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혹은 그보다 몇달 전쯤부터 지인의 소개로 익선동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낙원상가가 어디인지도 알고 있었고, 종로가 어딘지도 아주 잘 알고 있었고,안국역이 어딘지도 잘 알고 있는 나였다. 하지만 난생 처음 들어본 ‘익선동’이라는 곳. 따라가보니, 인사동을 지나 낙원상가 쪽 아구찜 골목에서 작디 작은 어두운 길을 따라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저 후미지고 어둡고, 마냥 무섭기만 했다. 처음 가본날이 밤이라서 그랬을까, 음침하고 위험한 느낌이 들기까지 했다. 두려움속에서 둘러본 이 좁은 골목은 아주 오래된, 그리고 작은 규모의 한옥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그렇게 해서 찾아갔던 카페는 한옥을 개조한 모던하고 예술적인 감성이 돋보이는 곳이었다. 다른 여느 카페처럼 커피와 주류를 판매하고 있었음에도, 알 수 없는 편안함과 고즈넉함이 공기속에서 느껴졌다. 이 곳은 그렇게 주변에 번듯한 이웃이라고는 없이, 노인들이 대부분 거주하는 그 익선동이라는 외면 받은 곳에서 소리 없이 이 동네에 미세한 색을 더해가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 뒤로 익선동이라는 그 곳은 날로날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그 카페 뿐만이아니라, 주변에 작고 다양한 가게들이 생겨나면서 점차 생기가 찾아오고 있었다.
외면 받던 익선동의 모습 (출처:http://blog.hani.co.kr/bonbon/13418)
활기가 넘치는 요즘 익선동의 모습 (출처: http://www.travelnbike.com/news/articleView.html?idxno=18367)
1920년대 후반 서민을 위한주거단지로 개발되었던 익선동. 재개발 예정이었으나 그 계획이 중도에 무산되면서 협소한 땅에 작은 한옥들이잔뜩 들어서 있는 이 곳은 대부분의 주거자가 노인이다. 조용하게, 그리고 꾸준히 소외되어왔던 곳. 그 허름했던 좁은 골목길에 이제는 활기가 넘치고 있다. 사실 오래된 한옥마을이라는 특성상 나이가 지긋이 드신 분들이 거주하는 경우가 많아, 처음 그 카페를 다녀 오는 밤에도 골목길에서 조용히 해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이러한 곳에 가게가 생기면서 사람들을 끌여들여 행여나 터줏대감 어르신들이 불편하시지는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매 번 찾아갈 때마다 새로이 단장되는 모습을 보면서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젊은이들을 매료시킨 것, 젊은 이들의 발걸음을 익선동으로 향하게 한 것은 무엇일까?사실 한국 문화라는 것이 무엇인지와 그 안에 어떠한 가치가 있는지를 약간이나마 깨달은 덕분에 이를 알리겠다고 발 벗고나서긴 했지만, 요즘들어 한국적인 것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익선동 뿐만 아니라 안국동, 서촌, 북촌 등지에도 예전과는 달리 젊은 층들이 활보하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약간은 놀라운 사실이 숨어있다. 이 곳들을 찾는 이들의 행동 양상을 살펴보면, 입소문과 소셜 미디어, 블로그 등을 통해 알게 된 카페나 레스토랑, 술집 등 한 가지만을 알고 찾아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방문한 이들이 그 주변 지역을 탐험하면서 점차 활기를 불어넣고, 상권을 형성하는 힘이 되고 있다. 애초에 그들의 관심을 산 것은 한옥의 구조를 그대로 보존하여 그 멋을 간직하고 있는 곳들이다. 옛 한옥의 정원을 그대로 품고 있어 통유리를 통해 커피를 마시면서 평화로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들,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는 기왓장과 나무 구조물들. 기와 너머로 저무는 해를 보면서 일주일 간의시름을 잊게 해 주는 시원한 맥주 한모금. 우리가 이러한 곳에서 특별한 감성과 여유를 느끼는 이유는 아마도, 우리가 한국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새롭고 반짝거리는 건물에 생긴 새로운 커피숍이나가게들과는 다른, 무언가 익숙하고 정감이 가는, 바로 ‘우리의 것’이라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높은 건물들이 공격적으로 들어서 있는 도심한 가운데에서 그 삭막함과 소란스러움을 잠시나마 잊게 해줄 수 있는 이런 곳들이 생겨난 덕분에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들이 줄줄이 찾아온다는 것은 한국 사람으로서 그리고 한국문화를 알리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이들의 주목할 만한 또 하나의 특징은 옛정취를 간직하되 현대적으로 이를 재해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옥을 개조하여 만든 카페나 가게라고 해서 꼭 쌍화차와 떡을 팔아야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이들처럼 드립커피를 팔 수도 있고, 갓 구운 빵을 팔 수도 있다. 그렇게 중간 쯤에서 만나는 것,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화해 오는 것, 그것이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게 아닐까? 100년 전에 있음직한 분위기를 그대로 지키는게 아니라,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도 현대인들이 좋아하고 공감할 수 있게 발전시킨 것, 그것이 결국에는 전통과 현대 그리고 세대간의 소통을 가능케 해준 힘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생겨난 한옥 카페들, 재탄생된 한옥 마을들, 현대적인 전통문화가게들이 잠시 스쳐지나가는 유행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우리 나라도 다른 국가들처럼, 우리의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이를 알리고 발전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한국이라는 이름 앞에서 하나가 되고, 또 어깨가 쭉 펴지는 사람들이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다.앞으로도 이러한 고마운 움직임들, 고마운 사람들, 고마운 가게들과 고마운 발걸음들이 끊이지 않고 우리의 것들을 우리의 손으로 다시 한번 재탄생시키는 위와 같은 사례들이 무수히 생겨나길진심으로 고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