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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꼬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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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칩코 Jun 20. 2019

비상대피소

꼬리는 걱정이 늘었다. 내가 조금만 먼 곳으로 갈 일이 생기면, 가다가 사고라도 날까 괜히 걱정하기도 하고, 폰이 고장 나 연락이 안됐을 때는, 주위 친구들에게 몽땅 연락을 해서 단톡방을 요란하게 만든 적도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꼬리에게 줄 선물이 있는 날엔, 가는 길에 뿅 사라져 버릴까봐 여러 번 열어보기도 하고, 밥을 지을 땐 꼬리가 더 먹을까 싶어서 늘 남게 지어버린다. 내 새로운 가족, 고양이에 대한 걱정도 하기 시작했다. 고양이가 갑자기 설사를 했다. 식욕이 없는 것도 아니고, 평소보다 시무룩한 것도 아닌데. 그러는 와중에 본가에 가느라 집을 비웠다. 난 하루 종일 안절부절 했다. 다음 날 아침 첫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가까워져 갈수록 심장이 쿵쾅거렸다. 이곳저곳에 설사를 한 뒤 배가 홀쭉해져서 신음하고 있거나, 바닥에 축 늘어져서 식어 있으면 어쩌지. 별 상상에 상상을 거듭할수록 머리로 피가 홧홧 솟는 기분이었다. 집으로 달려가니 고양이가 바구니 안에 웅크려 있었다. 야옹-하고 잠이 덜 깬 눈으로 인사했다. 이마에 입을 가져다 대니, 뜨끈한 체온과 평소보다 진한 털 냄새가 올라왔다. 화장실엔 설사가 잔뜩 쌓여 있고, 뒷발과 항문에 묽은 변이 묻은 채였다. 화장실을 비우고, 털도 닦아주었다. 가슴이 간질간질하게 아팠다. 다행히 잠이 깨자마자 고양이는 우다다 뛰어다녔다. 걱정하는 이가 는다는 것은 뭘까. 걱정은 행복의 비용. 언젠가 꼬리와 나는 재난 시에 경북 칠곡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었다. 아무래도 고양이가 찾아올 수 있는 곳으로 다시 정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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