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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꼬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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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칩코 May 03. 2019

까치발 서는 버릇

2019년 4월 21일 아침.


요리할 때 까치발을 서는 버릇이 있다. 이유는 좀 이상한데, 더 잘 내려다보기 위해서다. 좀 곤두선 탓도 있다. 요리의 순간들을 통제해야 기분이 좋다. 채소를 써는 동안, 미리 올려둔 국이 끓어 넘치는 걸 끔찍하게 싫어한다. 모든 순서들이 머릿속에 착착 적혀진 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인가, 혼자 요리하는 걸 좋아한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고, 아무도 날 쳐다보지 않는 공간에서, 조용하고 분주하게 해나가는 요리. 채소를 칼로 잘라서 불 위에 올린다. 열이 오르는 동안, 빠르게 도마와 칼을 씻는다. 바로바로 정리를 해야, 조리대가 깨끗하다. 과정을 차근차근 열고 닫으면서, 모든 걸 잘 파악하고 있는 기분. 접시에 채소를 이렇게 올려도 보고, 저렇게 올려도 보고, 마음껏 실수하면서 원하는 모양대로 담는다. ‘그냥 대충 먹자’라고 누가 보채지 않을까 조마조마하지 않아도 되는 혼자만의 요리. 그런데 꼬리와 요리하는 건 꼭 내가 둘인 기분이다. 도마와 칼을 씻으려고 보면 이미 꼬리가 씻고 있다. 양념통을 제자리에 넣는 동안에는 꼬리가 간을 봐주고 있다. 온도가 차오른 기름이 지글지글 소리를 내고, 튀겨진 반죽 냄새가 솔솔 퍼진다. 내가 무 튀김 반죽을 만드는 동안, 꼬리는 연근 튀김을 뒤집는다. 미끄덩거리는 부엌 바닥 위, 수선스러운 내 발은 어느새 뒤꿈치를 들고 있다. 몰두와 긴장의 증거. “칩코는 요리할 때 까치발을 들더라”. 꼬리는 까르르 웃는다. 나는 머쓱해하며 까치발을 내린다. 맞아, 꼬리랑 요리를 할 때는 들 필요가 없는데. 내가 모든 걸 통제할 필요가 없는 요리 시간. 꼬리가 내가 놓친 순간들을 꽉- 채워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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