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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i Project Jul 27. 2019

퇴근 후, 발을 이끄는 한옥 펍

지역성을 띤 수제 맥주가 한국 고유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퇴근 후 지인과 맥주 한 잔을 하기 위해 아는 펍으로 향한다. 한국 맥주 덕후들 사이에선 굉장히 맛있는 맥주를 만들고 파는 곳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맛있는 맥주는 기본, 그곳의 분위기와 사람들이 무척 좋아 한 번도 안 간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간 사람은 없는 곳이다. 익선동 끝자락, 우연찮게는 절대 들어갈 수 없는 그 골목엔 작고 복작복작, 사람 냄새가 나는 맥주집이 있다. 그 맥주집은 옛 한옥집을 개조해 만들었다.


들뜬 마음으로 펍 바에 앉아 메뉴판을 보고 맥주를 고른다. 이번엔 어떤 새로운 맥주가 태핑(tapping)되었는지 스캔해본다. 인스타로 여름을 맞아 새로운 맥주를 출시했다는 소식을 봤는데, 지리산 제피와 제주도 하귤을 사용한, 코 끝 시원한 향의 맥주라고 한다. 그것과 시그니처 망고 맥주 한 잔을 시킨다. 지인과 웃으며 경쾌하게 잔을 부딪히고, 이 공간과 맥주에 대한 대화를 시작한다.




맥주엔 정말 어쩌다가 빠지게 되었다. 세상에 이런 다양한 맛이 있다니! 어떤 건 쓰고, 어떤 건 짜고, 고수 향이 나기도 하고, 과일 향이 나기도 하고. 음용성도 좋고 제조에 상대적으로 제한을 많이 받지 않는 맥주는 소규모 독립 양조 - “크래프트 비어” 문화와 함께 전 세계적으로 양조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근 3년 안에 크래프트 비어 붐이 일어나서 정말 많은 양조장과 펍들, 그리고 수준 높은 소비자들이 생겼고 그만큼 꽤나 맛있는 맥주들을 잘 만들고 있기도 하다.


맥주의 세계에 대책 없이 빠지다 치명타를 날린 매력은 바로 수제맥주(=크래프트 비어)가 가진 지역적 특성이었다.


우리나라는 2018년 5월 한국수제맥주협회에서 ABA(미국 양조장 협회)의 정의를 벤치마킹해 한국의 수제맥주를  "소규모, 독립성, 지역성"으로 정의했다.

정의에서 알 수 있다시피, 수제맥주는 보통 한 지역에 자리를 잡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원하는 맥주를 제조한 것이며, 멀리 유통하지 않고 지역 사람들에게 판매를 한다. 그러므로 오래 살아남는 수제맥주집은 맛있을뿐더러 소비자인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이다. 오랜만에 동네 친구들이 모였을때 가는 곳, 부모님과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때 가는 곳. 대학교 친구들끼리 꾸준히 단골로 방문해 사장님과 친구가 되는 곳. 즉, 위치한 지역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포용해 그것을 맥주와 공간으로 주민들에게 되돌려 주는 곳. 이것이 사랑받아 그 지역의 문화가 함께 성장하는 허브를 만드는 것. 그것이 수제맥주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한국에서 맛있는 맥주를 먹고 싶다면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이 지도를 펴는 것이다. 강원도엔 무엇, 대전엔 무엇, 부산엔 어떤 양조장들이 있고 이 양조장들이 각자 어떤 맥주를 만드는지 파악해야한다. 대전의 대표적인 수제맥주집은 시그니쳐 맥주에 "Big Field(대전)"란 이름을 붙이고, 부산 송정에 있는 양조장은 송정의 서퍼들에게 영감받은 "서핑 하이"란 맥주를 만든다. 지역 재료를 적극적으로 사용해 맥주를 만들기도 한다. 제주도에 있는 한 양조장은 한라봉과 귤을 제조 맥주의 시그니쳐로 재료로 사용한다. 담양의 브루어리는 당연히... 댓잎을 맥주에 넣어 만든다. 나아가 역사와 문화에 적극 참여하며, 주민들 문화의 중심지가 된다. 오산의 브루어리는 오색시장 내 공방에서 전통시장 상인과, 야시장 운영팀이 맥주를 만들어 방문객들에게 판매를 한다. 이렇게 지역의 수제맥주를 아는 것은 그 지역의 사람들과 문화를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지역 수제맥주집 단골이 되는 것은 내가 그 문화를 만드는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지인과 함께 간 맥주집이 그런 이유로 여유로운 퇴근길에 항상 생각이 나는 것 같다. 이 곳은 제주도 하귤, 지리산 제피뿐만 아니라 누룩을 사용한 맥주 효모, 정읍 복분자, 이천 쌀 등 한국의 로컬 재료들을 사용해 독창적인 맥주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를 통해 방문하는 서울, 크게 한국 사람들과 교감하고, 그들과 소통하며 이 곳 만의 커뮤니티를 만들어나간다. 바에 앉아 사장님과 얘기를 나누다 옆 사람과 친구가 되거나, 혼자 방문한 사람이 친구들을 데리고 두 번, 세 번 방문하게 되는 것이 부지기수.


게다가 한옥에 있어서 그런가. 문화의 맥락을 이어주는 공간이라고 느껴진다. 잠시 단절되었던 고유 한국의 문화의 과거와 현재가 한 공간에서 손을 잡아 다시 고요하게 반짝거린달까! 현재 한국 사람들이 오래된 ‘한국’을 채우고, 우리가 만드는 ‘한국’을 함께 즐기면서 말이다. 괜찮았던 하루를 마무리한 후 이 곳에서 종묘를 배경으로, 서까래를 지붕으로 한국 맥주를 즐겨 보면 누구보다 우리가 이 곳을 조용하고 대단하게 빛내는 주인공 됨을 느낄 수 있다.




예상보다 조금 더 늦은 시간에 계산을 한다. 사장님께 감사하단 말씀을 드리고 지인과 함께 밖에 나온다. 공기는 습하지만 해가 떨어져 덥지 않다. 다음에 또 보자는 말을 하며 펍의 사진을 찍고, 서로의 사진을 찍고 간다. 이 곳은 오늘 우리의 공간이었고, 다시 방문한다면 항상 있었던 것처럼 또 맞이해줄 것이다. 요란한 큰길에서 조금 비껴 조용히 즐기고 싶을 때, 새로운 맥주를 원목 바에 둔 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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