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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칩코 Oct 05. 2022

그 어느 것도 당연하지 않던 봄가뭄과 여름비

<길을 잃으면 질경이를 따라가>





그날도 해가 맑았다. 비 예보는 또 틀렸다. 올봄, 가뭄이 들었다. 원래 봄은 가문다지만 올해는 유독 극심했다. 4월도 드물게 비가 오다가 5월은 한 달 내내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마당에 새들 마시라고 놓은 물그릇이 반나절 만에 말라붙도록 햇빛은 강했다. 이 마을, 저 마을… 지리산의 웬만한 계곡과 저수지가 말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섬진강의 수위도 위험할 정도로 낮아졌다고. 물론 내가 살아오면서 이 정도 봄 가뭄은 한두 차례 더 있었겠으나, 이리 염려하기는 처음이었다. 이전까지는 도시에 살았으니까.


유별난 가뭄에도 도시에는 전혀 타격이 없었다. 모 유명한 가수는 하루 300톤의 물을 관중에게 쏟아붓는 ‘흠뻑 쇼’를 열어 논란이 됐다. 계곡과 저수지 바로 옆에 살며 농사짓는 사람들은 가뭄을 모를 수 없다. 곧 논물 대는 철인데 물이 모자랐다. 벼농사가 어려워 쌀값이 폭등하면, 아마 가뭄이 든 지도 몰랐을 도시 사람들은 수입쌀을 사고 말 일이다. 당장 식수가 모자라니 농지에 물을 주지 말라는 이장님의 당부 방송이 아침마다 울려 퍼졌다. 나만 해도 텃밭 채소들의 절반이 말라 죽었다. 마을의 개울이 말라붙어 개구리와 도롱뇽이 죽어가는 걸 매일 목도해야 했다.


혼자 생태적인 삶을 실험하면서 물을 지극히 모시게 됐다. 난 오줌 조금 싸고 물을 왕창 내려야 하는 수세식 변기를 피해 귀촌한 사람이다. 물론 시골도 수세식 변기 천지지만, 아파트만 아니라면 생태 화장실을 어디서든 만들 수 있다. 오줌은 말통에 모으고 똥은 텃밭 한쪽에 모았다. 물이 전혀 들지 않는 처리 방식이다. 심지어 외출했을 때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기를 쓰고 참는다. 물이 너무 아까워서도 그렇고, 퇴비가 될 내 똥과 오줌이 아깝기 때문이다. 왜 공중화장실은 생태 화장실이 아닌지!


휴지는 쓰지 않는다. 콧물이나 눈물은 손수건으로 닦고, 음식을 흘린 건 행주로 닦는다. 화장실에서는 물 비데를 쓴다. 인도에서 처음 접한 방식인데, 한국에서는 정토회가 잘 실천한다. 병에 물을 채워서 그 물로 뒤를 닦고, 물기는 뒷물 수건을 따로 마련해서 닦는다. 휴지보다 훨씬 청결하다. 한겨울엔 물이 얼음장 같긴 해도 익숙해진다. 물병을 수시로 채우고 뒷물 수건을 세탁하는 번거로움도 있지만, 쓰레기가 나오지 않으니 편하다. 또 휴지를 만드는 과정엔 많은 양의 물과 나무, 전기나 석탄 에너지가 낭비된다. 그렇게 귀한 존재로 만든 휴지를 달랑 한번 쓰고 버려야 한다니. 물 비데를 사용하면 아주 적은 양의 물만으로도 충분하다.


또 물을 함부로 하수로 흘려보내지 않는다. 이건 방랑단 이후 생긴 자각인데, 하수는 누군가의 집으로 흘러간다. 다슬기와 두꺼비의 집으로 갈 것이다. 그들은 내게 깨끗한 물을 베푸는 고마운 존재이므로, 남의 집 앞에 더러운 물을 선물할 수는 없다. 아무리 소금 양치를 하고, 베이킹소다로 설거지하더라도, 이 하수가 마을 전체의 하수와 합쳐지면 결국 물을 더럽힌다. 사용한 물은 모두 말통에 모아 텃밭에 물로 주었다. 텃밭에도 화학 성분이 섞인 물이 아니므로 문제가 없고, 텃밭에 줄 물을 아낄 수 있어 더욱 좋다.


친구들이 간혹 우리 집에 놀러 올 때면, 내 방식을 따라 손을 씻을 때나 설거지를 한 후 하수를 받아준다. 친구들은 설거지 한 번에 물을 이렇게 많이 사용하는 줄 몰랐다며 놀라곤 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하수를 받은 후 반성하는 순간이 많다. 물을 얼마나 사용하는지, 물을 얼마나 오염시키는지 바로 눈으로 확인한다. 나 한 명 사는데도 하루에 많은 양의 물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또 가득 찬 하수 물통을 매번 마당으로 끌고 가는 일은 여간 귀찮지 않다. 이게 귀찮아서라도 물을 아주 아껴 쓴다.


지붕 끝에는 빗물이 흐르는 통로가 있다. 시골집마다 대부분 설치가 돼 있다. 그 빗물받이 통로 끝에 말통을 놓고 빗물을 모은다. 빗물은 손빨래할 때 사용한다. 설거지나 세수할 때 쓰기엔 좀 찝찝한데, 걸레나 옷을 세탁하기에는 용도가 적합하다. 이렇게 세탁한 물도 다 쓰면 텃밭에 돌려준다. 당연히 화학 세제나 비누를 사용하지 않는다. 빗물은 사실 약으로도 쓴다. 깨끗한 통에 모아서 정수하면 몸에 아주 좋은 식수가 된다고 했다. 난 지붕을 타고 내려온 물을 모아서 어쩔 수 없었지만, 깨끗한 통에 모아서 식수로도 써보고 싶다.


정수기는 집 밖에서도 사용을 지양한다. 전기정수기는 대체로 정수된 물 만큼의 똑같은 양의 물을 버린다. 오래된 정수기 모델은 거의 4분의 3을 버렸다고 하는데, 요즘은 그나마 기술이 나아져서 절반만 버린다고 한다. 내가 물을 한 컵 뽑아 마셨으면, 한 컵은 그냥 버려졌다고 보면 된다. 공장제 생수는 일회용 쓰레기 문제도 심각하지만, 지역주민의 물을 고갈시키는 문제도 심각하다. 지리산에도 물 공장이 많은데, 하나의 공장에서만 하루 4백 대의 거대한 트럭이 물을 가득 싣고 전국으로 팔려 간다. 무려 하루에 4백 대. 물 공장 인근 마을 주민은 지하수가 고갈돼 물 부족에 시달리지만, 도시 사람은 이런 사정을 모르고 ‘지리산 청정수’라는 라벨만 보고 구입한다.


나는 도시에 살 적엔 물을 끓여서 마셨다. 브리타 정수기 사용자도 많은데, 이는 일회용 필터를 매번 구매해야 해서 사용하지 않았다. 이후엔 비전화정수기를 구했다. 브리타 정수기의 필터 성분인 야자 활성탄 등을 잔뜩 넣어서 더 오래 사용하는 형태로 만든 적정기술 정수기다. 비전화정수기는 일회용 필터 교체 없이 7년 정도 사용이 거뜬하다. 단 쉽게 구할 수 없는 단점이 있다. 나는 꼬리가 비전화공방을 다녔기에 사용할 기회를 얻었다. 시골에 와서는 지하수라서 그냥 수돗물을 마실 수 있었다.


방랑단 이후 찬물 샤워가 익숙해졌다. 방랑단 때도 내내 계곡 샤워를 했다. 이후에도 계속 봄, 가을, 여름은 찬물 샤워를 한다. 겨울까지 해내면 정말로 빔 호프 씨가 되었겠지만… 아마 몇 년 후면 가능해지길 바란다. 아직은 겨울에 찬물 샤워를 하면 꼭 감기에 걸리고 만다. 그래도 사계절 내내 뜨거운 물로만 샤워하던 나에게는 아주 큰 변화다. 온수를 데울 석탄이나 전기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 이번 겨울에도 찬물 샤워가 영 어렵다면 장작불로 물을 데워서 양동이 샤워를 시도해봐야겠다. 그래도 찬물에 익숙해지고 싶다. 찬물 샤워하고 나면 몸의 혈액이 팽팽 돌아가고 열이 후끈 오른다.


이런 생활을 하다 보면 물 한 방울이 너무도 소중해진다. 물이 없으면 단 하루도 일상을 유지할 수 없다. 비가 한 방울도 안 오던 올해 5월, 나는 어쩐지 정말로 울적했다. 이대로 지구에 계속 비가 오지 않아서 영화 <매드맥스>처럼 될 것같이 두려웠다. 마을 저수지가 말라서 수돗물이 나오지 않을 때도 눈물이 다 났다. 물론 나는 읍내서 오는 수돗물을 끌어다 쓸 수 있었지만, 저수지에 말라붙었을 수많은 생물이 걱정되었다. 그 당시 우리 집 수도는 물이 실 한가락만 한 굵기로 나왔다. 곧 끊겨도 이상하지 않을 양으로 샤워하고 설거지도 했다. 그런데 읍내의 카페라도 가서 손을 씻을 때면 콸콸 쏟아지는 물이 오히려 더 무섭고 기이하게 느껴졌다.


지구에는 이미 우리 곁을 떠난 존재가 많다. 멸종된 생물종이 하도 많아 지구가 텅 비어 간다는 보고가 있지 않나. 우리가 그들을 소중히 여기지 않아서 결국 우리 곁을 떠난 게 아닐까. 물도 마찬가지이다. 물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물도 우리 곁을 계속 지켜주지 않을 것이다. 섬진강이 말라붙던 가뭄에도, 도시의 수도꼭지에서 물이 멈추는 경우는 없었다. 사람들은 물이 언제 사라지는지도 모르고 하루아침에 물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가뭄으로 우울하던 봄에, 나는 꼬리와 함께 울면서 기도했었다. 우리 눈물로 비님이 내리게 해달라고 빌었다. 비는 내내 오지 않았다. 아마 내가 흠뻑 쇼에 가는 사람을 너무 미워해서 기도 약발이 안 먹혔던 모양이다.


비가 안 온 지 딱 한 달이 넘어가던 때였던가. 집을 나서던 중 문득 뒷산을 보다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바짝 말라 죽는 내 텃밭의 작물과는 달리 뒷산의 나무는 여전히 창창했다. 저 숲의 존재들은 대체 몇 명일까. 나무가 몇이고, 그 나무에 기대어 사는 동물이 몇이고, 뿌리에 사는 곤충이 몇이고… 이런 걸 헤아리다 보니 숲이 거대한 세포 덩어리로 보였다. 그리고 그 모든 존재가, 70억 인구를 압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 세계 인간이 모두 물을 홀대해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그 압도적이고 유구한 생명들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영

"우린 수억 년을 이곳에서 살아왔어. 한 달의 가뭄은 셀 수도 없이 겪었지. 그런 것쯤으로 우릴 흔들 수 없어. 우린 모두 비를 간절히 원하고, 지구는 늘 그에 응답해왔어." 그제야 나는 비가 오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다. 지구엔 비를 소중히 여기는 생명이 훨씬 더 많다. 흠뻑 쇼에 간 사람을 조금 덜 미워하면서, 나는 비님이 내리게 해달라는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6월이 되자 바야흐로 여름비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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