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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보 Nov 17. 2021

무언가를 기억하게 만드는 것

파이오니어 CT-9R 등등

취미 관련 회상 글을 쓰다가 발견하게 된 무언가를 취하게 됩니다.

과거에 써둔 적이 있지만 워낙 오래전 일이라 기억하는 분들도 드물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오디오 관련 취미를 굉장히 이상하고 아프게 시작을 했는데, 그냥 음악을 듣는다는 도구로서, 라디오, 카세트 라디오를 좋아했지요.

그러다 해외에서 일을 하시면서 번 자금으로 마련한 오디오 장비를 제멋대로 팔아서 당시 유행하던 컴포넌트 오디오를 구입하면서 새로운 시대에 대한 접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실상, 오디오라는 것보다 장비, 인테리어 장비로서의 의미를 부여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가장 많이 사용을 하던 카세트테이프 장비의 비주얼적 요소이기도했습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게 또 그렇지 않았습니다.



지금 시대에도 가끔 회자되는 파이오니어(PIONEER)의 CT-9R 모델은 어떤 의미로 돌아보더라도 확실히 있어 보이는 디자인이었습니다. 1982년에 등장한 이 모델을 알게 된 것은 한국에서 '롯데 파이오니아'가 이름값으로 TV 광고를 날릴 때였기 때문에 알게 된 부분입니다.

기존에 있던 뻔한 디자인의 카세트 데크와 달리, 이쪽 디자인은 굉장히 있어 보였거든요.

이후 여러 디자인 변경이나 구성을 보여준 세상이었지만 이쪽 시리즈가 보여준 매력적인 구성과 디지털 감각이 넘치는 모던 디자인은 저에게 있어서 한동안 선망의 대상이었더랍니다.

실상 음질적인 것은 눈곱만큼도 관련이 없는 부분이었지만 이 디자인이 주는 만족감이라는 것은 어린 마음에 대단히 많은 것을 차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구멍이 하나뿐인 스피커보다 구멍수가 더 많은 것, 이렇게 디자인적인 개성이 뚜렷한 제품을 가진 근대적인 브랜드 제품군에 무척 많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요. 덕분에 마란츠나 매킨토쉬, 탄노이, JBL 같이 고리타분한 것(??) 보다 더 있어 보이는 이런 제품군, 이런 외형을 가진 제품들에 지지를 보내게 됩니다. 게다가 주요 사용 기준이 카세트테이프였으니 따로 말을 할 필요가 없었지요.

한동안 제 기준에서 차지하는 모던함은 이런 것들을 가지고 이야기하게 되었더랍니다.

과거에 어떤 것에 관심을 두고 그것에 빠져있었는지를 저 스스로 까먹고 있다가, 옛날을 추억하는 글을 정리하다 보니 새삼 떠올라 찾아보게 되는 이미지들을 보면서 또 다른 관심사의 시대를 떠올리게 됩니다.



어떤 의미로 보면 'AKAI GX-77'도 그런 부류에 들어가는 녀석이기는 했지만 한국에서 들어볼 수 없는 디자인적인 요소들만 고려하기에는 무시무시한 세상이었지요. 대부분 어떤 잡지, 일본 서적을 취급하는 몇몇 동네 잡지 전단 등을 통해서 알게 된 부분이지만 여전히 있어 보이는 그런 구성과 디자인에 많은 관심이 쏠리던 때였다고 하겠습니다.

그래 봤자 카세트테이프일 뿐이지만 좋아하는 노래를 마음대로 녹음해서 자신만의 베스트 타이틀을 만들어 들을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지금 시대의 그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더불어 보면 아직까지는 정보라는 부분을 많이 얻기 어려웠던 시대였던 터라, 무언가 모르게 기존과 다른 신기한 구성을 가진 제품군들을 보면 그냥 쏠리는 심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 봤자 카세트테이프 데크일 뿐이지만 말이지요.

어린 마음에도 설계 해부도를 보여주는 구성을 보면서 뭔가 모르게 이것은 확실히 있어 보이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냥 막무가내로 동경을 했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막연하게 소니 브랜드를 신봉하게 된 이유도 있었지만 방송 관련으로 일을 하시던 분 집에 있던 이런 장비들을 보면서 어흐흑 한 심정으로 바라보던 것도 떠오르게 됩니다.

그러면서 점차 브랜드, 로고와 디자인 등을 생각해보게 되었던 것도 기억을 하게 됩니다.

굉장히 오래된 것 같은 SF 잡지의 삽화나 만화 그림보다 훨씬 있어 보이는 80년대 제품군들은 한국 시장의 그것과 많이 달라서 더욱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각인되었지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아날로그 한 감성이라고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70년대를 지나 80년대라는 시간대에 들어가고 있는 가운데 기존과 다른 무언가를 따지는 것은 당연한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한국은 한참 흑백 TV와 컬러 TV 시장이 점차 변환되는 과정을 맞이하고 있었고 다양한 문화, 경제적 변화를 보여주던 때이기도 합니다.

동네 골목에서 팔던 아이스케키 아저씨나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장사하던 분들이 사라지고, 요란한 장식이나 유리창문을 달고 나타난 '슈퍼마켓'이라는 이름을 단 동네 골목상점들이 나타나기도 했었으니까요.


어떤 의미로 보면 좀 추억이 쓸데없이 보정되어 자신의 기억과 다른 형태로 남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저는 저 피라미드형 포터블 TV를 컴퓨터 단말기라고 착각을 하고 살았더랍니다.

근래에 '레트로'라는 감각적인 구성을 바라보며 찾아보던 이미지 가운데 저것이 있어서 어흑! 하고 놀랐던 일도 기억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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