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을 알아듣기 위해 습득해야 하는 바탕이 의외로 많이 필요하지요.
요것은 조금 이상한 형태로 시작된 이야기가 발단이라서
일반적인 견해와는 많이 다를 것 같다는 생각도 합니다.
아는 분들은 아시다시피 저는 메신저를 비롯한 이런저런 형태로
다양한 나라, 지역, 세대별로 구분된 이들과 잡담을 나누다 보면
가끔 주제가 아닌 주제가 흘러나오게 됩니다.
문화적인 소양(素養)이라는 부분은 실제
우리들 사회에 있어서 필요한 부분인가?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건담'을 좋아하건, '드래곤볼'을 좋아하건, '철인 28호'를 좋아하건
'세일러문'을 좋아하건, '슈퍼맨'을 좋아하건, '주먹대장'을 좋아하건
평소에 닦아 놓은 학문이나 지식적인 것을 어떤 형태로
이해하고 있고 그 안에서 공통된 주제를 갖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 책이 아직도 방구석에 있다는…….
당시 표현으로 -그리스 로오마 신화입니다.
한국 내에서야
고전으로서 홍길동, 흥부와 놀부, 구운몽, 심청전, 춘향전, 한중록 등 등을 이야기하면서
고전적인 이해와 더불어 박경리의 [토지]나 염상섭의 [삼대 : 三代],
최인훈의 [광장], 이광수의 [무정] 등을 이야기하면
나름대로 시대와 현대 사회에서 거론될 수 있는
단편적인 문화적 가치를 이야기하는데 어려움이 없는 편입니다.
그러나 외국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에
이것을 가지고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문화적 기준을 말하자면
역시 신화(神話) 부분과 '돈키호테', '카프카의 변신',
셰익스피어 희극, 단테의 '신곡',
페르 톨스토이의 '안나 까레니나'와 '죄와 벌',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괴테의 '파우스트',
'허클베리핀의 모험',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The Prince),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 해석(The interpretation of dreams),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Leviathan),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The Social History of Art),
페르낭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Civilization and Capitalism),
공자의 논어(論語 : Analects of Confucius)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Cosmos)
등을 가지고 인용하거나 말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굉장히 대중적인, 지향적이면서 뻔한 소리지만
나름대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 데 있어서 최소한적인 교양으로서
나누어 볼 수 있는 기준이라는 점에서 생각을 하지만
실질적으로 보면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역시
[빨강머리 앤]이나 펄벅의 [대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그리고 사상적으로 거론되는 부분에서 근래에 많아진 것이 역시
몽테스키외 의 [법의 정신 : The Spirit of the Laws]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 Capital]
찰스 길리스피의 [객관성의 칼날 : The Edge of Objectivity]
같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다만 이러한 것들을 각자 어떤 형태로 이해하고 있는가?
라는 점은 확실히 개개인 환경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군주론과
a가 생각하는 군주론의 주체와 성격은
다를 수 있고 그 안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객관적인 기준도
틀림없이 다른 방향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사실 그런 부분들은 재미있지요.
설론으로 번지지 않는 한,
의식적인 구조나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 볼 수 있으니까요.
더불어 취미적인 세상에 있어서도 그런 현실을 반영한
삶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학생일 때와 사회생활할 때, 그리고 연륜이 쌓여갈 때)
+ 더불어 결혼생활을 할 때
더욱 많은 인간들 심리구조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취미적인 인간성으로 사람과 만나는 가운데 가장 많이,
뻔하게 거론되는 부분에 있어서 사람들이 알고 있을 만한
나 에 대한 이해가 있는 가 없는 가? 지식적인 구조계 층간 갈등
라는 논의도 가끔 나옵니다.
선택적인 구조를 가진 사회라는 말도 있고
취미 하나를 문화적인 현상으로 이해하고 향락적인 소비문화로
지칭해서 그 안에서 허우적거리는 인간 본연의 자세를
어떤 형태로 이해할 것인가?
하는 이야기보다
이것 재미있거든!
이것 끝내주거든!
이것 뿅 가거든!
이것 정말 재미있거든!
라는 단어로서 접근하고 표현하는 것이 더 쉽습니다.
저라는 인간도 실제 공부와는 담을 쌓았지만
취미적인 의문, 왜 초능력, SF, 만화적인 상상력은
일반 동시대 사회에서 바보 취급을 받는 것일까?
아동적인 유희로만 생각을 하고 마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관련된 책자나 그 문구들을 보았습니다.
제법 웃기는 일이지만 '멋을 부린' 주인공이 나부린 대사에서
어떤 감명을 받기 이전에, 그 대사에 감동을 받으려면
그만큼 경험적인 측면에서 이해하고 넘어가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라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고 하지만 아는 것이 많으면 보이는 것도 많다
실제 아는 것이 가지는 한도라는 것은
누가 지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범용적인 사회생활에서 거론되는 분야,
(물론 연예인 이름이나 가십거리를 많이 아는 것 말고)
(더불어 건담 빔 라이플이 실제 사용 가능한 지 아닌 지에 대한 논의 같은 것 말고)
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선에 있는 소양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사실 세상은 넓다고 해도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생각이나
활동영역은 대단히 좁아서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습득할 수 있는
게임이나 만화, 소설 속 주인공과는 다른 현실감을 느끼는데
3~4시간 게임해서 레벨업 하는 것은 아깝지 않으면서
3~4시간 투자해서 무언가를 읽어 그것을 자기 문화적 소양으로 만드는
이는 적은 것을 보면 굉장히…………아쉽다고 생각을 합니다.
선학(先學)들이 내세운 이상론이나 상상력의 발로로 인해서
가정된 사회 현실에 대한 논의는 사실상
만화나 애니메이션, 게임에서 펼쳐지는 세상과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더 멋지고 객관적인 주인 공상을 만드는 것과
주관적인 이해 속에서 빠져드는 주인 공상에 집착하는 것은
틀림없이 같으면서도 다른 일이지만
정작 그런 과정을 가지고 이해하고 넘어서는 부분은 적습니다.
가끔 만화나 애니메이션, 게임, 장난감, 취미적인 분야에 대한
단순함, 오락성, 그리고 표면적인 경제효과에 대해서만
논을 하는 경우를 보면 아쉬운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더불어 단순한 취미 하나 이야기하는 주제에
뭘 그렇게 많이 따지고 드느냐?
많이 아는 것을 자랑하면서 쓰는 것이 재미있냐?
라는 질문도 나옵니다.
그러나 주인공 환경에는 언제나 반대적인 상황이 등장하고
그 안에서 역경을 헤치고 신뢰할 수 있는 존재를 찾아서
자신의 삶에 있어서 만족할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하고
성공을 위한 노력을 한다
라는 것은 인생이나 만화나 게임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창작된 세상인가
꿈꾸는 현실의 고뇌인가?
라는 정도로 가볍게 보고 넘어갈 수 있는 (?) 이해관계일 수도 있지요.
자신의 삶이나 생각에서는 자기 자신이 주인공입니다.
꿈에 빠져있는 이들에게 있어서 주인공인 자신은
결코 질 리가 없고 사회적으로 우월하면서
문화적으로 독보적이면
경제적으로 뛰어난 존재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경제적인 면이 가장 절실하게 와 닿는다고 하지요)
나이, 교양, 재산, 성격, 외모 등을 다 떠나서
일반적인 판단기준이라는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성별, 이름, 인터넷 ID 등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것만으로 자기가 가진 현실을 표현하는 분들은 엄~~~ 청나 게 많지요.
하지만 부족한 지금 현실을 알기 때문에 정리 정돈,
그리고 계속 공부하는 자세로 생각과 인생을 차근차근
하나로 만들어가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타인들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알려진 문화적인 소양을 바탕으로 생각하는 기준을
잔잔하게 표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가끔 보면 아 이 친구는 이 책을 읽었구나
그 책에서 영향을 받았구나
하는 생각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사상적인 관점이나 이해는 사실 알고 있는 것보다
무의식 중에 나오는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을 합니다.
라고 외치는 저 도개 멋 부리면서 취미로 인생을 딩가딩가~
사실은 어떤 부분에서 영향을 받아서 이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저 자신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말입니다.
허걱 하는 심정에 읽었던 삼국지입니다.
너무 오래된 책이라서 표지가 잘 안보일 수도 있지만
삼국지 3권 적벽 대전편이라고 양각되어 있습니다. -
가끔 보면 게임으로 유명한 삼국지는 알아도
정작 삼국지 자체는 읽어보지 않은 이도 많다는 것을 근래 듣게 됩니다.
뭐, 판타지 게임을 즐기는 데 있어서 꼭, 고전 원작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요.
건담 프라모델을 조립해서 가지고 노는 것이 즐겁다고 해서
꼭 건담 애니메이션을 다 볼 필요는 없지요.
논리적으로나 취미적으로나 이해되는 과정에서 보면 재미를 위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지적 유희
(아무래도 모든 취미는 육체적인 것보다
머릿속 아드레날린을 위한 유흥적 의미가 크니까요)
를 가지기 위한 행복추구론이니까요.
다만, 아쉬운 점이라고 한다면 동화책 1권.
교과서 몇 줄도 안 읽고 살아온 것처럼 행동하는 것.
말하는 것을 떠나서
굉장히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 눈꼴시워~라고 표현하는 것도 봅니다.
실제적으로 취미적인 감평도
어느 수준을 넘어가면 하는 비평과 감평의 경계에서 오락가락
자율적인 기준을 넘어서 폭주를 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인터넷이 가지는 익명성이라는 문제성도 제기되지만
게임, 유흥오락, 자극적이면서 충동적인 행복에서
조금은 귀찮은 시간 투자가 멀어지는 것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인생에 있어서 꼭 한 줄기 빛과 양식이 되는
감명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을 만나 일생을 달리는 분도 있겠지만
어떤 취미 이야기를 하더라도 '왜?'라는 부분은
꼭 생각을 해두자는 것이 제 나름대로 가지는 취미 생각입니다.
왜 읽게 되었는지
왜 보게 되었는지
왜 가지고 놀게 되었는지
왜 가지고 싶었는지
왜 구입을 하게 되었는지
왜 들어보게 되었는지
왜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라는 부분에서 시작해보는 것이 재미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덕분에 이 책 제목은 무언가 모르게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같군!
이 내용은 무언가 모르게 삼국지에 나오는 그 부분 같은데!
라는 말을 하면
그게 뭔데?
라는 말을 듣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는 그런 거 읽으면 재미있냐?
라는 말도 좀 그렇지요.
지금 와서 돌아보면 정말 오랜 시간 함께한 시절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냥 취미를 하는 꼴통이나 바보들의 생각이라는 관점도 있지만
(더불어 공부할 시간에 교과서는 안 보고 이상한 것만 보는 바보도 있지만)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나다라와 ABCD를 보면서
그것을 바탕으로 무언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한자를 가지고 이해해야 한다는 심오한 세상을
만나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어렸을 적 공산품은 공산당이 만드는 물건이라고 착각한
저 같은 바보도 있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