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보 May 20. 2016

취미로 일하기. 취미에 취직하기.

가끔 듣는 이야기들을 보면 취미는 일이 되면 안 된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1970년 말과 1980년대는 정치와 사회 혼란기를 거쳐서 다양한 세대변화가 일어난 때라고 말을 합니다. '응답하라' 시리즈에 따르면 80년대 중후반과 90년대는 말 그대로 신세대가 보여주는 많은 혼란이 정체되어 수많은 청소년들은 자신의 삶을 결정하게 되었다고 하지요.


삶에 있어서 인생설계나 미래를 바라볼 수 없었던 시대와 달리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가지고 있는 행복이라는 것을 정작 그 당시에는 못 알아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겠습니다.


정말 일이라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여러가지 선택의 갈림길을 만들어줍니다.

제 경우에는 한국에서 대학이라는 장소가 종점이라는 생각까지 했었습니다.

어른들은 언제나 말하지요.

"좋은 대학만 가면 된다. 그러면 이후에 삶이 편해진다"고 말입니다.

마치 인생의 종점은 좋은 대학에만 가면 된다는 식의 말을 듣고 아이들은 제대로 된 사고를 키우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목적의식을 부모, 가족이라고 해도 그들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해와 생각에 의해서 결정돼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너무 당연했다고 하겠습니다.

사실 이런 부분은 일본에 가서 볼 때까지 잘 깨닫지 못했습니다.


전공을 한 것과 전혀 상관없는 부서나 일을 받아하게 되면 좀 이상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만 사실 저 자신이 별생각 없이 살았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이 정작 학교생활이나 전공과는 눈곱만큼도 관계가 없는, 취미 때문에 알게 된 것들이 일에 더 많이 활용되었습니다.

왜 학업이라는 것이 필요한지 조금 의아하게 생각을 해보게 되었지요.


관리직에 들어가 시험과 면접을 진행하게 되면서 느낀 점도 있었지만 우수한 인재라는 것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과 달리 그것 때문에 벌어지는 아이러니도 있습니다.


결국 자신의 삶에 자신을 가지고 어떤 일을 선택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실제 OECD 통계에 따르면 자신의 의지와 희망과 달리, 환경과 조건에 맞추어서 일이라는 것을 하게 되는 경우가 절반 이상이라고 합니다. 특히 별도 통계에 나온 개발도상국과 미개국인 경우, 삶의 질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일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삶의 선택이라는 부분을 가지고 말을 하기란 쉬울지 모르지만 그 선택이 굉장히 어려운 방향을 가지고 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입사 2시간 만에 때려치우는 인간도 있고, 12년을 근무했지만 결국 전혀 다른 자신의 꿈을 만들기 위해서 달려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취미라는 영역으로 접근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취미 때문에 일이라는 것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겠습니다.




농담 같은 이야기겠지만 '선택을 하게 되는 이유'를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여전히 농담 같지만 '너 자신을 알라'라는 선인의 말을 듣고 깨닫는 것은 의외로 많습니다.


주변에 제법 명문대라고 하는 곳을 다니는 취미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명문의 명문과에 속해있었다고 해서 행복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가?

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다른 관점이 나옵니다.


가장 많은 결과론은 재력, 명성, 사회적 인식이라고 하겠지요.

대부분 가정의 안정을 위해서 그 일을 꾸준히 유지해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그 일에 해방된 이후의 삶에서 취미라는 선택을 꿈꾸게 되지요.


일, 회사를 고르는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그런데 일과 꿈, 취미라는 것이 일치하기란 정말 정말 어렵습니다.

그런데 저는 좀 쉽게 그런 부분이 연결되었습니다. 취미심만 많았는데 그게 설마 인생에 있어서 이런저런 형태로 경험하게 될 수 있었을지는 몰랐지요.


가끔 듣는 이야기는 

"일에 사랑을 해라."

라는 소리입니다.


사춘기에 빠지는 열병 같은 사랑이 아니라 진지하게 함께할 수 있는 사랑을 말하는 것이지요.

은근히 이것이 비유해보면 비슷합니다.

사춘기에 맞이하는 화끈하고 길게 인생에 남는 사랑과

삶에 있어서 함께하면서 살아가기에 좋은 선택을 하는 사랑이라는 것이 말입니다.




청소년들의 생활감이나 사고관이라는 것은 굉장히 결정이라는 것을 하기 어렵습니다.

보통 '사춘기'라는 것이 감성적인 부분만으로 정리되고 말겠지만 실제 생각이라는 것이 어떤 형태로 결말을 맞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단순하게 청춘의 폭주라고 말할 수도 있겠고, 그것 때문에 인생 가도에 마지막 종소리를 울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아무래도 좀 놀면서 일을 했던 것 때문에 주변 어르신들이 자식들, 친구 자식들이 이상한 방향으로 갈 것 같으면 저보고 인생 경험, 충고를 해주라고 합니다.

그것이 먹혀들어가는 일은 없었지만, 제 충고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간단했습니다.

'자신의 가치관에 맞는 일을 선택해라'

뿐입니다.


어린 나이(?)에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이라는 장소에서 벌어지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보면서 굉장히 묘한 감상을 가졌습니다.

한쪽에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른 곳에서는 말이 안 되는 것이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런 현상은 90년대에 이런저런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더욱 화끈하게 느끼게 됩니다.


내가 꿈꾸던 일이라는 것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자신이 선택해볼 수 있는 직업이라는 것에 어떤 것이 있을지 생각해볼 수 있는 때와 그렇지 않은 때라는 것이 어떤 행복의 기준이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오히려 선택의 폭이 너무 넓으면 혼란만 계속된다고 하지요.

결과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취미 때문에 일을 가지게 된 몇몇 분야에서는 제법 이름도 얻었습니다.

그 때문에 이후 세대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도 해줄 수 있게 되었지만 결국 취미로 시작한 부분이 취미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취미라는 것이 일이 되기란 굉장히 어렵다고 생각을 합니다.

자신이 일찍부터 꿈을 꾸던 일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가는 것도 정말 중요하지요.


일반적으로 사회에 필요한 공부는 초등학교, 그리고 가정에서 다 얻는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후 자신의 삶에 있어서 어떤 것을 가지고 나갈지 결정해나가는데 다시 중, 고, 그리고 대학이라는 과정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성인이라는 사회의 인식을 얻어 나가려면 말이지요.


저는 저보다 한참 어리지만 한참 어른스러운 취미인들을 많이 봤습니다.

완전히 달라요. 취미가 일이 되거나 일을 하다가 그것이 취미가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것 때문에 인생의 대부분이 어떻게 달라질지는 누구도 모릅니다.

그리고 일과 달리 취미는 나이와 상관이 없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누구에게 욕을 먹는 일을 하지 않기란 어려울지 모릅니다. 취미는 또 그런 부분에도 속해있으니까요.

넓은 장소에 있었다는 것을 안에서 일할 때는 모르다가 정작 나와보니까 알게 된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 넓이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깊이를 모르니까 하게 되는 소리라는 것이지요.

그 사회를 나와서 취미 하다가 다시 만나게 된 그때 그 사람들의 모습에는 또 다른 정열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환호하게 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취미문화의 시대가 바뀌는 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