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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보 Nov 18. 2021

대항해시대 - 2차 노예무역

사람이 사람을 수렵하던 시절 경제

[대항해시대 : 大航海時代 : Grandes Navegações / Age of Discovery]

2차 노예무역

1350년대에 들어선 중세 유럽은 아프리카 대륙이 가진 '미개함(?)'에 자신들이 가진 우수성(?)을 보여주면서 일을 시켰다.

그리고 그것이 '행복한 신의 운명'이라는 굴레를 씌워가면서 정당화시켰다.

그래서 시작된 무역의 근간은 노동력의 착취, 무한한(?) 인간 가축 시대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자기중심 우월주의에 빠져있었던 유럽은 당연히 문화와 문명의 이익은 그들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믿었고 종교와 정치가 인정해주는 형태를 가졌다.

이로 인해 시작된 사람 무역경제는 새로운 노동력의 기반을 마련했고 산업혁명이 있기 전까지 계급적 차별적 인적 노동자원을 사회의 기반 형성에 투여하는 것이 정당화되었다.


만보 주 ▶▷▶

물론 고대에도 사회제도의 붕괴, 유지를 위한 노예제도는 있어왔지만 지금 시대까지 이어져오는, 인권 자체를 무시하고 인종적 차별의 기준을 만든 사회 인식의 배경에는 이 대항해시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정된 경제 역할을 넘어서 정(正)의 면을 본다면 다양한 가치관의 확립과 국가로 형성되어 발전된 힘의 가치를 어떤 형태로 발현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대표적인 형태입니다.

그 때문에 이후 인류에게 있어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개척과 도전은 당연한 미덕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자신의 고향을 기반으로 정착하는 생활을 하던 일반 대중에 비해, 훨씬 소수에 속했던 탐험가, 모험가, 그리고 개척자들은 훨씬 많은 가치를 부여받고 이해를 얻습니다. 그를 통해서 인생의 가치를 완성한 이도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벌어진 일에 대한 뒷일들은 그렇게 깔끔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지요.

속칭 문명과 비문명의 접촉이라는 형태를 통해 논을 할 때도 있지만 그 접촉 방법과 계몽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벌인 만행들도 계속 바탕에 깔려있었기 때문에 이 세계의 논리적 접근이 결코 이성적이지는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사(邪) 쪽인 면을 보자면 단순하게 유럽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론이었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 해결된 이후에도 꾸준히 경쟁적인 약탈 과정과 구성을 멈추지 않았고 이것은 이후 아시아 경제와 문화에 영향을 미쳐 그 독기를 많이 받은 몇몇 나라들이 광분하는 사태를 낳았습니다.

신분, 계급, 차별이 당연하게 존재하는 그 시대를 지금의 인권문화 시대로 바꾸게 된 혁명적인 장점이 부각되기 때문에 미개한 민족성이나 개성적인 시대의 이변으로서 거론되는 점도 있지만 역시 대항해시대는 엄청난 세계 문화의 변혁을 일으켰습니다. 참고로 노예제도를 유지하고 착취 행위에 대한 더러움을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나라에 대해서 그런 제도적인 구분을 욕하는 것은 말 그대로 모순입니다.

그런 단순한 모순을 깨닫지 못한 체 수백 년간 유지된 것은 결국 '욕심'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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