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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보 Mar 07. 2018

블로그와 함께 길고양이

생각하지 못했던 만남이었지만

네이버에서 블로그를 14년 차로 이용하던 가운데 가장 오랜 시간 함께했던 이웃이 있지요.

길 고양이 '호피'입니다.

한때 제 블로그 대문에 사진을 올려둘 정도로 인기를 누렸습니다.

저는 반려동물 블로그를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지요.

한참 이런저런 인기몰이(?) 덕분에 하루 1~2만에 달하는 방문자를 기록할 때였으니 덩달아 길 고양이 호피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고 하겠습니다.


제가 네이버 블로그를 2004년 10월에 시작하지만, 그 해가 시작되던 겨울 때, 집 보일러실(반지하로 만들어 둔 보일러 실 겸 창고입니다)에서 어떤 길고양이가 새끼를 낳았습니다. 어미를 직접 볼 수는 없었는데, 약 3마리 정도가 확인되었고, 과연 이아이들을 어떻게 할지 생각을 했었지요.

그러나 냥~ 냥 하는 소리가 애처롭게 들려, 몇 번 먹이를 놓아두었습니다.

다만 사람이 이동하는 통로 쪽에 위치한 아기들 보금자리는 위태로워 보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마리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마리가 남아있는 것을 보았을 때, 어미로 보이는 고양이가 와서 두 새끼 고양이를 물고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집 뒤가 산이기 때문에 이후 그쪽 수풀 쪽에서 기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곧바로 따스한 봄날이 되었기 때문에 그 애들은 잘 클 수 있었던 것 같고, 이때 태어난 새끼 고양이중 한 마리가 바로 '호피'(2004~2015)입니다.


2008년,  많이 건강할 때 모습입니다.

도심지에서 보게 되는 고양이에 대한 이해는 일본에 있을 때 접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직 길고양이라는 표현도 없었고 그렇게 쉽게 볼 상황도 아니었던 때, 일본에 가 있는 동안, 자주 동네를 어슬렁 거리는 노라네코(野良猫 : 우리나라 말로 길고양이)들을 몇 번 보았습니다.

일본 도심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고 사람들에게 붙임성있게 다가오는 그런 애들을 보면서 은근슬쩍 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더랍니다. 기존에는 강아지만 길렀거든요.

마지막으로 키우던 강아지를 2000년도 초에 보내고 한동안 마음이 울적해서 더 이상 애완, 반려동물을 기르지 않겠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고 집안에서 동물의 그림자는 사라졌더랍니다. 그런데 추운 겨울 때 보일러 실에서 꼬물거리고 있는 새끼 고양이들을 보니 은근히 정이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고양이가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블로그를 시작한 후에 가끔, 집 담벼락을 지나는 이 길고양이를 보고 어머님이 호랑이 가죽 같은 무늬(간단히 말해서 코숏이 가장 많이 가지고 패턴이지만)를 가지고 있으니 '호피'라고 부르기에 이후 호피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고양이가 암컷인지 수컷인지도 모를 때였으니 굉장히 묘한 명칭이지요. 기본 동네 길고양이이기 때문에 사람마다 부르는 이름은 다 다릅니다.

다만 동네에서 앙칼지게 싸움을 하고 다니는 애라서 수컷이 아닐까 했더랍니다.

기본, 성질이 있는 길고양이이다 보니 근접하기 어려운 매서움을 가지고 있었고 그 성격을 계속 유지를 합니다.


그러했던 이 녀석이 집 안마당을 차지하게 된 계기는, 자신이 태어난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호피가 새끼들을 집 보일러 실에서 낳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것을 잘 몰랐습니다.

좀 늦은 겨울철에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나서 가보니 새끼 고양이 몇 마리가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처음에는 한 두마리인줄 알았더랍니다.

집을 지은 지 오래되었고, 보일러 실은 말 그대로 먼지투성이인 곳이라 이런저런 장비나 쓰지 않는 것들이 쌓여있는 곳인데 그곳 틈새로 아주 작은 새끼 고양이 얼굴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일러실 전등을 새로 갈고 (기존에 쓰던 것은 어두운 것이라서요) 주변을 돌아보니 한 두 마리 더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무서워서인지 이리저리 도망가서 틈새로 도망간 새끼 고양이들을 보고, 어떤 길 고양이가 낳은 것인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집 뒤가 산이고 은근히 이런저런 길 고양이들이 오가는 길목에 집이 있기 때문에 그중 어떤 애가 낳은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웠지요.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눈여겨보니 호피가 그쪽 입구를 오가는 것이 보입니다.

그때 알았지요. 추운 날 자기가 태어난 보일러실에서 호피가 아이를 가진 겨울철에 이곳에서 낳은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때 호피가 암컷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게 지저분한 곳에서 아이들이 크는 것은 좋지 않을 것이라 생각을 해서, 결국 좀 따스해지는 봄기운이 느껴질 때, 보일러 실에서 애들을 마당으로 내몰았습니다.

나름 서로 관계를 잘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왜 갑자기 구박하냐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호피 얼굴을 잡은 사진입니다.


애들도 매일 지내던 보일러실 입구에 몰려서 사람을 피합니다.

얼마나 빨리 도망치는지 사진으로 잡아두는 것이 어려울 때였지요.

그래도 조금 시간이 지나니 서로 도망가지 않고 잘 머물러 있었지요.


엄마가 된 호피는 한동안 조용히 마당에서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사실 저희도 과연 보일러 실에서 몰아내면 어디로 훌쩍 떠나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로 애들을 데리고 떠나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래도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게 되면 그때 좀 돌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어쩌다 지나다니는 길고양이라면 모르겠지만 새끼를 4마리나 데리고 있는 길고양이를 전부를 돌본다는 것은 제법 힘든 일이 될 것 같아서였지요.


처음에는 보일러실 입구 근처에서만 머무르던 애들이 조금씩 마당 다른 쪽으로 이동을 하게 되는 것을 보면서 언제 애들이 떠날지, 남을지 모르는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요 두 녀석은 몸집은 작지만 엄청 빠르게 움직여서 사진으로 담아두기 정말 어려웠던 애들입니다.

참고로 둘 다 수컷입니다.


나중에 아롱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꼬맹이가 엄마 호피 옆에서 같이 꾸벅거립니다.

먼지투성이 보일러실보다 햇살도 있는 마당 쪽이 훨씬 더 좋은 환경인 것은 사실이니까요.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녀석들은 마당에 정착을 하게 됩니다.

사실, 이 애들이 여기를 떠나지 않은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처음 봤을 때 엄마 호피와 새끼 3마리라고 생각을 했는데 한 마리가 더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새끼가 3 마리라고 생각을 해서 애들을 보일러 실에서 몰아낸 후에 다시 들어가지 말라고 문을 닫았거든요. 그 안에 한 마리가 더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걱정되어 호피는 마당을 떠나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물론 나중에는 집 현관 계단 앞에서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오수를 즐기는 모습으로 바뀌기는 했지만 (엄마가 있으면 꼭 그 옆에 붙어서 잠을 자는 모습이 귀여웠습니다) 가끔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을 느낍니다.

고양이들이 다들 여기에 있는 것 같은데 작은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보일러실 문을 열어보니 번개같이 한 마리가 더 튀어나옵니다.

엇? 설마 했던 4번째 아이였던 것입니다.

사실 고양이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던 때라서 과연 고양이가 몇 마리나 새끼를 낳는지 감이 없었던 것도 있습니다.

대충 알아보니 생후 1~2개월 사이라는 것과 이빨이 충분히 성장해있으면 고양이 사료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기 고양이용 사료를 가져다 놓으니 번개같이 달려들어 아주 깨끗하게 비워놓습니다.

오죽하면 호피 양이 사료그릇에 얼굴을 들이밀지도 못할 정도일까요.

애들은 이후 아주 활발하게 커갑니다.


집안에서 보면 (마당에 사람이 없으면) 아주 자기들 영역이라고 생각을 하는지 놀고 자고 마음대로 살아갑니다.

이후 가금 이 애들 사진을 찍어서 블로그에 포스트를 하니 어른 고양인인 호피 때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와서 댓글을 달아주고 가십니다.

확실히 귀여운 것에는 이길 수가 없다고 하겠지요.


녹음이 짙어지는 계절이 되어가면서 이 아이들은 이제 집 마당을 본거지로 삼아 담벼락 공략을 비롯하여 집 여기저기에서 출몰을 합니다.

기본적으로 이 아이들을 기르는 것은 아니고, 호피가 귀여워, 호피 아이들이라서 이 애들이 커서 나갈 때까지만 있을 장소와 먹이를 제공한다는 생각이었만, 호피의 첫 아이들은 말 그대로 집 마당을 자신들의 영역으로 삼았던 것 같습니다.


참고로 이 현상은 호피의 2대째 아이들, (총 두 번 아이들을 낳았고 이후 구청에서 TNR을 했습니다) 그리고 3세대에 걸쳐 이어지게 됩니다.

 퇴근하고 집에들어오면 현관 계단 앞에 아이들이 바글바글

평균 이 정도 애들이 3세대가 바글바글 몰려들게 되면 사료값부터 장난 아니게 나가게 됩니다.

게다가 깡패급으로 어슬렁 거리는 수컷이 있으면 더욱 살벌해지지요.

그래도 저로서는 호피가 귀엽기 때문에 호피 아이들도 덩달아 밥을 줄 수밖에 없었다고 하겠습니다.

참고로 첫 아이들만 보일러실에서 낳았고, 이후 그곳을 못 다니도록 막아두어서 이후 세대는 전부 산에서 낳았습니다. 그래도 본거지와 사료가 있는 곳이다 보니 애들이 계속 왔더랍니다.


제 네이버 블로그에 한참 꾸미는 대문을 만들면서 이렇게 호피 양 사진을 올려두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심플하게 구성되어 이런 대문 이미지가 없어졌지만 한동안 제 블로그에서 자주 거론된 화제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집 고양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 호피에게 TNR(중성화 시술)을 하게 된 것은 애가 너무 힘들어하기 때문입니다. 길고양이 습성상 동네에서 힘 좀 쓰는 수컷이 있으면 그렇고 그런 시기에 아이를 가지게 되고, 낳은 애들이 많으면 젖을 주고 돌보느라 힘들게 되지요.

2번째로 아이들을 낳았을 때 너무 힘들어 애가 이렇게 말라있는 것을 보고 TNR을 결심하게 됩니다.

사실 너무 마당과 동네에 길고양이들이 많아졌지요. 그냥 귀엽게 바라보는 분도 있지만 싫어하시는 분들도 틀림없이 있었습니다.


호피 양은 TNR이후에는 (한쪽 귀 끝이 잘려있는 것이 TNR시술을 했다는 증명입니다) 양육에 고생을 하지 않게 되니 다시 귀여웠던 때로 몸이 돌아왔습니다.

그 때문인지 과거에는 좀 만지려고 하면 "캬~~" 거리면서 날카로운 발톱 자랑을 하던 호피 양이 좀 얌전해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와 피를 많이 본 사이였는데 어느새 밥을 주려고 할 때 도망가지도 않고 위협음도 날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만 좀 쓰담 쓰담하려고 하면 여지없이 발톱을 세우기 때문에 결국 이 아이가 떠날 때까지 저는 마음껏 쓰다듬어 보지를 못했습니다.


참고로 처음 낳았던 아이중 암컷 아롱이는 한동안 이렇게 옆집 대문 위에 본거지를 마련했다가 다른 동네로 이사를 했습니다. 구청에서 연단위로 지역 길고양이들을 수집해서 개체 수 조절을 하는데 그 와중에 다른 동네로 가버리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아쉬웠지요.


그래도 호피의 자손들은 전부 활발해서 그런지 봄철을 맞이해 청소하면서 열어둔 창문을 넘어 방안에 들어와 냥장을 부리고 가는 모습도 가끔 있었습니다. 덕분에 방청소를 이중으로 하게 되었지만요.


호피는 내추럴 본 길고양이 이셨기 때문에 결코 쓰담 쓰담하기 어려웠지만 그 자식과 손자들은 그렇지 않게 되었습니다. 열어둔 현관문 안으로 들어와 "밥 언제 나오냐?"는 표정을 비롯하여,


가끔 꽁치를 비롯한 생선 관련 아이템이 부식으로 나올 때면 아이들이 전부 모여 이래저래 난리를 부립니다.

참고로 제일 앞에 있는 애가 첫 아이였던 다롱이, 그 외 작은 세 마리가 호피가 두 번째로 낳은 아이들입니다.

처음에는 네 마리, 두 번째는 세 마리를 낳았습니다.


이후 가족관계는 사실 잘 모릅니다.

언제나 '호피 일당'이라고 불렀는데, 사람 손을 탄 호피의 첫아이 아롱이 다롱이를 비롯하여 호피의 손자 손녀들까지도 집 마당을 점거했었으니까요. 그래서 언제나 호피 마님을 따라다니는 녀석들이 전부 호피의 아이들인지 아닌지 까지는 확인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뭐 호피랑 같이 오면 귀여워할 수밖에 없었지요.


아기였을 때 기본 접종과 밥 먹이기를 하면서 쓰담 쓰담했던 녀석들은 당연히 밥때가 되었으니 내놓으라고 아우성을 칩니다.

현관문을 열어두면 당연하듯 들어와 문들을 두드리기도 하고요.

참고로 호피는 절대로 그런 적이 없었습니다. 다 그 아이들이 냥냥 거리는 것이었지요.


이 늠름한 녀석은 암컷이었는지 수컷이었는지 모르지만 한동안 호피 일가의 새로운 보스가 아닐까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밥때가 되면 제일 앞에서 폼을 잡고 있었거든요.


뭐, 그렇다고 해도 정작 호피 양이 납시면 뒤로 물러섭니다.

호피는 애교도 안 부리고, 쓰담도 못하게 캬~~ 하지만 당당하게 앞에 나섭니다.


언제나 호피가 있었고 그 뒤에 그 아이들과 손자들이 뒤애서 냥냥 거리고 있었지요.

이런 패턴은 꾸준히 이어집니다.

집이 뒷산으로 이어가는 길목에 있다 보니 등산을 즐기는 분들이 자주 앞을 지나가시는데 동네 아이들이나 어르신들이 고양이들이 많은 것을 보고 고양이집이라 부르기도 했답니다.

사실은 기르는 고양이들이 아니라 전부 길고양이들이고 그중에서도 호피와 관련된 애들만 있는 것인지 말이지요.


그러면서 조금씩 시간이 지나고 애들은 자리를 떠나가지만, 호피는 계속해서 얼굴을 비추었습니다.

저도 잘 모르는 동안에도 꾸준히 집과 산을 오가면서 살아왔고 정이 아닌 정을 보여주었지요.


가끔 호피의 아이들도 등장을 했습니다.

시원한 그늘이 필요할 때면 가끔 마당에 깔린 덩굴 그림자를 이용해서 오수를 즐기기도 했습니다.


호피의 손녀들은 TNR증거를 보고 손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전 고양이 성별 구분을 모르기 때문에 그것으로 알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이 아이는 아롱이, 또는 3번째 아이가 낳은 녀석인데 한동안 밥 먹고 다니다가 커지니까 오지 않게 되더군요.

그렇게 여러 길 고양이들이 오가면서 흔적을 남겼더랍니다.


그러는 와중에서 호피는 어머니가 하시는 텃밭에 나타나 비둘기나 까치를 위협하고 쥐 같은 것이 있으면 몰아내는 밥값을 합니다.

여전히 성질은 무서워서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모습이지만 그래도 꾸준히 집 주변에 거처를 두고 머물러 있었습니다.


높은 곳을 좋아하고, 햇살이 있는 곳이면 언제나 호피 마님이 있었지요.

그렇게 한해 한해 세월이 갑니다.

제 블로그도 연차가 쌓여가면서 가끔 호피 이야기를 썼고 오랜 시간 제 블로그와 함께하신 이웃들도 가끔 호피 소식이 나오면 댓글을 달아주시기도 했습니다.


저는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보통 길고양이가 7~8년 이상 사는 경우는 드물다고 합니다.

호피는 야성이 남아있던 길고양이어서 그랬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사람 사는 곳보다 뒷산 수풀 쪽에서 살아가는 것이 당연했고, 밥이 없을 때만 마당으로 나와 가만있다가 갑니다.

밥을 주건 말건 상관없이 그냥 왔다가, 밥이 있으면 먹고 가는 것이지요.

그래도 조금씩 호피 양이, 호피 마님이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호피의 아이들, 손자 손녀들은 제 손을 타서 밥을 주면 와서 재롱도 부리고 만지면 기분 좋다는 소리도 내면서 먹고 가지만 호피는 떠날 때까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더랍니다.

은근히 호피 손자 손녀들 티를 내면서도 살짝 얼굴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애들 아빠를 알기 때문에 역시 호피의 후손이라고 생각해 얼굴 볼 때마다 밥을 주게 되었습니다.


호피 양이 과거에 자기 아이들의 아빠를 데려와 선을 보인 적도 있었기 때문에 그런 점을 보면 틀림없이 저와 정을 나누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은 해봅니다.

물론 제 착각일 수도 있지만요.


호피의 아이들은 겨울철에 눈을 맞으며 마당을 활보하기도 했고,


여름철에 마당에 둔 택배 상자에 들어가 데굴 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추억들은 여전히 좋은 의미로 떠올리게 됩니다.


호피 마님과 그 아이들이 오가는 모습을 보면서 가끔 맛난 것이 생기면 호피가 오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황태나 도다리같이 말린 것들은 조금 씹기 쉽게 하기 위해 불리거나 잘게 찢어서 놓기도 하고요.


그래도 많이 마른 모습, 전에는 여유 있게 뛰어넘던 담벼락도 뛰기 어려워하는 것을 보고 호피가 지나다니는 쪽 문을 살짝 열어두기도 하게 됩니다. 그래도 갈수록 행동이 느려지고, 밥도 잘 먹지 못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기본 나이가 들어 이빨이 약해져서 씹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사진으로 따로 남겨두지는 않았지만 호피 마님은 한동안 잘 안보이다가 2015년 겨울 때 무척 마른 모습으로 나타나 신경을 써서 건넨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지만 하루 종일 마당에서 머물다가 다음날 산으로 돌아간 것이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한동안 울적한 마음이었지만, 이제는 많이 볼 수 없게 된 동네 길고양이들 사이에 호피의 흔적을 찾아보기도 합니다.


집 마당은 뒷산과 이어지는 고양이들 길목에 있어서 그런지, 이렇게 묘하게 예쁜 무늬를 가진 아이도 지나다녔고, 가끔 가출한 집고양이들도 담벼락 주변에서 어슬렁거리기도 했습니다.


호피 손녀가 어디선가 새끼를 낳아 가끔 마당으로 밥을 먹으러 오기도 했지요.

작은 녀석이 얼마나 부리나케 도망 다니는지 사진으로 담기 정말 여려웠더랍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흐르고 흘러,


2018년 현재는 호피 양의 증손녀로 추정되는 이 녀석, 애칭 = 냥냥이, 꼬맹이 마크2, 나비 등으로 불리고 있는 이 아이가 마당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함께 다니던 길고양이 영향을 받아 (그 아이는 집고양이였다가 버림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사람에게 냥~하고 말을 하면 밥이 나온다는 학습해서 당당하게 밥때가 되면 나타나 '냥~' 하고 요청을 합니다.

더불어 마당에 놓아둔 의자를 본거지로 삼아 낮에는 그곳에서 오수를 즐기다 밥때에 맞추어 되면 현관문 앞으로 와서 기다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호피와 많이 닮은 그 모습과 호피의 손녀가 낳은 아이라는 점에서 귀여움을 독 자치하고 있지요.

다만 이 아이는 1살이 되자마자 바로 TNR이 되어 이후 동네에서 새로운 꼬마를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네이버 블로그가 시작한 2004년부터 2015년까지 호피가 함께 했고, 다음에는 이 아이가 이어받아 등장하고 있는 지금을 보면서 은근히 정겨운 추억을 몰아보는 것은 행복한 일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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