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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보 Nov 25. 2021

니콜라스 조셉 큐뇨
[증기 포차]를 만들다

니콜라스 조셉 큐뇨 [증기 포차]를 만들다

1769년. 프랑스 육군 포병부대를 위해서 루이 15세 통치 시의 육군대신 겸 재상이었던 에띤느 프랑소와 조와쥴(Étienne-François de Choiseul)이 당시 발명을 중심으로 활약하던 니콜라스 조셉 큐뇨(Nicolas-Joseph Cugnot / Musée des Arts et Métiers)에게 만들게 한 포차, 대포를 이동하기 위한 말수레를 대신하는 동력차가 이것이다.

증기력을 기반으로 한 실험적인 형태로 이것이 지금 우리 시대의 자동차의 기원으로 본다.

단, 실제로 활용하는 것은 실패했다. 그냥 말을 쓰는 것이 더 결과적으로 좋았기 때문이다.

시운전 중 폭발이나 사고 등을 일으켰다는 일화는 진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소문이 워낙 무성한 세기의 물건이었다는 것은 확실했다고 하겠다.


만보 주 ▶▷▶

증기력이 가진 여러 가지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논쟁적인 부분은 굉장히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이것이 이름을 날린 것은 '군사력'과 연결되었기 때문입니다.

내연기관이 발전해가는 과정은 금속 제조학과 더불어 다양한 물리학 변화를 이끌어냈고 그것이 가진 큰 이유는 '혼란한 정세'였습니다.

군사력 증강은 필요했지만 이전보다 국가(정부체계)의 위신이 약해졌고 인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었기 때문에 함부로 막 싸움질을 할 수 없었습니다. 국가이익이라고 뻥을 치고 싸움을 벌이기에는 많이 어려워진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효율적인 무언가가 필요했는데 그중 하나가 이것이었습니다. 비록 증기기관을 중심으로 한 무력 기기들이 완성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지만 인류의 문화가치에 있어서 증기는 이후 '스팀펑크'장르를 만들 정도로 다양한 판타지와 환상을 품게 해 주었습니다.

실제 증기력은 순수한(?) 자연의 힘이라는 가치관과 함께 이후 등장하는 석유 중심의 발전기와는 다른 경쟁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약간은 신비한,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놀라운 그것들이 이제 현실에 등장했다는 것 때문에 받은 관심과 주목도는 말로 할 수 없는 놀라운 수준에 도달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비공식 기록에는 증기력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무기 개발도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다만 화약력에 비해서 약한 것이 문제였기 때문에 높은 수준의 완성품이 구성되지는 않았습니다. 특징만을 보면 소음이 적고, 확실한 목적을 기반으로 한 연구개발에 있어서는 방향성이 좋았다고 합니다.

물론 산업 개혁과 더불어 농기구에 증기 시스템을 넣는 기술적 도입은 있었지만 실현되지 않은 것은 아직 전쟁 관련 무기 생산 쪽만큼 가치를 이해받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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