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는 역시 영화 <리틀 포레스트>와는 괴리가 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진실이었다. 영화에서 김태리가 시골에 내려온 이유는 허기 때문이었다. 도시는 영 배가 고파서. 유통기한이 지난 도시락을 쓰레기통에 넣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속풀이라도 하듯이 이후 내내 밥만 먹다 끝난다. 들레네가 함께 살면서 한 명도 빠짐없이 살이 쪘다고 하지 않았던가. 혹독한 산내 겨울을 지나는 동안 우리가 송이처럼 통통한 지방을 축적할 수 있던 비책은 시골 인심이었다.
시골 인심은 다 옛말이라는 말도 들었는데, 적어도 지리산은 옛말이 틀리진 않았다. 시골은 워낙에 먹거리가 풍부하다. 길에도 감이며 밤이 굴러다니고, 상추나 깻잎 등은 혼자 먹기에 많으니 이웃들이 나누어 주시는 경우가 정말 많다. 심지어 들레네는 좀 가여웠다. 우리가 쫓겨난 곳은 결국 절인 셈이니, ‘집도 절도 없는 신세’에 일자리도 연고도 없는 설정 과다 청년들이 아닌가. 우린 반년간 쌀 10킬로도 일주일 만에 해치우는 먹성으로 살면서도, 우리 돈으로 쌀을 사본 적은 없었다. 다 주변에서 나눠주신 덕이었다.
나는 들레네가 같이 살던 그해, 동지 팥죽을 꼭 먹고 싶었는데 당시 바빠서 해 먹지 못했다. 그러나 모든 시골의 할머니들은 아무리 바빠도 팥죽은 하고야 마시는 근성을 가지셨다. 시골 살면서 동지에 팥죽을 못 먹고 지나갈 걱정은 필요가 없다. 여기저기서 나눠주신 팥죽만으로, 난 팥죽이 쉬어서 버리도록 일주일간 팥죽만 먹었다. 새해 떡국도 마찬가지요, 겨울철 곶감이나 여름날 포도도 그렇다. 그냥 길을 가다가 아는 분을 만나면, 신기하게도 그분들은 꼭 먹을 것을 들고 계시고 꼭 그걸 나누어 주셨다. 이웃집 어르신들에게 인사만 하면, 그분들도 꼭 먹을 것을 들고 계시고 우리의 손에 당신들이 쥔 것을 똑같이 쥐여주셨다.
최근에 도시에 사는 친구들이 내가 사는 곳으로 놀러 왔다. 나는 우리 동네에서 자주 가는 생태 장터에 데려갔다. 감자전을 하나 시키면 두 장을 주시고, 가지를 이천 원어치 사면 고추를 삼천 원어치 챙겨주셨다. 빵을 두 봉지 사도 두 봉지가 덤으로 왔다. 우린 가방에 다 넣지도 못할 양을 다섯 친구들이 양손 가득 들고 와야 했다. 시골 생활 삼 년간 이런 경우는 허다했다. 벌써 익숙해진 건지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빵을 우물거리며 돌아가는데, 친구가 갑자기 감동에 찬 눈으로 진지하게 말했다. 자기가 꿈을 꾸고 온 것 같다고.
ⓒ아영
시골 인심의 근원지는 자연이다. 산책만 해도 장을 보고 온다고 할 정도로 산은 우리에게 먹을 것을 계절마다 풍족하게 주었다. 이웃들이 우리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실 수 있던 이유는 당신들도 그것을 자연에 나눔 받았기 때문이었다. 자연은 우리에게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먹을 것을 내준다. 감나무가 자신이 일 년간 공들여 키운 열매이니 절이라도 하라고 시킨 적이 있던가. 자연에 많은 것을 받는 자들은 자신이 쥔 것이 오로지 자신의 것이 아님을 안다. 이건 누군가 내게 선물한 것이고, 나 역시 다른 누군가에게 선물해야 함을 배운다.
시골 인심은 아직 옛말이 아니다. 그러나 시골 인심의 근원지가 자연이고, 자연의 풍요가 옛말이 된다면 시골 인심은 정말로 옛말이 될 것이다. 그래서 자연을 향한 감사함은 감사함으로 끝날 게 아니라 책임감이 돼야 한다. 허기진 자들이 해야 하는 건, 창고에 음식을 축적하는 게 아니라 음식을 주는 손이 누구의 손인지 기억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