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으면 질경이를 따라가>
태양이 너무 가까워서 놀랐다. 이마 바로 위에 붙어 나를 따라다녀서 눈이 다 부셨다. 태양뿐 아니라, 하늘 전체가 한층 내려와 더 크고 낮게 느껴졌다. 하늘색 거대한 풍선이 부풀어서 마을의 지붕을 찌푸린 광경. 그곳의 건물들이 모두 낮아서 그랬다. 한국처럼 하늘을 가리는 높은 건물이 없으니, 하늘이 팽창해 보이면서도 더 땅에 가까워 보였던 모양이다. 비현실적이었다. 영화 세트장처럼도 느껴졌다. 널찍한 거리에 사람은 한산하고, 태양은 내 이마에 대롱거리고, 파스텔톤 건물들은 젤리 같았다. 왜 파스텔톤이지? 적색 벽돌집이나 초록색 방수페인트 옥상이나 회색 시멘트벽은 왜 없지? 이런 아기자기함은 미디어 속의 환상인 줄 알았는데. 제길. 프랑스 놈들 실제로 이렇게 귀여운 곳에서 살고 있었다.
내가 머문 곳은 남부에 위치한 보르도란 도시였다. 와인과 와인의 부산물로 만든 카넬레가 유명한 곳이다. 보르도는 프랑스에서는 다섯 손가락에 꼽을 만큼 큰 도시라는데, 내가 볼 땐 인천보다도 작았다. 센터 쪽만 꽤 비싼 쇼핑거리가 몰렸고, 그 주변은 다 낮은 주택가였다. 더 멀리 나가면 포도밭만 주야장천 나왔다. 센터라고 해도 내 눈엔 도심지가 아니었다. 두 블록만 가면 또 공원이 보일 만큼, 도시 곳곳에 넓고 작은 공원이 많았다. 도시 가운데엔 큰 강이 흘렀는데, 강변에 펼쳐진 잔디밭은 내가 어학원을 마치고 제일 자주 가는 공간이 되었다. 그곳에 앉아 강바람을 맞으며 낮잠을 자고, 숙제도 했다. 트램을 타고 갈 수 있는 거리엔 모래사장에 둘러싸인 커다란 호수가 있었다. 퇴근길에 호수에 들러 수영하는 직장인들, 주말이면 모래사장 옆 숲에 텐트를 치고 노는 가족들도 보였다. 집집이 뒤꼍에 있는 정원도! 이건 도시라고 볼 수 없었다. 녹색이 너무 많잖아.
출퇴근이나 통학 시간대에도 트램은 열악하지 않았다. 사람이 많을 때는 있었으나, 한국 지하철처럼 죽기도 할 만큼은 아니었다. 한국 지하철과는 달리, 트램은 문을 승객이 열 수도 있어서 위험이 덜했다. 누군가 멀리서 뛰어오면 엘리베이터를 잡아주듯이, 승객들이 트램 문을 잡아주었다. 그럴 적마다 훈훈한 인사와 웃음이 오갔다. 버스에서도 꼭 운전노동자에게 승차와 하차 때 모두 인사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삑 승차입니다" 음성보다는 "봉쥬르"가 다정하긴 했다. 이런 작은 장치들은 대중교통의 풍경을 부드럽게 만들었다. 트램과 버스 모두 개가 케이지 없이 승차할 수 있고, 휠체어도 용이했다. 트램은 지하로 달리지 않아 창밖의 풍경과 햇살을 즐길 수 있었다. 차도뿐 아니라 인도도 면적이 넓었고, 교통체증이나 과속차량도 적었다. 그래서인지 자전거, 킥보드, 스케이트보드 등 여러 모양새로 길을 오갈 수 있었다.
보르도도 모든 곳이 천국은 아니었다. 내가 홈스테이하던 집의 마담은 유기농만 먹는 새침데기 백인 할머니였는데, 내가 시장에 가보고 싶다니까 “나라면 그곳에 안 가겠어”라고 했다. 시장이 어떤 곳이길래! 궁금하던 차에 어학원에서 사귄 중국인 친구가 시장 근처에서 산다고 했다. 그 친구는 어제 자기 집에 도둑이 들었다며(그 동네는 도둑이 많다고 했다.) 무섭다고 하루만 같이 자달라고 나를 초대했다. 뒤꼍에 장미정원이 있는 새침데기네서 출발해서, 그 친구네 근처 정류장에서 버스를 내리는 순간 '뉴월드'가 펼쳐졌다.
갑자기 백인이 한 명도 없고, 모두 아랍인이나 흑인이거나 아시안이었다. 보도는 더러웠고 인파가 혼잡해서 이리저리 어깨가 치였다. 프랑스어가 아닌 간판이 많아졌고, 녹지는 전혀 없었으며, 온갖 생선비린내가 났다. 양아치같이 머리를 희한하게 깎은 놈들이 지나가다 침을 뱉듯이 나에게 인종차별 욕이나 성희롱했다. 오줌을 지릴 뻔한 걸 참고 친구네 집에 도착했다. 친구네 집은 볕이 잘 들지 않고 옆방의 소음은 잘 드는 원룸이었다. 정원은 당연히 없었다. 내가 알던 도시의 모습이 그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