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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보 Dec 14. 2021

한 것은 많은데 이룬 것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너무 뻔한 이야기를 강조해서 할 것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1960년대에 태어나

1970년대에 찌질하게 굴러다니더니

1980년대에 뭔가 잔뜩 변화하는 바람에 정신을 못 차리다가

1990년대에는 어느새 IMF 시절을 겪은 직장인이 되어있고

2000년대에는 나름 IT 스러운 직종에서 자리를 잡았는데 

2010년대에는 영상 관련 일을 하고 있더라는.


그래도 마음은 언제나 청소년이라 생각하는 (타인들도 그렇다고 합니다) 저는

거침없는 활동량으로 28개국 순회공연(이라고 쓰고 관광 다녀온 것)을 하고

결혼을 하지 않고 번 돈 다 까먹어가면서 취미 하는데 써버리면서 살아가는

지금 생활에 나름 만족을 하고 있습니다.


브런치 초기 글에도 써두었지만 해외로 이민 간 취미 친구가 셋이 있고

취미 왕국 일본에서 사는 취미인이 여럿 있다 보니 해외 취미 연결도 좀 여유로운 편이었습니다.

덕분에 대만, 중국, 이탈리아, 말레이시아, 브라질에 사는 취미인과도 친해져서 에헤헤 하게 되지요.

블로그 좀 하다 보니 파워블로거 돼서 이런저런 모임에도 나가 나름 새로운 시대의 변화기도 맞이해보고

인맥 쌓기에 노력해서 (오프라인 중심이지만) 한때 700여 명 지인을 주소록에 저장해두었는데

정작 나이 들어가니 다들 무슨 예식이나 일이 있을 때만 연락하는 좀 오묘 모호한 사이가 되는 것을 보고

과감히 업종 바꾸면서 대부분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꾸준히 사회생활을 해온 덕분에 노후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으면서도

은근 걱정도 조금 해서 아끼는 생활을 하며 올해 은퇴를 결심했지요.


본래 2019년에 은퇴를 하려고 했는데

코로나 시국과 함께 잘 안 풀리던 일이 갑자기 빡세게 풀려버리는 바람에 너무 바빠졌고 결국

사직 수리가 올해 연말로 결정이 났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슬슬 신변 정리를 하면서 11월 큰일을 마치고 나니까 좀 날씨가 쌀쌀해지더군요.

작년과 올해는 수능 한파도 없었던 기이한 시즌이었다는데 저는 일이 다 끝나갈 때가 되니 날도 추워지고 미세먼지 경보도 울리고 하더군요.

덕분에 올 11월은 자전거를 딱 한 번밖에 못 탔습니다.


바쁜 사회생활을 마감하고 여유롭게 놀고 다닐 생각으로 2019년에 사직의사를 밝혔는데

대뜸 일이 바빠지고 코로나까지 등장해서 더불어 일에 치이게 되었지요.

여유 잡고 일을 그만두면 여행을 다니면서 룰루랄라 놀고 다닐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 되고 말았지요.

그래도 위드~ 시대를 거쳐서 조금 더 널널하게 여행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이리저리 돌아보게 될 것 같습니다.


더불어 못 만난 얼굴도 다시 보고 다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한국 아이티 업종 초창기 시절에 통신문화를 거쳤기 때문에 은근히 아는 사람들 중에는 유명인이 제법 있습니다만 이게 아는 사람만 아는 유명인이다 보니 좀 그렇기도 합니다.

물론 지금 정도 되면 이름만 들어도 아는 유명인이 나오기는 합니다만 그쪽이 저를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가?라는 점을 돌아보면 그냥 아는 정도이지 친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니 그냥 아는 사람일 뿐이지요.

그런 관계를 조금 더 +1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지요.


그러면서 생각을 해보면 저 같은 사람, 일반 취미인 기준으로 보면 정말 한 것은 많은 것 같은데 이룬 것은 없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사실 무언가를 이룬다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인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이룬다는 '업적'을 기준으로 둔다면 대단히 모호할 것 같고, 이름을 날렸는가?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냥 보통 일반 직장인과 같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지냈다는 것 정도의 수준을 벗어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물론 주변에는 유명~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축에 속한 이도 있지만 그런 기준에서 봐도 저는 역시 이룬 것이 없는 보통 사람이지요.


취미적 내공은 함부로 가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농도 날려보겠지만 사람은 보이는 것과 달리 조용하고 은밀하게 위대해지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은밀할 것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보통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것은 충분히 좋은 일이지요.

나쁘지 않고, 악행에 물들지 않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일로 본다면 일반인 기준으로 조금 많이 한 것은 맞는데 정작 이룬 것은 없다는 것에 조금 아쉽다는 말을 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누구에게 자랑하려고 일을 한 것은 아니다 보니 꼭 이루어야 하는 것인지 어떤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혼자 해서 이룬 업적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취미의 세계는 언제나 혼자 만족하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조용하게 마무리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건담 프라모델 조립을 성공했다는 업적은 쌓았습니다만

그것이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의미로 쌓는 업적은 아니니까요.

만화책 전권을 구입해서 다 읽었다.

이것도 역시 타인을 위한 업적은 아닙니다.

그냥 쌓이고 쌓이는 것이지만 이런 것들이 하나 둘 모여 저의 위업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사회적으로 돈을 버는 것보다 어떻게 까먹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인식을 가지는 데,

저는 취미적인 부분으로 까먹으며 번 돈을 다 써버렸으니 그런 것은 제가 이룬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많은 취미인들이 이루는 것이다 보니 저만의 무엇이라고 말하기도 어렵지요.


어찌 되었든 저는 딩가딩가 하게 살아오면서 이것저것 즐기면서 취미생활을 했고,

그것으로 이룬 것은 없지만 나름 만족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코로나라는 변수로 인해 제가 꿈꾸었던 은퇴 후 생활이 좀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것 같다는 생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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