읽어줄 때 아이가 오래 머물렀던 장면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아이와 주고받았던 말을 종이에 적는다. 아이와 함께 책을 다시 읽어가며 아이의 말과 반응을 주의 깊게 살핀다. 질문을 만들 때 아이의 생각을 물어보면 더 좋다.  “친구들에게 어떤 질문을 해볼까?”, “어떤 이야기 나누고 싶어?” 하면 아이가 제법 근사한 질문을 툭하고 꺼내기도 한다. 자기가 만든 질문으로 책 모임 하면 중요한 인물이 된 듯 뿌듯해한다. 책 모임을 위한 질문은 5개 정도면 충분하다. 초등학교 수업 시간에 맞춰 40분 정도 모임하는데, 질문 5개와 활동 1개 정도로 준비하면 딱 알맞다. 막상 모임 해보면 아이들이 하려는 말이 너무 많아서 정해진 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다. 뭐든 정해진 답은 없다는 마음으로 편하게 하면 된다.


   책 모임을 준비하며 <으악, 도깨비다!>를 아이와 다시 읽고, 질문을 함께 만들었다. 활동을 만들 때도 ‘내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일까?’ 먼저 생각했다. 대부분의 저학년 아이들이 찰흙이나 클레이로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 아이도 그랬다. 말랑말랑한 클레이로 동물, 음식, 모양을 만드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마침 책에 나오는 장승 그림을 아이가 좋아했다. 장승의 성격, 특징이 드러난 그림이 큰 재미를 주는 책이다. 클레이로 장승 만들기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 장승 만들기 할까?" 하니 아이 얼굴이 환해진다. 아이와 손 잡고 문구점에 갔다.  친구들과 나눠 쓸 클레이를 고르면서 “어떤 색이 필요할까?”, “어떤 장승을 만들고 싶어?” 하고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는 신중하게 클레이 색을 고르고, 책 모임에서 어떤 장승을 만들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으악, 도깨비다 (손정원/느림보)


아이와 함께 만든 질문


1. 『으악, 도깨비다』를 재미있게 읽었나요? 나만의 별점주기를 해보고, 그 이유를 말해보세요.  별점 (1~5점)


2.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이나 기억에 남는 장면을 골라보고, 그 이유를 말해보세요.


3. 장승마을에는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진 장승 친구들이 함께 살아요. 장승 친구들은 생김새도 성격도 다르지요. 어떤 장승이 가장 마음에 드나요? 왜 그런가요?                      

 키다리, 짱구, 멋쟁이, 퉁눈이, 뻐덩니, 주먹코


4. 움직일 수 없게 된 멋쟁이를 사람들이 데려갔어요. 친구들은 멋쟁이를 데리러 갈지 말지 생각이 달라 다투었어요. 내가 장승 친구라면 어떻게 할까요?                    

 뻐덩니 : “빨리 도망가자! 안 그러면 우리도 멋쟁이처럼 잡혀갈 거야.”

 퉁눈이 : “그럼 멋쟁이를 그냥 내버려 두자는 말이야?”

 뻐덩니 : “없어진 멋쟁이를 어디서 찾겠니? 그러다 우리도 잡혀가면 어떡해?”

 퉁눈이 : “안 돼! 멋쟁이를 놔두고 이렇게 도망칠 순 없어!”

   1) 구하러 간다.   2) 구하러 안 간다.


5. 장승들은 도둑들을 물리치고 멋쟁이를 구해냈어요. 친구들이 멋쟁이를 함께 장승마을로 옮겼지요. 이때 멋쟁이 장승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다른 장승 친구들은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6. 『으악, 도깨비다』를 추천해주고 싶은 친구가 있나요. 어떤 친구가 읽으면 좋을까요.

          

7. 나만의 장승 만들기 - 클레이로 장승을 만들고, 이름을 붙여봅시다. (완성 후 발표)


 내 아이가 책 모임의 주인

  

  이렇게 책 모임을 준비하는 과정도 엄마와 아이에게 소중한 시간이다. 엄마는 ‘내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알기 위해 아이에게 집중한다. 아이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이는 어떻게 느끼는지 더 잘 알고 싶기 때문이다. 이렇게 고른 책과 질문은 엄마만의 것이 아니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만든, 우리의 작품이 된다. 모임 날이 가까워지니 아이는 스스로 책과 발제문을,  클레이와 간식을 챙겼다. 이건 누구 것이고, 저건 누구 것이고 하며 세심하게 챙겼다. 모임 날에는 아이와 함께 만든 질문으로 이야기 나누고, 클레이로 장승도 만들었다. 책 모임을 엄마가 진행하니 아이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아이는 다른 날과 달랐다. 손을 힘차게 들었고, 발표하고 싶어 엉덩이를 들썩 거렸다. '엄마, 이거  나  잘해요. 알지요?'하는 표정으로. 친구들이 활동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먼저 나서 도와줬다. 그 모습이 마치 자기 집에 손님을 초대한 주인처럼 상냥하면서도 당당했다.


   책 모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가 나를 향해 엄지를 척 들어 보인다. “엄마, 최고!” 한다. 책 모임이 얼마나 잘 되었는지, 자기가 얼마나 즐거웠는지 종알종알 이야기한다. 엄마가 자랑스러워 어쩔 줄 몰라 한다. 이런 아이의 모습 보면서 나는 책 모임이 학교나 학원의 독서 수업과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학교나 학원의 수업은 읽을 책도, 나눌 이야기도 어른이 정한다. 좋은 책을 훌륭한 방법으로 배운다 하더라도 아이가 스스로 뭔가 해냈다는 즐거움을 얻긴 힘들다. 딱 어른이 주는 만큼만 아이들이 배운다. 하지만 책 모임에서는 아이가 주인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아이가 좋아하는 방법으로 읽는다. 좋아하니 더 잘 읽고, 더 많이 읽는다. 모임 준비부터 진행까지 참여한다. 친구들과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고 흡족해하는 딸을 보니 나도 참 좋았다. “내 딸 최고!”하고 아이를 향해 엄지를 척 올려 내밀었다. 그날 우리는 '최고' 모녀였고, 최고로 행복했다.


엄마가 책 모임 진행을 하면, 아이는 그 날의 주인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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