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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꼬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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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칩코 May 03. 2019

비 오는 날

2019년 4월 25일 하루.

비가 내린다. 감기가 지독하더니 결국 꼬리한테 옮겨버렸다. 아침부터 둘 다 콧물을 줄줄 흘리기 바쁘다. 오늘은 정말 꼼짝도 하기 싫은 날이다. 꼬리는 공방에, 나는 회사에 연락을 하고, 저녁 회의도 취소해버렸다. 창밖으로 조곤조곤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눅눅한 이불 안으로 쏙 들어가 눕는다. 한바탕 늦잠을 늘어지게 자고 일어난다. 마주 보는 눈이 반짝. 분명 아픈 날인데, 콩닥콩닥 너무 신이 난다. 함께 산 이후 온종일을 꼬리와 보낸 적이 없었다. 오늘 뭐 하지. 아주 게으르고 알찬 하루를 보내야겠는데. 뒷머리가 까치집이 된 꼬리와 아무 옷이나 걸쳐 입고 도서관으로 간다. 약 기운에 푹 자고 일어난 몸도 가볍고, 적당히 찬 공기와 봄비가 상쾌하다. 세상이 유리라면 뽀득뽀득 소리가 날 것 같다. 고요하게 젖은 골목, 담장마다 라일락 향기가 코 끝에 매달리는 도서관 가는 길. 소설책을 두 권 안고 돌아온다. 따뜻한 주황색 조명을 켜고, 가사가 없는 음악을 튼다. 나란히 침대에 앉아 소설을 읽으니 고양이가 곁에  웅크려 잠을 잔다. 흐린 날, 어둠과 빗소리가 부드럽게 가득 찬 방에 폭 안겨 책을 읽을 땐, 꼭 동굴 속에 있는 것 같다. 엉덩이가 뻐근한 것도 모르게 책에 빠져든다. '뻐꾹' 알람소리처럼 꼬리가 '아!' 소리를 낸다. 꼬리는 표정을 못 숨기는 아이처럼 책을 읽는다. 화가 나거나, 기쁘거나, 슬프거나 하면 저도 모르게 탄성이 입밖으로 튀어나간다. '아!' 소리에 책에서 깬다. 나는 마침 울고 있었는데, 꼬리는 같이 울었다. 나는 울면서 줄거리를 말해준다. 울음을 그치고, 이젠 꼬리의 줄거리를 들으려 눈을 맞춘다. 내 작은 동굴에 침묵을 깨고 들어온 새 한 마리를 마주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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