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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꼬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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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칩코 Jul 12. 2019

우리를 사랑한 최초의 상대

2019년 7월 6일 밤.


영화에서 돼지의 출산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어미 돼지는 숨을 쌕쌕 내쉬며 옆으로 누워있었다. 새끼 10마리는 어미 품에 조르르 몸을 나란히 누웠다. 눈을 못 뜬 새끼들 어미 젖을 더듬고, 어미는 가만히 젖을 맡겼다. 지치고도 평온해 보였다. 어미는 고개를 들어 새끼들을 쳐다보지 않았다. 서로 살을 맞댄 것만으로도 그들이 안전한 걸 알 수 있었으니까. 대부분의 동물들은 어미의 사랑을 받으며 태어난다. 우리를 사랑한 최초의 상대. 꼬리를 사랑한 최초의 사람들을 뵙고 나면, 꼬리의 수많은 정체성 중에 ‘누군가의 딸’이라는 것이 새삼 돋보인다. 그들에게 인정과 사랑을 갈구하는 딸, 수없이 요구하고도 또 용서받는 딸, 자신의 안녕만으로도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딸. 그러고 나면 꼬리가 마냥 어린 짐승으로 느껴진다. 그들이 꼬리를 사랑하는 방식으로 나도 꼬리를 사랑하게 된다. 잠이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안아주고, 눈두덩이에 꾸욱 입 맞춰주고 싶다. 하루가 고되진 않았는지, 오늘은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해한다. 꼬리가 밥 먹는 걸 지켜볼 때마다, 나는 꼭 우리 엄마 아빠처럼 말하고 있다. 어미를 흉내 내는 서툰 동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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