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꼬리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칩코 May 18. 2023

고마워

2023년 4월


꼬리는 고맙다는 말을 잘 한다. 꼬리랑 나는 일을 분담한다. 꼬리가 개 산책하는 동안 내가 불을 피워 밥을 짓는다. 꼬리가 바닥을 비질하는 동안 내가 걸레를 빤다. 똑같이 일을 했는데도 꼬리는 내게 고맙다고 한다. 꼭 자기는 일을 안하기라도 한 것처럼. 밥 해줘서 고마워. 모종 물 줘서 고마워. 설거지 해줘서 고마워. 어쩔 때는 꼬리가 나보다 일을 더 할 때가 있다. 내가 기운이 없거나 게으름을 부리고 싶은 날이다. 그럴 땐 꼬리가 씩씩하게 내 몫까지 일하는데, 그럼 난 당연하게도 고맙다고 한다. 물론 꼬리가 쉬고 싶은 날엔 내가 그렇게 하지만. 어쨌든 꼬리는, 꼭 내가 더 궂은 일을 하거나 더 많은 일을 하지 않을 때에도 내게 고맙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꼬리를 흉내내기 시작했다. 내가 먼저 고맙다고 말해야지. 더 많이 고맙다고 말해야지. 꼬리만큼 다정해지는 법을 배워야지. 고맙다고 말해줘서 고마워.

매거진의 이전글 들기름 비빔국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