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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꼬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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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칩코 Jul 17. 2019

눈빛

2019년 7월 16일 저녁.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게 되면 어떨까. 장마철의 비 냄새, 머리카락의 무게, 팬티 고무줄의 탄성. 나는 꼬리의 얼마나 많은 부분을 못보고 있을까. 꼬리의 숨, 서운함, 배고픔, 말씨, 배려심. 어느 날 꼬리는 나를 오래 바라봤다. 예뻐서 그냥 보는 거라고 했다. 나는 꼬리의 안보이는 것들을 상상한다. 꼬리가 나를 생각한다. 꼬리의 눈이 나를 향한다. 시신경이 나를 담아서 뇌로 정보를 보낸다. 뉴런들은 꼬리의 뇌에 저장되어있던 나에 대한 감정들을 탐색한다. 그 감정들은 꼬리의 눈빛으로 출력된다. 나는 꼬리가 신호등을 바라볼 때와 나를 바라볼 때의 눈빛이 다르다는 것을 안다. 공기 중으로 연기가 퍼지듯, 나에 대한 꼬리의 생각이나 감정은 눈빛으로 전달된다. 그 눈빛은 분명 따뜻하고 찬란하지만 실은 무형이다. 보이는 건 꼬리의 눈일 뿐이다. 눈빛으로 사람들은 서로를 할퀴기도 하고 끌어안기도 하는데, 그건 사실 실체가 없다. 만질 수도 없고, 향도 없고, 색도 없는 것들은 마음으로 느껴야한다. 마음으로 보면 비로소 보인다. 꼬리의 눈에서 내 눈으로 풀벌레처럼 날아오는 무수한 것들. 산란된 햇빛으로 등이 반질반질 빛나는 풀벌레 같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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