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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보 Apr 13. 2020

산 마르코 갤러리아에 대한 추억

방구석에서 팸플릿만 발견했을 때

그러고 보니 첫 유럽여행 때 사진들은 대부분 남아있지 않습니다.

당시에도 이런저런 사진을 찍었지만 어벙한 실수를 한 것 때문에 참 예쁜 기억들을 머릿속에서만 추억하게 됩니다.

과거에 이야기를 한 적이 있지만 여행 도중에 필름이 떨어져도 현지에서 사면된다.

라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건전지나 필름 정도는 일부러 처음부터 왕창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했기에 현지 구입을 목표로 했지요, 짐을 줄이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영어 표기도 잘 안 되는 외국에서 필름들을 왕창 구입할 때, 멋도 모르고 일반 필름이 아닌 슬라이드용 필름을 구입해서 다다다닥 찍은 것입니다.


덕분에 귀국해서 현상하려고 했더니 그쪽에서 나오는 말,

"손님 필름 2/3 정도가 전부 슬라이드 용인 데요?"

"헉!"

덕분에 지금까지도 그것들은 그냥 슬라이드 용으로 만들어져서 방구석에 처박혀 있습니다.


당시 엉뚱하게도 그 비싼 환등기까지 구입해서 필름들을 되돌아보기는 했지만 이쪽은 여타 사진 데이터와 달리 스캔을 하기에도 굉장히 이상한 형태로 남아 버려서 결국 디지털 작업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현장에서 구입을 하면서 '와~ 역시 유럽 물가는 비싸서 그런지 36방 필름 주제에 뭐같이 비싸네. 그냥 한국에서 사 가지고 올 걸……'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제가 전혀 다른 제품을 잘못 구입하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지요.

설마 세계 공통어라는 영어 표기가 없을 뿐만 아니라 거의 통하지 않는 유럽이라고는 생각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뭐, 당시 같이 간 친구가 홍대를 다니니까 당연히 불어를 하겠지 라는 엉뚱한 착각을 한 제 오해도 있었지만요. 결과적으로 보면 '바디랭귀지'만을 가지고 유럽을 돌아다녔던, 게다가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 쇼를 하면서 돌아다닌 추억 때문에 나름 그 경험은 재미있는 즐거움으로 남았다고 하겠지만 묘하게 후회되는 부분도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중 하나가 베네치아, 산 마르코 광장에 있었던 여러 가지 소규모 미술 공방들을 찍어둔 것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지요.

1990년대와 2000년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여주는 베네치아입니다.

자체 침몰 지수도 높아진 영향 덕에 이런저런 보수공사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고전적인 느낌을 가졌던 장소들이 전혀 다른 새로움으로 변신, 바뀌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웃동네도 아닌 유럽을 그렇게 자주 가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추억을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잔뜩 남겨놓는다는 감상보다는 그날 하루 일정이 묘하게 고단했던 추억들로만 감싸 있어서 그때 경험했던 소중한 시간들을 제대로 담아두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지금은 디지털카메라 시대이고, 인터넷이 있어서 여러 가지 정보, 길 찾기 등이 수월해진 편리함이 있기 때문에 문득 전혀 모르는 거리에 들어서도 불안감보다는 새로운 설렘을 느낄 수 있는 경우가 더 많지요. 아마 지금도 많은 분들이 여러 장소를 둘러보고 기억하겠지만 별것 아닌 장소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기억될 수 있는 시간을 잘 담아두시기를 바랍니다.

별 것 아닌 한 순간이지만 그 순간들이 남아서 자신의 추억들과 변화, 시간의 착각을 느끼게 해 줄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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