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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꼬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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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칩코 May 03. 2019

완벽한 피크닉

2019년 4월 22일 저녁.


목구멍이 따가운 사막의 모래알을 삼킨 것 같다. 기침과 콧물이 번갈아 쉴 새가 없다. 목소리도 가엾게 됐다. 또 열이 날까봐 두꺼운 외투를 두 겹 입었는데, 안타깝게도 오늘은 28도다. 무거운 옷을 들고만 다니다가 땀을 뻘뻘 흘리며 집에 왔다. 서늘한 실내에서 한 김 식고 나니, 햇살이 너무 아깝다. 얇은 옷으로 갈아입고, 꼬리와 피크닉을 갔다. 선선한 바람이 후덥지근한 아스팔트를 달래는 늦은 오후. 몸에 가볍게 감기는 니트의 촉감. 살구색과 연보라색 보자기에 담긴 도시락. 살랑살랑 흔들리는 꼬리와 잡은 손. 기분이 좋아 보이는 꼬리. 발걸음이 너무 가벼워서 통통 뛰어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세상에, 모든 게 완벽하다. 공원에 도착했을 때는, 어느덧 푸르스름한 저녁 하늘이 허리께로 내려앉아 있다. 강바람이 한낮의 열기를 데려간 습한 잔디밭에 자리 잡는다. 마냥 신나게 오느라 카레 덮밥은 엉망이 돼 있었다. 빠르게 어둑해지는 탓에 무슨 색인지 구분이 안 가는 케이크, 금세 겉옷을 껴입게 만드는 저녁 공기. 심지어 아무 냄새도 못 맡는 내 코. 그래도 여전히 완벽하다. 꼬리랑 있으면 정말 아무것도 개의치 않구나. 열이 또 나려는지 꼬리와 안으면 맞닿는 명치 께가 유난히 후끈, 따뜻했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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