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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칩코 Aug 14. 2022

내 코가 석자여도!

<길을 잃으면 질경이를 따라가>




행운의 임시거처 기간이 끝나고 본격 집을 구했다. 집 구하기가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이후 지리산에서 머문 동안 집 문제는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도시보다 시골에서 집 구하기 더 어려운 이유가 있다. 시골은 정말 많은 것이 인맥으로 해결된다. 일자리도, 빈집 소식도 아는 사람 입을 통해 찾아온다. 아는 사람 입을 통하지 않으면, 집을 구해도 더 비싼 임대료를 주게 되거나, 좋은 정보는 이미 다 팔린 후에 남은 정보만 흘러오기 마련이다. 도시에서는 그냥 집 구하는 애플리케이션으로 해결인데, 시골은 아는 사람에게 괜히 가서 말 한마디라도 섞어야 해결이 된다.


나는 인맥에 약했다. 사람과 만남을 피곤해하고, 특히 새로운 사람과의 사귐에는 더욱 재능이 없었다. 들레네 중에는 길을 가다 마주친 사람과도 5분 안에 친구가 되는 유형이 있다. 들레네 살 적에 우리가 이웃들에게 음식을 나눔 받거나, 일자리 소식을 알 수 있던 것은 이 친구들의 덕이 컸다. 그냥 말만 잘한다고 안면이 트지 않는다. 이 친구들은 그냥 시간을 내서도 이웃을 찾아가 도와드릴 게 없는지 여쭤보기도 하고, 말동무가 되어드리곤 했다. 이 친구들과 떨어져서 혼자 사는 지금, 나는 이웃과 길가에서 나누는 인사 외엔 다른 소통은 없다. 심지어 물건을 빌릴 때도 옆집에선 안 빌린다. 친해지면 괜히 어색한 대화를 이어야 할까 봐 미리 사린다.


시골에서 아는 이웃들이 늘어남은 정보와 평판이 늘어남을 뜻했다. 나는 아는 동네 이웃은 없지만, 그래도 환경운동을 하면서 알게 된 분들은 꽤 되었다. 집을 구하거나 일자리를 찾을 때 이런 분들에게 소문을 내면 여기저기서 정보를 알려주셨다. 지금 내가 하는 활동이나 사는 집은 모두 이렇게 구해졌다. 도시 친구 중에 시골에서 살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종종 내게 어떻게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서 집도 일도 구해서 사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시골에 무슨 게시판이라도 있어서 거길 수시로 드나들면 정보가 나오는 체계도 아니지 않은가. 결국 나는 '내 친구들이 시골에 온다면 내가 도와줘야지', 하는 생각을 한다. 시골의 지독한 인맥 양상을 보면 '참 나랑 안 맞아' 싶다가도, 서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게 또 시골 사는 재미기도 하다.


시골에서 나는 잘 알지도 못하는 분들의 도움을 셀 수 없이 받았다. 도움을 받는 건 기쁘지만, 한편으로 부담도 크다. 어떤 선물이라도 사드려야 할지, 뭐라고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할지, 참 고민이다. 그런데 그건 정말로 고마운 일이었다. 들레네에게 특히나 돈도 후원해주시고 쌀도 여러 번 보내주시던 D가 계신다. 그분은 우리가 인드라망 공동체에서 쫓겨날 때도 우리 입장을 들어주시고 변론도 해주셨다. D는 내가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지...'라고 말하면, '저에게 보답하지 말고, 도움이 필요한 다른 분들에게 돌려주세요'라고 대답하셨다. 그리고 이어서 '제가 처음 귀촌했을 때 저를 도와주시던 어른께서 딱 이런 말씀을 제게 해주셨어요'라고 덧붙이셨다.


D를 도와주셨다던 그 어른은 들레네 친구들이 즐겨 가던 한 식당 사장님이셨다. 그 식당은 인심이 얼마나 후한지! 늘 손님이 많아 바쁜 와중에도 친절함을 잊지 않으셨고, 우리가 채식하는 걸 아시고는 늘 채식용으로 국을 새로 끓여주셨다. 푸짐한 반찬은 말할 것도 없고 맛도 끝내준다. 우리가 집을 구한다는 사정을 아시고는 빈집 정보를 구해다 주셨다. 이 사장님이 그 명대사의 주인공이라니. 놀라운 것도 없으면서도 새삼 고개를 절로 끄덕였다. 아무렴, 인품이 어딜 가나. 나도 사장님과 D처럼 살 수 있을까. '내 코가 석 자인데!'라고 생각도 들지만, 그건 사실 핑계일 뿐이다. 여유가 있어서 도와주는 사람도 있겠지만, 여유란 절로 찾아오지 않는다. 내가 가진 재화든 시간이든 무언가를 남과 나누는 순간에 틈을 비집고 여유가 생기는 법이다. 그래서 시골 생활이 여유롭나 싶다. 만날 일도, 나눌 일도 자주 생겨버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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