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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칩코 Aug 02. 2022

제가 도와드려도 될까요, 어르신?

<길을 잃으면 질경이를 따라가>



나는 친한 노인이 없다. 친할머니나 외할머니와도 친해질 기회가 없었다. 살면서 존경하는 노인을 만난 적도 없다. 나는 노인에 대한 편견과 무지가 가득한 사람이었다. 내 얕은 경험상 노인들은 종잡을 수 없이 대화를 시작하고, 제멋대로 대화를 종결했다. 간혹 대화가 즐겁다 싶다가도, 마지막엔 꼭 결혼과 직장과 아이 얘기로 마무리가 되었다. 시골에서 만난 노인들도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당신네 마당도 아니고 남의 마당 풀이 자란 것까지 사사건건 간섭했고, 당신들이 뿌리는 제초제가 바람에 우리 집 날아오는 건 생각도 안 하면서 우리 집 풀씨가 당신네로 날아가는 건 용서를 못 하셨다.


산내 사는 내 또래 친구들은 분명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지만, 나와 조금 달랐다. 나보다 훨씬 대처가 의연하고 노련하달까. 노인이 대뜸 반말을 걸어도 상냥하게 대답하고, 이가 없는 노인들의 웅얼거리는 발음이나 억센 사투리를 척척 알아들었다. 부탁하지도 않았는데도 번쩍 짐을 들어다 주고, 의자가 있으면 재깍 일어나 자리를 양보했다. 노인들이 도시에 보낸 자기 자식 얘기나 전쟁 시절 얘기를 갑자기 대하드라마처럼 시작해도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들어주다.


사실 나는 ‘언니네 텃밭’의 여성 농민들과 함께 일하면서부터 그들의 지혜가 예사롭지 않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길거리에 난 풀이름을 척척 외고, 배가 아플 때나 생리통이 심할 때는 어떤 풀을 먹어야 하는지 알았다. 지네에 물리면 침을 놔줄 수 있고, 밭에 진딧물이 심하면 어떤 액비를 주어야 하는지도 안다. 시골살이하면서 만난 내 이웃들은 대부분 이런 여성 농민들이었다. 그들은 허리와 무릎을 종일 만지작대면서도 도통 질 않았고, 그 부지런함은 그들의 정갈하고 깨끗한 앞마당과 철마다 처마에 매달린 묵나물과 씨앗들이 증명했다. 무엇보다 그들은 아무리 귀찮게 잔소리하셔도, 매번 나를 먹여 살렸다. 오며 가며 인사할 적마다 내 손에 뭘 쥐여주는 이들은 보통 노인들이었다.


나는 내 친구들을 선생님 삼아 노인들을 대하기로 했다. 그 결과 노인들을 향한 어려움을 조금은 극복했다. 종잡을 수 없던 대화 속의 희미한 기승전결이 보이기 시작했고, 결혼과 직장 걱정은 한 귀로 매끄럽게 흘려보냈다. 대부분 노인은 먼저 밝게 인사를 한마디 하면, 꼭 한마디로 응대하지 않았다. 세 마디쯤은 얹어서 대화를 이어가시곤 했다. 짐을 들어 드리거나 자리를 양보하면 또 예의 그 구구절절한 대화를 이어가셨지만 그건 결국 고맙다는 의미인 경우가 많았다. 나중엔 나도 노인들의 발음과 사투리를 점차 이해하기에 이르렀다.


이젠 노인만 보면 반사적으로 그를 도울 것이 없는지 스캔하는 지경이 되었다. 의무감이라기보단, 놀랍게도 이건 진심 어린 공감과 연민이었다. ‘아이고 저 짐을 드시면 얼마나 힘드실까’하고 절로 생각이 들고, 휠체어는 오르지도 못할 버스 계단은 왜 이리 턱이 높은지 새삼 탓하게 되었다. 언젠가는 명상센터에 봉사하러 갔는데, 연로한 노인과 함께 주방일을 하게 되었다. 주방일은 고되지 않은 게 없어서 나는 그를 졸졸 따라다니며 뭔가 도울 걸 찾았는데, 그는 좀 달랐다. 내가 ‘할머니 무 채칼로 써는 건 손목 아파요. 제가 할게요’하면, ‘왜요? 제가 할게요. 저도 봉사하러 왔으니까’라고 답하시는 게 아닌가.


대부분 도와드리면 기꺼워하셨는데 이 할머니는 최초로 도움을 거절하신 거였다! 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머쓱하게 내 할 일을 했다. 그런데 같이 일하던 다른 젊은 남자 봉사자는 또 나를 자꾸 도우려 하는 게 아닌가. ‘여자분이 들기엔 무거워요’하면서 내 일을 가로채 갔다. 나는 내 의사를 묻지도 않고 여자라는 이유로 나를 도움이 필요한 대상으로 여기는 남자를 아주 싫어했고 그걸 성차별이라고도 여겼다. 그러나 그 순간 그를 단번에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 역시도 대부분 도움을 고마워하는 여자 만나왔을 테고, 여자라면 일단 도와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었다.


그 노인 봉사자 이후로 나는 노인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보게 되었다. 이젠 짐을 들거나 자리를 양보할 때도 정중히 의사를 묻고 해드린다.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의 자식 이야기나 전쟁 이야기는 끝까지 들어드려야 할 것 같은 부담에서도 벗어났다. 이젠 내가 재밌게 맞장구칠 수 있는 때까지만 듣고 대화를 내가 종결하려고도 한다. 노인들과 친해진다는 건 노인들을 무조건 사회적 약자로만 보는 것도, 지혜의 보고로만 보는 것도 아니었다. 그가 ‘노인’이라서 갖는 특성과 동시에, ‘그’라서 갖는 특성도 함께 이해하는 것. 그를 나와 같게도 보고 다르게도 볼 수 있는 유연함이야말로 ‘친해진다’의 동의어가 아닐까.


어쨌든 어떤 타인과 친해지기란 좋다. 거동이 불편하고 이가 없는 노인 덕에 장애인들의 불편함도 새삼 깨닫는 순간이 많다. 명상센터의 성실한 노인 봉사자 덕에 나를 여자라고 냅다 도우려 들던 남자들도 더는 싫지 않아졌다. 무엇보다 노인만 보면 ‘으, 제발 아무 말도 말고 지나가세요’하던 마음이 사라졌으니 내가 편하다. 내가 수용하는 타인의 범주는, 곧 내 관용의 크기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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