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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보 Nov 25. 2021

백과사전의 기원

백과사전 (百科事典 : encyclopaedia)

[백과사전 ; 百科事典 : encyclopaedia]의 기원  L'Encyclopédie

백과사전의 공식 연도별 표기는 1751년으로 되어 있으나 이것은 프랑스 책상인이 정식으로 출간시킨 책자 구성을 우선으로 볼 때 연도이고 본래는 1728년에 시작된 형식을 기본으로 본다.

프랑스 계몽사상가였던 두니 디레롯(Denis Diderot)을 중심으로 제작되었던 L'Encyclopédie를 기반으로 다시 재편성, 약 20년간 책자로서 형성된 것이 이 백과사전의 시초로 본다.

백과사전이라는 것은 계몽적 사상과 출판문화의 가치 확립, 프랑스 왕정에 대한 종류가 많은 기술적 학문적 정의에 대한 보편적이고 타당성이 있는 문화적 논리의 중심을 만들기 위해서 시작했다.

즉 지식들에게 정의되어버린 '법전'이 아니라 상식과 지식의 접점에서 더 많은 이들에게 글을 읽게 하고 지식을 쌓아 교육적인 방법의 기준을 삼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관, 종교관, 지리적 역사와 상관이 없이 보편적인 상식선에서 정의하는 것이 중요한 작업으로서 사회적 압력이나 정치, 종교의 간섭을 배제하는 것이 중요한 가치라고 하겠다. 실제 이러한 사전식 구성이 완성되지 못한 배경에는 종교의 압력이 크기도 했기 때문이다.

지식과 상식의 차이는 교육이라는 형태로 구분되는 것과 다른데, 그 사회(또는 민족이나 국가)가 가지는 보편적 가치보다 더 중립성을 가지면서 기본적인 설명에 편견적인 구분이 없어야 한다는 가치를 본다.



만보 주 ▶▷▶

앞서 이야기했던 연금술과 약학은 마법, 또는 사악한 주술의 영역에 속한, 국가종교가 미처 행할 수 없는 부분을 건드린다는 점에서 적대시했습니다.

사실, 국가종교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대중에게 조금 더 널리 알려진 집단일 뿐, 수많은 믿음, 신앙의 기준은 여기저기에 존재했지요.

그리고 중앙 종교라고 할 수 있는 국가 공인교와 함께 수많은 신앙들은 다양한 자신들의 가치관과 함께 지식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공통된 영역을 가지기도 했고, 서로 다른 견해를 보여주기도 했는데, 백과사전이라는 것은 그것과는 다른 논리적 기준을 가지고 접근하게 되기 때문에 그만큼 상대적인 부분이 많았습니다.

당연히 자신들만의 특권의식으로 살아왔던 부패한 종교 지도층과 권력자들은 이런 것에 의해서 계몽된, 깨우친 사람들의 등장이 싫었습니다.

인쇄출판의 가치는 자신들의 믿음을 바탕으로 한 전파 능력을 확산시킬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찬성을 했지만 이런 형태로 다른 주제가 전파되는 것에는 반대하고 싶었다고 하겠습니다. 그 덕분에 자신들이 줄 수 있는 것이 의외로 적다는 것을 알게 된 정치, 행정 부분에 대한 논의도 백과사전과 같은 것을 통해 알아볼 수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대중은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는데 그것은 자신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것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단, 문제는 이렇게 많은 문장과 글을 알고 볼 수 있는 계층이 그렇게 많지 때문에 결국 아는 사람, 있는 사람만 알게 되는 일의 순환이었다는 것이 좀 그렇고 그런 결과였습니다.

이후 글을 읽고 쓰는 법을 가르치는 교육의 기반 형식에 많은 제약이 따랐던 것도 역시 기득권, 종교계의 반대 때문이었는데 문맹률이 높으면 그만큼 발전되어가는 산업기반에 있어서 인력부족 현상이 생기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충족시키기 위해 마지못해 허락을 하게 된 배경이 되기도 합니다.

백과사전의 의미는 충분히 좋은 것이었지만 의외롭게도 엉뚱한 방향에서 사회적 욕구가 분출되었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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