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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꼬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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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칩코 Jun 17. 2019

잠이 오지 않는 새벽

2019년 6월 17일 새벽.


꼬리가 일본으로 일주일 간 연수를 갔다. 처음으로 꽤 오래 떨어져 있는 시간이었다. 꼬리가 떠나기 하루 전까지도 별 실감이 없었다. 마침 할 일들이 많았고, 꼬리가 없는 사이 다 해치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은 좀체 속도가 나지 않았다. 고양이는 자꾸 울었다. 과일을 잔뜩 먹어도 허기가 사라지지 않았고, 잠이 엄청나게 늘었다. 반갑던 친구들의 연락이 짜증나기 시작했다. 나는 두려웠다. 할 일이 많은데, 누군가 자꾸 날 방해할 것 같았다. 아무도 날 못 찾는 곳으로 꽁꽁 숨고 싶었다. 억지로 사람을 만나고 오면 상대가 꼬리가 아니란 사실이 날 더 피곤하게 했다. 꼬리가 떠난 지 하루 만에 난 좀 이상해져 있었다. 소리 내서 크게 울고 싶었다. 타지에서 혼자 산 적이 있었다. 그때의 기억은 대부분 어두웠다. 어떤 관계를 가져도 공허했고, 나 스스로를 고립시키거나 망치곤 했다. 아침마다 할 일 더미를 만들어두고, 하루 동안 바쁘게 일들을 처리해 갔다. 일이 제대로 처리가 안 되면 괴성을 지르기도 하고, 폭식으로 풀기도 했다. 속이 메스꺼워지고 나면 집안일이나 할 일 더미를 내팽겨 치고 낮잠을 자버렸다. 저녁에 눈을 뜨면, 원하지 않는 연락들이 와 있었다. 여전히 쌓여있는 할 일들과 집안일, 엉망진창인 침대에 둘러싸여서, 귀찮은 연락들에 답장을 어떻게 하면 될지 고민했다. 그런 압박감 속에서 또 잠을 자고 나면, 꿈에서 할 일을 하거나 답장을 한 것을 진짜 한 걸로 착각해버리곤 했다. 누구도 날 괴롭히지 못하도록 방문이 잠긴 것을 여러 번 확인하던 날들. 꼬리가 없는 일주일이 지나갔다. 나는 정확히 저 시기로 돌아가 있었다. 눈물이 자주 날 때마다, 꼬리가 많이 보고 싶은가 보다, 생각했지만 영 이상했다. 이렇게 한 순간에 엉망이 되다니. 부끄럽고 황당했다. 일주일은 정말 끔찍했다. 아직도 이유를 잘 모르겠다. 잠이 많이 늘었었는데, 일주일의 마지막인 오늘, 새벽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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