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금색도 좋아하지만 말입니다.
실버 액세서리에 큰 관심을 두고 살지는 않았지만 어줍지 않게 이런저런 것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단순합니다. 이태원 등지에서 밴드 생활을 하던 친구가 하드 한 음악 환경에 어울리는 퇴폐적이고 우울한 분위기를 가진 액세서리를 찾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80년대 말, 90년대 초에 그런 아이템을 찾아서 갖추려면 좀 어렵기도 했습니다.
이래저래 인연이 되어 미군기지에서 일하는 취미인에게 이런저런 것을 부탁했지만 워낙 늦게 들어왔습니다.
속칭 '역 십자가'나 '불타는 해골 모양'을 한 액세서리라는 것이 그렇게 만만하게 들어오기 어려운 것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해골 모양을 한 반지 같은 경우에는 한국적 정서에 맞지 않는 것 때문에 이벤트가 아니면 하고 다니기도 어려웠다고 하겠지요. 그러다가 일본 도쿄 우에노에 가보니 그런 액세서리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곳이 있지 않겠습니까.
이후 이런저런 인간들과 에헤헤 하면서 특이한 것을, 한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것들을 하면서 개멋을 자랑했습니다.
참고로 제가 좋아하는 브랜드와 디자인은 '울프맨 브라더스'와 'L ONE'입니다.
실버 액세서리 영역은 제법 재미있는 여러 에피소드가 있지만 책이나 잡지 등에서 알게 된 전설(?)은 대부분 폭주족이나 동화, 그리고 유명한 스타가 착용했다는 것을 통해서입니다.
LA에 처음 갔을 때는 이런 제품을 취급하는 업체가 유명 보석 브랜드 '티파니'처럼 크게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굉장히 작은, 수공예 공방 같은 스타일이더군요. 디자인을 결정해도 완전히 같은 것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날 그날 작업자의 컨디션에 따라서 조금씩 다른 것이 나오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악한 물소 해골 - 거의 악마상에 가까운 - 액세서리를 주문할 때는 2개월은 기다리라는 말을 듣고 허걱 했습니다. 유럽에도 장인들이 있지만 브랜드라기보다는 지역 한정 형태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 점포를 직접 만나보기란 어려웠습니다.
더불어 액세서리 작업은 취미이고 본업은 다른 경우도 있었고요.
마침 레너드 컴호트(Leonard Kamhout : 실버 액세서리의 유명 브랜드 크롬하츠의 디자이너 겸 세공사)가 독립해서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면서 다양성이 있는 브랜드들이 나왔고 그 때문에 일본과 홍콩을 오가면서 만나보는 독특한 제품들이 많아졌습니다.
기존에는
이러이러한 구성을 가진 액세서리가 있냐?
만들어주겠다.
얼마나 걸리냐?
기분에 따라서(뭣이라고?) 1~2개월. 3개월일 수도 있다.
라는 식이었는데 90년대 말, 2000년대에 들어서는 확실하게 패턴, 정형화된 구성품을 만들어내는 브랜드 업체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레너드의 L ONE은 말 그대로 재수가 좋을 때 구입이 가능했습니다.
실키 쉘 링을 2개 구입하는데 걸린 시간이 약 9개월이었습니다. 훌쩍.
참고로 전 손가락이 좀 굵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일정 사이에 틈을 내어 잠깐 들렸는데, 반지는 못 구입하고 펜던트를 사 오게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비슷한 디자인을 한 다른 제품, 실버 체인이 달린 월렛 같은 거 말입니다.
이래저래 클럽이나 (또는 당시 유행했던 락카페)를 돌아다니면서 찰랑거리는 실버 액세서리를 하고 다녔던 추억은 좀 그렇기도 합니다. 친구랑 술 마실 때도 일부러 그 액세서리가 보이게(조명에 반사되어 확실하게 반짝거릴 수 있게) 폼을 잡았던 추억도 재미있는 쪽팔림이라고 하겠지요.
남자 주제에 이런저런 것을 하고 다닌다고 욕을 먹기도 했지만, 저는 회사생활을 하면서도 당연하게 착용하고 다녔습니다. - 이게 곱지 못한 시선을 받을 때도 종종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금장 롤렉스 시계를 차고 다니는 것은 뭐라고 안 하면서 왜 실버 액세서리는 뭐라고 하냐?라는 식으로 생각을 했지만 디자인이 좀 그렇다는 것도 몇 개 있었습니다.
어찌 되었든 일본은 참 많은 무크지가 나옵니다.
이쪽도 은근히 이런저런 제품들을 소개하고 있어서 많이 쏠렸더랍니다.
게다가 나오는 잡지사도 다 달라요. 대충 어림잡아도 6군데 회사에서 8종이나 되는 책자들이 나와서 골라보기도 어려울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게다가 근래에는 그 어려운 금속 + 보석 제품도 나옵니다. 중국은 당연하다는 듯이 옥과 실버를 더한 예술품 같은 것이 나오는데 멋진 것을 둘째치고 가격대가 장난이 아니라서 구경하는 것도 황송하다고 말을 합니다.
몇몇 보석들은 산지에 따라서 가격과 품질 차이가 많이 나고, 인조보석이 많아지면서 진품에 대한 가치관을 따로 알아보고 다닐 정도로 심미안을 추구하기도 어렵습니다.
물론 단점도 있다고 하겠지요.
실버 액세서리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면 우선 스마트폰 쓰기 불편해집니다.
그 때문에 스마트폰을 안 쓰는 것은 아니지만요.
게다가 운동할 때는 좀 그렇습니다.
기초 숨쉬기 운동에는 별 지장이 없겠지만 육체노동이나 자전거로 데굴 거릴 때 은근히 반지들이 걸리적거리게 되어서 훌쩍하게 됩니다.
앞서 말한 실키 쉘링은 무척 두꺼운 편이어서(가뜩이나 손가락도 굵어서 더 그렇습니다) 자전거를 탈 때는 절대로 빼야 합니다. 안 그러면 브레이크를 잡는데 굉장히 걸리적거리게 됩니다. 가뜩이나 로드 타입을 타게 되면 더욱 그렇지요.
개폼에 은색을 선호하는 것 때문에 선글라스를 은테로 만들어보기도 했습니다만 무척~~~ 무거워서 결국 안 쓰게 되었습니다. 땀에도 약하고요. 매번 손질해서 사용하기도 뭐해서 결국은 방구석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탄생석이라는 녀석은 제가 마음에 드는 애가 아니라서 별로였고 금색도 예쁜 금색을 좋아합니다. 순수한 금장은 뭐라고 할까 너무 티가 나서 좋아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담배를 피웠을 때 사용하던 담뱃갑이나 라이터, 재떨이, 휴대용 재떨이까지 전부 은색으로 맞추었더랍니다.
나름 튀기는 합니다.
음악 하는 것도 아니요. (데스 메탈 하시는 분들 중 폼생폼사로 이쪽을 권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전 상관도 없는데 그런 것을 하고 다닐 때가 있었습니다)
디자인의 일관성도 없고(그냥 그때 그때 마음에 드는 디자인으로 결정하다 보니),
정장을 할 때는 가끔 어울리는 것을 찾지만 워낙 귀찮아해서 막 입고 다니는데 여기에 이런 것들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니 굉장히 이상한 건달처럼 보였다고 하겠습니다.
지금은, 그냥 보고만 다닙니다.
구입을 해도 따로 하고 다닐 것도 아니다 보니 그냥 디자인과 신제품, 그리고 새로운 브랜드가 나오면 어떤 취향인가 정도만 보고 있게 됩니다.
그래도 여전히 은색을 좋아합니다.
금색이 함께인 것도 좋지만 저는 은색을 좋아한다고 뻔하게 말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