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목요일
1928년에 일부 국가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지역 경제공황이 1929년 10월 24일,
뉴욕 주식시장 대폭락 상황을 보여주면서 '검은 목요일'이라는 이명을 남긴 이날부터 촉발되어 전 세계로 확대된 경제공황을 보여주었다.
이야기 시발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세계공황으로 통칭되는 경제공황(world economic crisis/panic)에 대한 의식은 크리미아 전쟁 이후 급격한 곡물 가격 변동으로 인해 1857년에 일어난 1857년도 공황을 기반으로 시작된다.
또한 이런 형태로 반전한 급격한 금융 변동은 자연재해와 상관이 없는, 인간들의 만행, 주로 전쟁행위로 인한 변동 가치가 작용하는 것으로 한동안 마르크스식 경제학에 대한 이해가 다시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사회 심리적인 형태로 가장 큰 의미를 남긴 이 1928년 대공황은 베이비 붐 세대를 거친 세대와 그 이후 세대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1차 세계대전이 종료되면서 강력한 국력을 자랑하게 된 미국을 중심으로 무리할 정도로 낙관적인 투자, 집중되는 산업개발, 따지고 보면 생각 없는 돈이 몰리는 시대를 보면서 팽창 일로에 있던 경제적 가치관이 바뀌는 현상이라고 하겠다.
물론 좋은 요소는 있었다.
물질이 풍요해지고 자동차와 텔레비전 보급으로 인해 문화 욕구도 높아지고 있었기 때문에 어디를 가나 소비지향적 금융 회전에 낙관론이 팽배해있었다. 다만 기반이 전쟁으로 생긴 중공업, 산업 촉진력과 다른 방향이었고, 식민지배 착취로 형성된 가능성이 낮은 미래 계획에 불분명한 자금 유동이 문제였다 하겠다.
유럽 경제가 비틀거리는 상황에 생존과 관련된 농업 관련 불황, 이어진 세계대전 후 복구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좋은 방향만을 가질 수는 없었다 하겠다. 실제로 체계적 분석과 논리적 가능을 본다면 이 공황상태에 대한 회피는 얼마든지 가능했지만 그런 것을 예상하지 못한(라기보다는 그런 결과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는 것조차도 싫었던 일부 세력들의 논리에 의해) 형태로 쓸쓸하게 맞이하게 되었고 그것에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국민들이었다.
실제 1920년대 세계경제 회의라는 기준을 보면 강대국 입장을 우선으로 한 통화정책의 안일한 구성과 각국의 의미와는 상관없는 산업자원 유통을 우선시하는 - 일부 업자들의 농간이라는 설도 있다 - 더불어 로비에 의한 정치적 유착도 함께 했다 - 개떡 같은 형식만 우선되어 결과가 이어졌다고 하겠다.
특히 과시적인 행정과 무분별 한 산업 특혜, 사회주의에 대한 반발적인 세계경제의 불균형을 해소할 수 없는 미국의 과잉생산 등은 이후 석유와 철도, 철강과 같은 몇몇 주요 기간산업에 큰 타격을 주었다. 독점적인 세계경제 기준이 어떤 형태로 해소될 수 있었는가를 떠나 언제나 과도한 투기를 시작으로 벌어지는데 이것이 기존 사회계층 반발보다는 이익을 안정화시킬 수 있다는 정치적 제스처와 동반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문제였다고 하겠다.
어느 정도 안정된 사회에서는 그 가치 이상을 바라는 것이 무리이다. 경제는 안정되어야 하고 그 가치관이 넓어져서 어느 정도 선에서 멈추는 것이 맞는데 억지로 끌어올리는 과정을 통해 세계적 입장에서 우월성을 자랑하려는 과정이 나오면 문제가 된다.
인류 문화의 기본영역이었던 건축과 농경 산업이 큰 타격을 입게 되면서 일어난 경제력 감소 현상은 말 그대로 도시 문화권 몰락과 현실 비판을 일으켰고 동시에 사회주의에 대한 지지를 만들게 되는 현상을 만들었다.
'투기 현상'은 언제나 망조가 든 사회가 보여주는 강한 경고이기도 하다.
기본 경제 체재의 기반은 대부분 착취형이었고 그것을 기반으로 안일한 경제 팽창주의가 만들어내고 있었지요. 세계경제는 새로운 신흥 강국과 식민지 시대를 끝내고 새롭게 도약하고자 하는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착취 관계가 협력으로 바뀔 수 있는 좋은 타이밍을 놓친 것이 이때 현실이라고 하겠습니다.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이 보인 멍청함과 눈앞의 이익만을 보는 동물적인 습성을 가진 계급사회의 꼭대기들이 벌인 맞장구라는 농담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결국 죽어나는 것은 언제나 서민들이지만 그것에 대한 책임은 꼭 비켜나가려고 합니다.
전체적으로 사회비판적 분위기는 이후 정체된 사회주의와 공산, 그리고 자유경제를 무시한 독재적 파시즘이 활약하는 계기를 낳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상황이 있었음에도, 21세기를 보면 그런 시대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멍청함이 여전히 보인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