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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꼬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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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칩코 Jun 26. 2019

암벽산

2019년 6월 23일 낮.


멀리서 보면 잘 모른다. 북한산은 희끗희끗 맨살이 드러난 암벽산이다. 산봉우리에 오르려고 보니, 멀리서는 장식으로만 보이던 암벽이 아주 난코스다. 잘 닦아놓은 길도 있는데, 난데없이 박힌 암벽은 어쩔 수가 없던 모양이다. 도무지 길이 아닌 것 같은 암벽은 네발로 기어가야 한다. 몸을 가까이하면, 태양이 달군 거대한 바위의 체온이 느껴진다. 바위에 찰싹 붙으니, 태양이 내 등에도 입김을 퍼붓는다. 뜨거운 땀이 등에 밴다. 두 손으로 암벽을 잡고, 모난 부분을 신중히 딛는다. 두 눈은 다음 걸음이 밟을 곳을 빠르게 찾는다. 네발로 걷는 건 꽤 재밌다. 바위를 능숙하게 미끄러지는 곤충이 된 것 같다. 신이 나서 원숭이처럼 껑충껑충 뛰고 싶기도 하다. 암벽의 스릴을 지나고 나면, 긴장과 함께 다리에 힘이 풀린다. 정상에 다가갈쯤엔 무릎의 나사가 한참은 빠진 듯한 느낌이 든다. 목이 바짝 타는 것도 아닌데, 갈증이 끝도 없다. 꼬리와 나는 별 볼 것 없는 민둥민둥한 족두리봉에 서 있다. 간간이 부는 바람을 기다리며, 아득한 산 아래를 내려다본다. 우리가 있는 곳은 어디쯤일까? 가까이서 보면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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