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7월 20일. 이소룡이 사망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그리고 80년대로 이어지는 유명인들의 급작스러운 죽음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광동 화교 출신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홍콩에서 자라고 중국 액션 (쿵푸 영화) 장르의 신기원을 수립한 이소룡, 브루스 리는 새롭고 긴박한 스피드감을 내세운 무술 액션을 통해 실전 형태를 강조한 (짜인 무협영화 스타일이 아니라) 동양무술 붐의 주역으로서 자리를 잡는다.
그런 그가 [용쟁호투 : 龍爭虎鬪 : Enter the Dragon]더빙 중 전신 발작과 뇌부종을 일으켰을 때 이미 많은 육체적 부담을 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리우드 인기 액션스타는 급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그 사망에 대한 신비로움을 가지고 엘비스(가수), 마릴린 몬로(여성배우)와 함께 3대 스타의 의문스러운 급사 사건으로 기록된다.
아직도 어딘가에서 살아있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의문의 죽음이라는 형태는 가족이 바라보는 가운데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급작스러운 변화 때문에 생긴 명칭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의학이 발달된 지금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 사망이라는 관점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남의 사망에 관련된 어떤 것을 직접 당하기 전에는 모르니까요.
사실 세상은 냉정합니다. 살아있는 자에게는 무한한 가치를 부여하지만 죽은 자에게는 그냥 죽은 자의 이름으로서 가치가 남기만을 바랍니다.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 이도 있지만 살아서도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많은 이들의 죽음 속에서 그냥 지나쳐버리고 맙니다.
아직도 만성적인 지역주의, 차별주의, 인종주의가 있는 세상에서 동양인으로서 성공의 한 모습을 정형화시킬 수 있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지만 그것이 가진 의미와 사회적인 통념도 따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도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농담처럼 '미국말을 하는 중국인은 중국인이 아니다' 라는 평을 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출신이나 피부색보다는 그 인간 자체가 가진 의미나 행동 등을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만보가 어릴 때는 이소룡이 죽은 지도 모르고 언젠가 이소룡과 성룡이 싸워서 누가 더 강한지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도 했었습니다.
지금은 컴퓨터와 CG로 가상 대결을 시켜볼 수 있는 시대라고 하지만 전성기의 힘과 스피드, 노련미가 더해진 경험치를 더해서 어떤 결과가 나오던 그가 세상을 대표하는 무술인으로서 (또는 무술을 하는 영화인으로서) 많은 것을 가지고 보여주면서 기록을 남겼다는 것을 생각해봅니다. 할리우드가 배경이 아닌, 지금 시대에 이소룡이 나왔더라면 또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