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i Project Jul 21. 2019

힙지로, 전통주.

우리 모두 진짜 술을 먹어볼 때가 되었다.


을지로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사대문 안 역사의 땅, 수많은 회사원들이 딛는 금융의 땅, 서울 물질문명의 발원지인 공장의 땅, 골목과 하나 된 노포의 땅. 요 근래 을지로를 유심히 관찰해보니 하나는 확실했다 - 을지로에선 진짜만이 살아남는다.


그래서 요즘 을지로가 힙지로(힙+을지로)라고도 불리는 것 아닌가? “힙하다”의 정의가 확실히 정해진 건 아니지만, 주류와 다르게 튀어서 특별하고 세련된 것을 보며 “힙하다”라고 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을지로는 다르게 독특한 것을 찾아온 힙스터들 천지이며, 그런 사람들에게 을지로는 실망시키지 않고 매일 낮과 밤 새로운 무언갈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너도 나도 을지로에서 “진짜”를 외치고 을지로 열풍이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조금 우려스럽기도 하다. 모두가 독특하게 시작했던 을지로의 카페와 술집들도 다 똑같아지는 거 아닐까 걱정이 들 무렵, 진짜 “진짜”를 찾았다. 이 곳이 을지로스러운 게 아니다. 마땅히 이 곳은 을지로다. 한국 술과 칵테일을 파는 모던 바, 을지로 3가의 “술다방”이다.



어서 오세요, 술다방입니다!



술다방 문을 열면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이 곳은 옛 다방을 개조해 만든 곳이다. 기존에 있었던 다방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원래 있었던 가구들을 적극 활용했다. 주황색 소파와 원목 테이블, 빨간 커튼 가림막이 뭔가 촌스럽지만 묘하게 익숙해 안정감을 주는 듯하다. 다방의 분위기에 널찍한 바 테이블, 찬장을 가득 채우는 가지각색의 전통주 바틀들과 잔들이 잔잔히 흘러나오는 재즈와 어우러져 술다방을 만든다. 익숙해서 오히려 위화감이 드는, 재밌는 공간이다.


술다방의 내부 모습. 주황색 쇼파가 인상적이다.


메뉴판도 느낌이 비슷하다. 다홍치마, 모월, 송로주… 굉장히 구수한 이름의 술들이 아주 낯설게 페이지 넘겨 페이지를 채우고 있다. 무척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걱정 말라. 사실 이 술다방은 술펀이라는 양조장 컨설팅 및 전통주 플랫폼 회사에서 직접 운영하는 매장이다. 즉, 전국 양조장 술들 중 가장 발굴할 가치가 있는 술들을 엄선해, 제일 맛있게 마실 수 있는 새로운 방법들을 연구하고 선보이는 곳이 술다방이란 것이다. 술을 제대로 맛보고 즐기는 문화가 이제야 서양 술 중심으로 퍼지고 있으니, 이 메뉴판의 술들이 낯선 건 당연하다. 그러니 너무 당황 말고 천천히 직원분께 여쭤보며 술을 골라보자. 술다방의 직원들은 모두 술펀의 "우리술 스토리텔러 주령사" 교육을 받은 전문가들로 상황에 맞는 술과 음식을 친절히 추천해주신다. 직접 양조장과 콘텐츠도 제작하고 마케팅도 하고 계신 분들이니 궁금한 내용이 있다면 마음껏 물어보며 마실 수 있다.


메뉴는 크게 시크니쳐 칵테일, 칵테일, 소주, 탁주, 맥주, 약주 그리고 안주가 있다. 소주가 가장 많다.


꿉꿉한 여름의 목요일, 술다방 바에 앉아 메뉴판을 들고 이 밤과 어울릴 만한 술을 고민해본다. 술다방에 오면 꼭 먹어야 할 술이라 추천받은 술다방 마티니, 그리고 조금 달달해 보이는 오미자 탁주 오희를 잔으로 부탁하고, 떡쟁반에 올리브와 견과류를 추가해 주문한다. 그리고 바에 앉아 내 음료가 나오는 것을 천천히 구경해본다.






1. 문경 스파클링 오미자 막걸리, 오희 (8.5%, 1잔 10,000원)

가장 먼저 냉장고에서 빠알간색 병이 등장했다. 오미자 막걸리, 오희다. 탁주라 표기가 되어 있어 침전물 가득한 모습을 상상했는데 오희는 마치 스파클링 와인처럼 맑고 투명해 놀랐다. 잔 또한 긴 스파클링 잔에 서빙되었다. 우리에게 빨간 음료 혹은 술이라 하면 고혹적인 레드 와인, 아니면 발랄하고 찐한 딸기, 자몽 에이드가 익숙할 것 같은데, 맑은 피부 위 홍조 같은 오희는 정말 오랜만에 마주하는 오미자 음료였다. 마치 타지에서 한국인을 만난 것 같은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평창 동계 올림픽 공식 만찬주로도 선정된 오희는 발효 과정에서 침전물을 최소화하고 탄산 함량을 조절하는 기술로 만들어진 술이다. 오희는 식전주의 정석이라고 설명해주셨다. 오미자의 시고 단 맛이 자글자글 부드러운 탄산과 조화로워 마시기 무척 깔끔했다. 흥과 분위기를 돋우는 술이라고 생각한다.


2. 떡쟁반 (올리브와 견과류 추가, 14,000원)

안주는 크게 떡쟁반, 빵쟁반으로 나뉘어 있어 베이스를 고른 후 원하는 안주를 2~3개 추가로 주문하면 된다. 떡쟁반에 올리브와 견과류는 가장 기본적인 안주 조합이지만 떡쟁반에 들어간 안주 중 그 어떤 것도 마냥 기본적인 음식은 아니었다. 떡은 서천의 한산모시 떡. 이를 찍어먹는 꿀은 영천에서 제배된 천연 꿀이다. 이 꿀에 파주 인삼이 절여져 있어 떡을 꿀에 푹 적시고 이 위에 인삼 한 조각을 같이 곁들여 먹으면 된다. 인삼과 한산모시의 씁쓸함 / 꿀과 떡고물의 달콤함이 쫀쫀한 식감 위에서 서로 밀당을 한다. 떡쟁반에 함께 전두부는 젤리 같은 식감의 두부다. 전두부를 찍어 먹게 5년 숙성된 머루초간장이 준비되어 있다. 같이 마시는 술의 특성에 따라 안주 맛의 세기를 조절하면 될 것 같다. 추가 주문한 올리브와 견과류도 무척 맛있었다.


3. 술다방 마티니 (약 20%, 22,000원)


주문을 받으신 직원분은 필자가 고도수의 술을 상대적으로 피하는 취향을 이해하시고 제조를 시작하셨다. 오래오래 얼음을 녹이며 술다방 마티니에 대해 설명해주신다.


원래 마티니는 진(Gin : 정류(精溜) 알코올에 주니퍼 베리로 향기를 내는 무색투명한 증류주. - 네이버 두산백과)으로 만든다. 술다방 마티니는 삼해소주와 모월, 두 종류의 소주로 만든다. 삼해소주는 우리나라 술 중에서 가장 오랜 기간 - 자그마치 108일 발효를 하는, 고려시대 문헌에도 기록이 되어 있는 서울의 명주다. 모월은 원주의 치악산을 일컫는 지역 명칭이다. 강원도의 쌀, 밀누룩, 물로만 만들어진 모월 소주는 숙취 유발 성분을 제거해 드라이하고 담백한 맛을 가졌다.

이 소주들과 함께 들어가는 술다방 마티니만의 비밀 재료가 있다. 바로 소금에 절인 아카시아 꽃물이다. 향기로운 짭짤함을 더하기 위함인데, 주령사 3기를 이수하신 우리 술과 음식을 연구하는 분의 식재료 연구 결과물이다. 이 곳의 술에 대한 탐구와 열정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끼는 부분이었다.

이렇게 담그면 약 1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조합을 흔든 후 차가운 마티니 잔에 올려주신다. 올리브 한 알 스틱에 꽂아 담그면 술다방 마티니 완성!

찡-하도록 코를 가득 채우는 알코올 향에 누룩이 배어 있다. 은은한 향이 더 인상 깊은 것처럼, 고소한 누룩 향은 코 안을 간지럼 태운다. 깔끔하게 넘어가는 술다방 마티니는 정말 맛있었다. 조금 알코올이 과한 것 같을 때 즈음 올리브로 다스려주면 된다.

마티니와 떡쟁반.... 크으으으ㅡㅇ


4. 나주 배 약주 (15%, 가격 미정)

마지막에 사장님이 한 잔 살짝 따라주신, 나주 정고집 양조장의 신제품. 술펀에서 브랜딩을 진행하여 아직 시중에 출시되진 않은 술이다. (심지어 메뉴판에도 없었다!!!) 진한 황금빛의 이 약주는 무려 15도나 되는데, 초록병에 버금가는 도수임에도 불구하고 향과 맛이 무척 달달하다. 배를 마지막으로 깎아 먹은 게 언제였을까? 명절에 가족끼리 배를 깎아 먹으며 웃음꽃이 피었었던 그 자리에 남아있는 달콤한 향이 응축되어 입과 코를 가득 채운다. 쌀과 누룩의 함량이 특별히 많기 때문에 입에서 오물오물 굴려 마시면 침의 아밀라아제가 당화를 진행해 더욱 깊은 맛으로 즐길 수 있다.   




술다방에 방문한 후, “전통주”란 단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실, 와인, 맥주, 위스키 모두 어떤 나라 혹은 문화의 전통주가 아닌가? 술다방에서 본 한국 술들은 약주, 탁주, 소주, 과실주 등으로 나뉘는데, 의심 없이 이를 모두 “전통주”라고만 불러 소비한 것을 의식하게 되었다. 과거 기술의 발전으로 페일 에일이 나왔던 것처럼 한국의 양조장들도 새로운 기술과 방법을 통해 쌀 술의 지평을 꾸준히 열어왔겠고, 지역에 따라 다른 포도 품종을 따져 와인을 먹는 것처럼 호남과 강원의 곡주도 분명 맛이 다를 것이다. 우리나라의 술들도 지역의 자연과 역사, 문화와 기술로 빚어진, 어찌 보면 지역 농경문화의 집약체일 텐데 말이다. 술다방의 철학과 수많은 한국 술들을 보며 소비자로서 한국 주류를 이해하는데 안일했던 모습을 돌이켜보게 되었다.

출처 : "와인, 사케는 전통주 아닌가요?" - 그녀들은 왜 양조장을 덮쳤나? 3화



을지로는 살아남기 어려운 곳이다. 진짜만이 이 곳을 찾고, 진짜만이 이 곳에서 살아남는다. 필자는 감히 술다방은 을지로에서 오래오래 살아남기 마땅하다고 말하고 싶다. "한국 술"을 넘어, 진짜 술들을 맛볼 수 있는 곳. 거기에 어울리는 음식과 설명이 곁들여져 진짜 한국 문화를 눈, 코, 입, 귀로 즐길 수 있는 곳. 서울 중심의 을지로에서 제주부터 강원도까지의 역사와 문화가 모이는 곳, 이를 경험할 수 있는 작은 다방. 술다방을 오래오래 을지로에서 봤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진짜 술을 먹어볼 때가 되었다.




술다방
전화 : 02-2272-0818
영업시간 : 월~목 18:00 - 0:00 / 금, 토 17:00 - 1:00
인스타그램 :


술펀






FIND CHI PROJECT ON

instagram : https://www.instagram.com/chiproject.seoul/

facebook : https://www.facebook.com/chiproject.seoul/

store : https://smartstore.naver.com/chiproject
매거진의 이전글 전통시장과 소비자가 달라지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