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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꼬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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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칩코 May 04. 2019

직조의 연금술

2019년 5월 2일 저녁.


따뜻한 물을 등으로 와르르 끼얹는 것 같은 해가 내리쬔다. 차양이 있는 테라스로 올라가니, 태양의 사각지대는 한층 서늘한 공기가 있다. 부드러운 바람이 솔솔 불며 미지근한 열기를 옮겨다 주는 오후. 오늘은 직조를 하는 날이다. 테라스에 돗자리를 펼치고, 실이 잔뜩 담긴 바구니를 옆에 두고 앉는다. 직조 틀을 무릎에 눕힌다. 세로로 팽팽하게 실을 세워둔다. 규칙적인 간격으로 늘어선 세로 실들을 이리저리 오가며 가로 실을 끼워 넣는다. 한 번은 세로 실의 뒤로 끼우고, 한 번은 세로 실의 앞으로 끼우고. 세로 실들을 뚫어지게 보다 보면 어질어질, 실이 수 갈래로 갈라진다. 눈을 한번 꿈뻑 감았다 뜨고 초점을 다시 맞춘다. 빗으로 세로 실의 결대로 빗어 내리고, 가로 실들을 차곡차곡 쌓는다. 세로 실이 조여지지 않도록 가로 실은 적당히 힘을 빼두어야 한다. 견고한 세로 실들을 느슨하게 감싸는 가로 실들. 목이 뻐근한 것을 알아 쯤엔, 어느새 선들은 말랑말랑한 면이 된다. 요새 마음이 참 복잡했는데, 이상할 만큼 차분해진다. 이 단순한 작업을 한없이 반복하다 보면, 부연 부유물들이 가라앉고 그 여백으로 떠오른 선명한 고민을 내뱉을 여유가 생긴다. 옆 사람에게 괜히 조잘조잘 털어놓고 싶게 만드는 직조의 연금술. 저녁에 집에서도 남은 작업을 마무리한다.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면서, 눈은 꿈뻑 감았다 뜨면서, 꼬리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고양이가 실을 엉클며 방해한다. 실은 한 줄 한 줄 더디게 차오른다. 꼬리는 단어를 고르며 가만가만 대답해준다. ‘나도 그런 고민을 해’. 꼬리의 대답은 열쇠를 주는 게 아니라, 같은 열쇠 구멍이 있음을 고백하는 것. 팽팽한 세로 실을 흐늘거리는 가로 실로 켜켜이 감싸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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