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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보 Nov 29. 2021

아이티 혁명 - 아프리카의 바람

바람이자 바람

[아이티 혁명 : Révolution haïtienne] - 아프리카의 바람

1791년 8월 22일부터 1804년 1월 1일까지 프랑스 식민지 생도맹에서 아프리카 노예들에 의해서 벌어진 체재 반란으로 시작해 성공을 한 혁명의 명칭이 '아이티 혁명'이다.

12세기 말엽부터 급격하게 늘어났던 아프리카 노예, 식민지화에 대한 대표적인 반란 성공사례로서 1700년대 중엽, 18세기 초반부터 꾸준히 일어났었던 여러 가지 반식민지,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이 기록되었지만, 근대화 무기와 체계적 군사훈련으로 인한 제압으로 인해 좌절되었으나 이 반란 기록은 (서양, 프랑스로서 볼 때의 반란) 혁명으로서 기록될 수 있는 업적을 남겼다.

이 아이티 혁명을 시작으로 새로운 시대의 아프리카인 역사를 만들게 되었고 이것은 이후 여러 가지 아프리카 역사와 민중이 중대한 전환점으로 기록하게 된다.

유럽 열강들은 이것을 역사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을 보여왔지만 아프리카 아이티의 혁명을 통해 이들이 얻어낸 자립권은 이후 다양한 형태로 세계경제의 흐름을 바꾸게 된다. 여기에 미주 독립으로 인해 가뜩이나 기득권들 행보가 위험해진 기운이 더해졌으니 말이다.


만보 주 ▶▷▶

동양과 달리 서양과 아프리카 지역의 대립 갈등은 꾸준했습니다.

만일 아프리카가 아니라 동양 세력이 이런 상황을 맞이했더라면 또 다른 구성을 보여주었을지도 모릅니다.

단 백인 우월 문화주의에서 보면 흑인들은 부족을 만들 수는 있어도 왕국으로 발전되기 어려운 문화 체계와 근대국가로서 성립될 요소가 적었다고 주장을 합니다.

순수한 인력자원을 제외하고 천연자원을 개발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가지고 능력의 차이로 인식시키는 역사관을 주입했는데 그것이 약탈과 착취의 정당한 원인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이해관계를 폭력으로 억압하던 유럽 경제의 발전기는 '사상누각'이었다고 하겠지요.

아이티 혁명은 그것을 붕괴시킨 사건으로서, 역사의 의미를 크게 잡을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잘 안 알려지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아프리카의 바람은 이때부터 불었지만 꾸준히 유럽 국가들은 자신들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 조용하게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좀 치사하기는 했습니다.

다만 이후 독립의 열풍과 달리 자체 발전의 열망이 엉뚱한 방향으로 나가 일부 기득권 세력의 부각과 지식인의 부패, 그리고 투쟁 집단의 일상적인 쿠데타 빈발 상황으로 이어진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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