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으면 질경이를 따라가>
방랑이 끝난 후 정착했다. 이전에는 정착하기를 조금 망설였다. 땅 주인에게 저마다의 이유로 내쫓기던 들레를 보고 누군가 땅을 소유하는 게 미워 보였다. 나도 들레처럼 방랑해보니, 오히려 정착하고 싶어졌다. 땅을 소유하지 않으니 나도 덩달아 쫓겨나서 난감했다. 남의 땅이니 그들의 방식을 따라야 했다. 그들의 방식이 육식하거나 일회용 쓰레기를 많이 만들거나 인간과 비인간을 강하게 구분하는 방식이더라도, 부탁하는 입장이니 거절하기 어려울 때가 곤란했다.
땅을 소유하더라도 규칙을 세우기 나름이었다. '내가 땅이 생긴다면 저런 방식으로 자연을 대하지 않을 거야!' 하는 오기가 생겼달까. 또 나는 꼬리와 서울에서 살 때나 들레네 공동체에서 살 때 못 해보았던 생태적인 실험을 많이 하고 싶었다. 그간 실컷 돌아다니고 사람을 많이 만나서, 인제 그만 혼자 있고 싶기도 했다. 실로 난 방랑단 때 너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서 울기까지 했었다. 꼬리는 여전히 대학을 마저 다녔어야 하는 상황이라 나 혼자 살 집을 구했다. 방랑단 이후부터 지금까지 약 일 년이 넘었다. 집은 여러 차례 옮겼어도, 얹혀사는 경우가 아니면 대체로 혼자 살았다. 한 달에 한 번씩은 꼬리가 얼굴을 보러 온다.
혼자 살며 내가 조금 더 실천해본 생태적인 방식이 있다. 장작불 요리이다. 들레네 때는 하루에 한 끼니만 장작불로 하고 가스 불도 같이 썼는데, 혼자 살 때는 더 엄격하게 지켰다. 다 같이 식사할 때는, 어떤 친구가 너무 배고파하면 장작불 요리를 권하기가 미안했다. 혼자 있을 때도 물론 귀찮거나 너무 배가 고프면 가스 불이 그립긴 하지만, 그럴 땐 냅다 불간에다 나를 던진다. 귀찮음이나 배고픔은 그냥 지나가는 감각일 뿐이다. 보통은 느긋하게 불을 피우는 동작 속에 불만 따위는 사라진다.
장작을 줍는 솜씨도 늘어났다. 들레네 때는 뭣이 잘 타는 나무인지도 몰랐다. 마을 길을 가다 보면 이웃들이 우거진 곳을 정리할 겸 나무를 베어두시는데, 좀 큰 나무만 있으면 무조건 집에 모셔서 왔다. 나무가 전혀 마르지 않은 경우가 많아, 톱질도 고되고 불도 안 붙어 고생이었다. 경험이 쌓이고 나서야, 어떤 나무가 잘 타는지 구분해냈다. 밥 짓는 장작은 굵지 않아도 충분해서 큰 나무를 주울 필요도 없었다. 자전거를 타고 마을 한 바퀴 돌면서 땅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슬렁슬렁 주우면 일주일은 넘게 사용했다. 물론 발로만 툭툭 쳐도 부러질 정도로 잘 마른 것들만 주워오니 톱질도 필요가 없다.
불은 부싯돌을 중고로 구매해서 피웠다. 이것도 처음엔 어려워서 성냥을 겸용했는데 실력이 늘어나서 부싯돌도 곧잘 쓴다. 신문지를 깔고 부싯돌을 여러 차례 마찰을 주면 불꽃이 튀어 오르다가 불이 붙는다. 박스보다는 신문지가 잘 타고, 신문지보다도 특히나 종이호일류가 잘 탄다는 사실도 습득했다. 요즘도 난 신문지나 낙엽, 부러진 나뭇가지만 보면 보물찾기하듯이 줍는다. 이 버릇은 가끔 꼬리를 보러 도시에 갈 때도 도진다. 동네 뒷산에만 가면 탐스러운 장작들이 눈에 밟혀, 다 집에 업어가고 싶은 충동이 든다. 특히 과일 포장재 중에 포도를 싸는 흰색 미끈한 종이 포장재가 있다. 이건 종이호일 같은 재질이라 그런지 부싯돌과 궁합이 환상이다. 포도 철만 되면 난 쓰레기장을 돌아다니며 포도 포장재만 찾는다.
장작불로 밥을 하는 건 역시 시간이 오래 걸려서 하루에 두 번은 힘이 든다. 밥, 네 끼 분량을 한 번에 지어서 이틀간 먹는다(하루 두 끼를 먹는다). 그럼 불도 이틀에 한 번 피운다. 물론 여름은 제외다. 다만 여름은 생식하는 과일과 채소가 풍요로울 때라 불 피우기가 귀찮으면 샐러드로 대체한다. 다른 계절엔 밥을 해도 이틀간은 상하지 않는다. 장작불 요리는 아주 단순한 음식을 먹게 한다. 여러 반찬 요리나 튀김 요리는 번거로워서 못 한다. 채소를 한 두 개만 썰어서 쌀과 함께 넣고 채소 밥을 짓는 게 전부다. 난 한 가지 채소요리를 좋아해서 밋밋하다는 생각은 안 드는데, 손님이 가끔 오면 전쟁 식량이냐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냉장고도 사용하지 않는다. 이건 특히나 해보고 싶었는데 누군가와 살 때는 그 상대가 냉장고를 사용하면 나도 사용하는 바람에 실천하기가 어려웠다. 홀로 살며 사계절을 모두 냉장고 없이 지내보고서야, '이거 살 만하잖아!' 하는 결론을 얻었다. 겨울에는 당연히 냉장고 없이 살기가 아주 쉽다. 봄과 가을에는 조리한 음식이 하루나 이틀 정도는 버티므로 괜찮다. 여름이 문제였다. 반나절도 안 가서 음식이 상하고, 개미가 지독히 들끓었다. 개미에게 음식을 뺏기지 않으려면 밀폐 반찬통도 부족하다. 반찬통에 넣고 지퍼백으로 한 겹이나 어떨 때는 두 겹 밀봉을 추가로 해둬야 개미를 이길 수 있었다!
불편해도 냉장고 없는 생활은 배움이 크다. 냉장고가 있을 때는 무신경 했지만, 이제는 음식별 보관법을 공부한다. '아 이 채소는 따뜻한 기후를 좋아해서 실온 보관해야 오히려 좋군!' 등 지식을 얻으며 그 채소와 친해진다. 내게 무슨 음식이 있는지 파악이 잘 되어서 음식을 낭비하지 않는다. 또 음식에 더 상냥해진다. 냉장고에는 그냥 와르르 수납하고 끝이었는데, 이제는 하나하나 신문지에 감싸서 보관하거나 처마 밑에 매달아야 한다. 손이 많이 가고, 혹시 상하진 않았는지 자주 살펴본다. 번거로울 수도 있지만, 나는 채소를 내 집에 초대해서 정성껏 모시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내게 약이 되어주는 고마운 존재를 하나하나 잘 기억하는 기도이다.
냉장고를 안 쓰면 음식을 축적하지 않는다. 음식을 많이 사다 두면 언제 상할지도 모르지 않나. 어쩌다 먹을 것이 많이 생기면, 남과 나누는 게 일상이다. 아까워서 쟁여두고 싶어도 금세 상하겠다고 생각하면 나눔이 가장 현명하다는 걸 배운다. 인디언들은 자신이 가진 것이 하나도 남지 않을 때까지, 그래서 순수한 기쁨과 즐거움만 남을 때까지 나누었다고 한다. 사과가 내게 10개가 생기면 남에게 2~3개를 나누지 않고, 무조건 5개씩 절반을 나누라는 말씀도 있다. 이 인디언의 말씀을 내 식량 선반에 붙여두고 욕심이 생길 때마다 들여다본다. 음식을 나눌수록, 즐거움은 커지고 식단은 더욱 간소해진다.
이러니 장을 거의 보지 않는다. 산에 난 풀을 그날 뜯어오거나, 텃밭 채소 한 가지로 요리한다. (훌륭한 농부가 아니라 텃밭 채소가 풍요롭진 않다. 아마 경험이 더 쌓이면 식탁이 더 다채로워지지 않을까!) 또 내 몸의 온도와 비슷한 음식을 좋아하게 된다. 무더운 날 찬물을 마실 수 없어 곤혹이었는데, 나중엔 박하잎을 넣으니 미지근한 물이어도 충분히 개운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 제철 음식을 먹는다. 그때그때 계절이 주는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다. 미지근한 물과 제철 음식은 우리 몸에도 이롭다.
이렇게 살고부터 위장이 건강해졌다. 장작불 요리와 냉장고 없는 생활 덕에 본 예상치 못한 이득이었다. 두 방식 모두 도저히 호화롭게 밥을 먹을 수 없는 장치이다. 식사는 단순 소박한 자연식물식에 가깝다. 채소밥에 된장을 찍어 먹거나 된장국을 곁들이는 식이다. 또 주변 자연을 많이 살핀다. 불을 피워주는 나무에도 인사를 더 자주 하고, 음식을 건조해서 저장하게 도와주는 바람에도 감사를 드린다. 이들이 없다면 이런 방식의 삶이 불가능했을 테다. 역시 지구와 나는 하나라는 사실이 새삼 와닿는다. 지구에 좋은 방식은 결국 내 몸에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